마지막 여정: 그림으로 기억 남기기
노형동의 한 그림 공방으로 갔다. 전날 예약해 둔 오일 파스텔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비행기 시간이 너무 늦다보니 뜬 시간에 어디에 머물며,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전날 미리 찾아본 일정이다. 올해 초에 한번 오일 파스텔로 그림 그리는 체험을 한 적이 있는데, 부드러운 느낌이나 물감처럼 섬세하게 다루지 않아도 되어서 오일 파스텔이 마음에 들었다.
제주도에서 그리는 그림이니 이왕이면 이번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을 그리려고 미리 고민도 해뒀다. 아무래도 종달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마주친 멋진 바다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자전거와 저 가방이 포인트였다. 그리기 어려울 것 같긴 했는데, 선생님이 도와 주시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안되면 자전거랑 가방은 포기하지 뭐.
공방에 들어서자 선생님이 반갑게 마주해주셨다. 이때 나는 버스에서의 감정과 세시간 뒤의 비행기 탑승에 늦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음이 급했다.
선생님께서 따뜻한 차를 내어 주셨다. 오일 파스텔을 다루는 법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고, 그리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셨다. 사진을 보여 드리며, 자전거도 그릴 수 있을지 묻자 그릴 수 있다고 대답하셨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전에, 나는 선생님께 고백을 했다.
“사실 제가 부끄럽게 생각하진 않지만, 제가 adhd가 있는데 섬세한 작업을 잘 못해요”
자신이 없어서 미리 밑밥을 깐 거다.
선생님은 전혀 몰랐다고, 잘못된 진단 아니냐고 신기해라셨다. 자주 접하는 반응이긴 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잘 그리고 싶은 욕심은 컸는데, 나는 섬세함이 부족한 사람이라 자신감은 또 너무 없었다. 선 하나를 그릴 때마다 긴장했고, 조금 긋고 이거 괜찮냐고 선생님께 되물었다.
선생님은 계속 잘하고 있다고, 그리고 조금 실수해도 덧칠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잘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일단 안심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며 제주도에서의 경험들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이 흥미로워 하며 들어 주셨다.
바탕을 칠하고, 구름을 표현하고, 파도를 표현하고, 갈대와 풀을 표현하고, 그 다음에 자전거를 그렸다.
섬세한 작업을 할 수록 자신이 너무 없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그냥 대신 해주면 안되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면 망칠 것 같아서.
그럴 때면 옆에서 선생님이 정말 차근차근 자세히 가이드를 주셨다. 자신없지만 가이드에 따라 조심스럽게 그림을 그렸다.
자전거는 포기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눈치를 채신 건지 “자전거가 조금 까다롭긴 할텐데, 자전거가 포인트잖아요. 꼭 그려야 해요. 할 수 있어요!”
그 말씀을 듣고 꾸역꾸역 선생님의 가이드에 따라 자전거와 자전거 바구니 속 짐까지 다 그려냈다.
선생님이 그림 너무 예쁘다고 연신 감탄하셨다. 사실 나는 색을 고르고, 칠하고, 그리기는 했지만 선생님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아서 내가 그린 그림같은 기분은 아니긴 했다. 그래도 좋았다.
그림을 예쁜 액자에까지 넣어서 주시며 잘 돌아가라고 인사를 하셨다. 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그림을 그리며 이런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친절하고,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이런 분이 참 부럽다고 생각했다. 같이 있는 내내 좋은 기운을 전해 받은 느낌이다. 그만큼 본인 스스로도 좋은 기운을 가진, 건강한 분이시겠지 싶어서 보기 좋았고, 부럽다고 연신 생각했다.
리뷰에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와, 참 좋은 수업이었다는 글을 조금 길게 남겼다. 다음날 아침 선생님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내 리뷰를 보고 울컥했다고,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놀라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내가 울컥할만한 리뷰를 썼었나 리뷰를 다시 읽어 보았다. 나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가 좀 있나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