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박 5일의 제주 여행을 마무리하며

일상으로 복귀

by 정좋아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틈이 날 때면 혼자라도 여행을 줄곧 다녀 왔다. 제주 일주일 살기 같은 것도 항상 생각해 봤었다. 그런데 혼자 여행을 가면 어쩌다 보니 다른 지역이나 해외를 주로 갔던 것 같고, 제주도를 혼자 가려다가도 막상 다른 사람과 같이 여행을 하게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이번에 정말 거의 일주일을 혼자 제주도에서 보내게 되었다. 오래 생각해오던 일을 마침내 하게된 게 신기했다.


혼자서 한 이번 제주 여행은,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참 고민스럽지만, 좋았다.


외롭기도 했고, 무섭도 불안하기도 했고, 특히 오후부터 잠들기까지는 우울한 생각에 압도되어 힘겹기도 했다. 기분이 늘 좋고, 상쾌하고, 설레거나, 도파민이 뿜뿜 뿜어져나오지는 않았다. 힐링이라기엔 부정적인 감정들에도 많이 갇혀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스스로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고, 많이 발견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거면 충분하다.


평소에도 스스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많이 아파하는 나이지만, 일상 속에서는 해야하는 일들도 있고 하니 여유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을 하다가도, 억지로 덮어두고, 피해야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온갖 생각을 다 해보고, 기록해 보며 나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뭔가가 불편할 때마다 다 적어두고, 내가 왜 불편한지, 나는 어떤 것들을 어려워하는지 고민하고, 기록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편하게 느낄 수 있을지 나를 위해 고민했다.


스스로 공황 발작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에 놀라서일 수도 있는데, 나를 아기 다루 듯 대하려 했다. 조심스럽게. 힐링여행이니까.

‘너 이거 불편해? 그럼 이거 하지마. 다음엔 이거 피하자.’

‘너가 원하는 게 이런 거지? 그럼 이거 하자.’


나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한 것들도 있다.


나는 걱정많고, 불안 많고, 두려워 하는 게 참 많은 사람이지만 모순적이게도 용감하다.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다. 운전도 못하면서 제주도를 5박 6일이나 혼자 여행하기로 하루 아침에 결심하고 실행한 나.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우산이나 우비도 없이, 비를 쫄딱 맞으며 5분을 걸어 가고 싶은 카페를 기어이 가버린 나. (이건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치에, 자전거도 잘 못 타면서 낯선 시골 마을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달린 나.


이런 내가 나는 좋다. 엉뚱하고, 웃기기도 하다. 이런 용감한 면 덕분에 더 풍부하고, 새로운 경험들을 할 기회를 많이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걱정, 불안이 많아서 또 너무 위험한 일은 피한다. 예를 들면, 해가 지기 전에는 난 여행지에서 홀로 돌아다니지 않고 무조건 숙소에 들어간다.


또, 나는 정이 많고, 그걸 잘 표현하는 방법을 안다. 여행을 하며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내가 좀 예민하게 불편하게 느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난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건냈고, 감사하다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말도 걸고, 정겨운 대화도 웃으며 이어 나갔다. 자전거 가게, 카페, 그림 공방 등 몇 곳에서도 사장님께 정성 어린 리뷰나 문자를 남겼는데, 다들 나의 글에 감동을 받으신 듯했다.(착각은 아니길.ㅎㅎ)

이렇게 정을 주고 받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도 마음이 참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천천히 스스로를 가꾸는 경험도 살짝 맛봤다. 일상에서는 무기력에 빠져 잘 씻지도 않고, 잠을 참 많이 자고, 스킨 로션 선크림 같은 건 바르지도 않는다. 집에 오면 누워만 있는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매일 빼먹지 않고 씻고, 차를 마시고, 스킨 로션과 선크림도 발랐다.


씻고 나왔을 때 드는 추운 느낌을 싫어하니까 춥지 않게 수건을 미리 큰 거 하나 작은 거 하나 준비해 샤워 부스에 걸어두고, 나오자 마자 따뜻하게 마실 수 있게 물을 커피포트에 데워두고, 찻잔에 티백을 꺼내 두었다. 바로 따뜻한 바람으로 머리를 말릴 수 있게 드라이기도 준비해 뒀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씻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로 천천히 씻고 나와, 준비해둔 수건으로 몸을 닦고, 얼굴에 스킨 로션을 바르고, 잠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셨다.


오늘은 뭘 할까 고민을 하며 차를 마실 때, 기분이 참 뽀송뽀송하다.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매일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스스로를 아끼고, 여유도 누리고, 오늘은 뭘 할까 설레는 고민을 하며.


생각해 보면, 어렵긴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씻고, 차도 마시면 되고, 차 마시며 앉아서 쉴 수 있게 자취방도 살짝(?) 치우면 된다. 매일 오늘은 뭘 할까 설레는 고민을 하는 것도, 여행처럼 미술관을 가거나 바다를 가지는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요가를 가거나 그림을 배울 수도 있고, 매일 가는 요가 수업이라도 오늘은 어떤 수업일지 기대할 수도 있다.


물론, 야근만 안 하면.


야근을 하면 야근을 하는대로, 체력은 지치만 잡생각이 없어서 좋으니 뭐 괜찮다.


일상도 여행처럼, 하루 하루 평범하지만 소소히 특별하게. 그렇게 살아 보고 싶다. 쉽지 않겠지.


오늘은 여행에서 돌아온지 이틀째인데, 어제 오늘 다 사실 꽤나 무기력하게 보냈다. 여전히 안 씻고, 여전히 누워만 있고, 방은 더럽다.


어제는 정말 놀라우리만치 오랜 시간 잠만 잤다. 요가 수업도 돈만 내고 두개나 빠져서 또 속이 쓰리다. 제주도에서는 술술 써지던 글도, 다 쓰기 싫고 귀찮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출근을 했는데, 아침에 도무지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싫었고, 의식이 깨어나는 것도 싫었다. 사실 자다가 계속 깨고, 5개 정도의 악몽을 꾼 것 같다. 씻지도 않고, 대충 짐을 챙기고,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옷을 주워 입고, 양말 찾기도 귀찮아 맨발에 운동화를 신고 급히 나왔다.


오늘 이 순간까지는 다음 프로젝트가 정해져 있지 않고, 주어진 일도 없어 행정 처리만 하고,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쓴다.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어 다행이다.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잠깐의 경험을 토대로 다시 삶을 꾸려 나가야겠지. 설레는 일, 기대되는 일을 소소하게 만들어 가고, 스스로를 아끼고 가꿔주고.


너무 먼 것, 큰 것부터 생각하면 자꾸 지치고, 실망하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일단 지금 당장의 나는 아무래도 지쳐있으니까 작은 것부터 생각하고, 작은 것부터 해나가야겠다.


참.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가 있다. 엄마, 아빠를 오랜만에 봤지만 반갑게, 살갑게 대하지을 못했다. 나를 많이 걱정하고, 기다렸을텐데 미안하다. 무기력하고, 기분이 우울할 때는 엄마, 아빠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 투정부리고 싶은 마음인걸까. 귀찮고, 부담스럽다. 하나도 위로도 안되고, 힘도 안난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속상하고 미안하다. 근데 왜인지 밉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주도 힐링여행 day5.part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