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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발작 버튼’ #01

첫 만남에 나의 평생의 상처를 건드린 인간(?)

by 정좋아

개인적으로 ‘발작 버튼’이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이 표현은 보통 누군가가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가, 그 부분이 건드려져서 화를 내는 반응을 할 때, 그걸 비하하거나 조롱할 때 쓰는 표현이다.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이 있는 것은 나쁜 게 아니고, 아픈 것, 슬픈 것이다. 그 부분이 건드려진 것도, 그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라 경솔하거나 무례한 누군가의 잘못도 분명히 있을 것다. 화 낼만한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을 비하하는 것도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가끔 자존심이 상해 울분을 토하는 내 모습을 보면 스스로도 탐탁치 않다.


나는 가끔 쌈닭이 된다. 그럴 일이 많지는 않은데, 희안하게 최근 한달 사이에 세번이나 내면의 쌈닭이 밖으로 나왔다.


최근 이틀 사이에 그런 일이 두번 있었다.


하나는 소개팅앱으로 처음 만난 사람과의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만나기 전부터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었다.


식당은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길래, 만나기 직전에 다시 한번 어디서 만날지 물었다. 눈 펑펑 오는 날 길에서 식당 찾아 헤맬 게 걱정이 되어 물어본 거였다. 생각해 둔 데가 없으면 내가 찾아서 예약이라도 하려고. 그런데 생각해 둔 데가 있다고 했다. 생각해둔 데가 있으면 나한테 그게 어디인지 알려주고, 거길 가도 괜찮은지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뭔가 석연치 않았다.


약속부터 늦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인사도 표정도 떨떠름해 보였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낯을 가리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너가 없다고 느껴졌다.


사진이랑 얼굴도 다르고, 늦어 놓고 미안한 기색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했는데 눈도 안 마주치고, 떨떠름하게 인사를 받았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도 별 말이 없어 어색했다. 나도 이미 기분이 상했으니 애쓰고 싶지 않았다.


식당에 도착했을 땐, 직원의 말 소리는 잘 안 들렸으나 상황상 자리가 없다고 한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도 이 사람은 나에게 상황에 대한 설명이나 사과도 없었다. 그러곤 또 다시 펑펑 오는 눈을 맞으며 다른 식당을 찾아갔다.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그러나 앉으니 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미 기분이 상할대로 상한 터라 노력하고 싶지 않아 나도 가만히 있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음식을 시키고, 술을 한잔 기울이니 서로 말문이 트였다.


차라리 말문이 안 트였던 게 나았을 것 같다는 게 함정이다.


이 사람은 일반의였고, 정신과와는 관련이 향후에도 없을 사람이었다. 그런데 타인에 대한 이야기, 심지어 나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의사로서 진단을 하듯 이야기를 했다.


내가 정적이 싫어 ‘나는 솔로’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누가 제일 이상한지에 대해 대화를 했는데, 한 사람에 대해 의견이 갈렸다.


방송 상 보여지는 모습으로는 굉장히 불안정하고, 상대를 힘들게 하고,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여자 출연자가 하나 있었다. 그 여자가 불안정하다는 점에는 서로 동의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특출난 미모 하나때문에 그 여자를 선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자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상대는 남자도 여자의 불안정함과 여자가 남자에게 하는 언행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지만, 미모에 가치를 두고, 참을만하다고 판단했으니 남자는 정상인이라고 이야기 했다.


나는 남자도 아주 안정적이고, 내적으로 충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연인은 상호적인 관계이니 한 사람이 다 맞춰 주고, 참아 주며 만날 수 없다. 그런 정서적인 것들을 포기하고, 외모만을 고려해 연인을 선택한다면 건강하지 않고, 무언가 결핍이 있는 것이다’ 이게 내가 이야기한 이유였다.


그러자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예쁜 애들 만나 봤는데, 예쁜 애들은 다 성격이 이상하다. 그런데 그걸 참고 만나는 건 자기가 감당 가능하니 선택을 하는 거다 뭐 그런 얘기를 반복했다.


예쁜 애들은 성격이 다 이상하다는 말 자체도 듣기 싫었다. 그리고 이건 내가 너무 간 건가 싶긴한데, 난 안 예쁘다는 건가? 내가 모르는 예쁜 애들의 심리나 세계가 따로 있고 자기는 그걸 안 다는 듯한 말이 심기를 건드렸다.


아무튼 이 주제에 대해 의미 없는 변론을 이어 가다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친구 별로 없죠?”


당황했다. 바로 처음 든 생각은 ‘네가 더 친구 없을 것 같은데‘였다. 그렇게 그냥 말할걸 그랬다.


슬프게도, 거기에 대고 열심히 대답을 해줬다. 그런 편인 것 같다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고.


그리고 내가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게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그러자, 지금까지의 판단으로 보아 내가 붙임성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그게 왜 너무하냐고, 친구 없는 게 뭐 어떻냐고 헛소리를 지껄였다. 물론, 이상적으로 얘기하면 친구가 적은 게 나쁘거나 창피한 일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붙임성이 없어 보여서 친구가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할 때는 맥랑상 ‘부족함‘을 의미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적반하장으로 나한테 추가 개소리를 했다.

”긁혔네? 이런 걸로 왜 긁혀요ㅋㅋㅋㅋ“


장난스럽게 웃으며, 나보고 자기의 말에 자존심이 긁혔다고 하는 게 화가 났다. 무례하기 짝이 없다.


이 외에도 다른 얘기를 하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하려면 최소한 전문직은 되어야 한다는 둥 개소리를 이어갔다.


화도 나고, 지기도 싫어 나름 웃는 얼굴로 투정 부리듯 다 받아쳤다. 그랬더니 나보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며 껄껄 웃었다. 뭐,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기 정말 싫다고.


일어나서 집에 가는 길에는 인사하는데 계속 핸드폰만 쳐다보며 간신히 대답만 했다.


집에 와서도 기분이 너무 나빴다. 한편으론, 그냥 무시할걸 왜 일일이 대꾸하다 내 속 얘기까지 시원하게(?) 뱉어내고 왔나 스스로가 밉기도 했다.


친구가 별로 없다는 건, 기억나는 새 삶 한 평생 동안의 상처이자 고민이다. 친구가 별로 없어서 외롭고, 쓸쓸하고, 또 왜 친구가 별로 없는지 늘 내 단점과 과오를 들추며 가슴 아파하곤 한다. 그 치부를 처음 본 이가 건드렸다.


누군가에겐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내겐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장난으로 한 이야기인데, 내가 예민했나 싶기도 한데, 처음 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걸 면전에서 입밖으로 꺼내는 건 무례한 행동이 맞다고 억지로 되새기고 있다.


하. 본인은 친구 많다고 했는데, 그것도 의아하다. 친구 많다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잘 살아왔다는 걸 의미하는 것도 아니겠거늘.


삼년 전쯤, 친구가 별로 없다는 사실에 대해 자책을 하는 나에게 상담샘이 해준 이야기가 있다. ‘나를 괴롭히는 일진 아이들, 각종 비리나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 받고 구치소에 있는 사람들도 친구는 많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좋은 사람일까? 아니다. 비합리적인 신념을 가지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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