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잊고 그냥 사랑을 해보자
새 남자친구는 외국인이다. 정확히는 유럽 국가 국적의 교포이다. 한국에 산 적이 2년 정도라, 97% 외국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제 사귀기로한지 열흘이 좀 안됐다. 그런데 사귀기로 한날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봐서인지 벌써 반년은 만난 기분이다.
그만큼 너무 빨리 가까워졌고, 마찰도 빨리 발생했다.
그럴 때마다 불안해졌다. 문화 차이때문에 우리가 안 맞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를 힘들게 한 제일 근원적인 생각은, 이 갈등의 과정에서 이 친구가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되면, 나를 떠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불안. 불안이 나를 괴롭혔다.
나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나를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리고 이 친구는 장난이 심한데 그 장난들도 날 불안하게 했다. 예를 들면, 서로 서로를 좋아하는 이유를 맞추자고 하서 나는 내가 예쁘다는 사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 아니냐고 하니, 아니라고 했다. 이 정도는 귀여운 장난이긴 한데, 심통나고, 은근 마음에 남아 불안이 꿈틀댄다.
생각해 보니 정말, 이 장난이나 문화 차이에 따른 불안은 사실은 내 안에서 내가 증폭시키고 있었다.
작은 것들 하나를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생각할지와 연관짓고, 불안해하고, 나를 떠나진 않을지 겁나 하는 것이다.
괜찮아. 이런 일로 나를 쉽게 떠날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설령 떠난다 해도, 나는 괜찮다고, 같이 보낸 시간아 길든 짧든 즐거웠으면 그뿐이고, 나는 여전히 나고, 언제나 그랬 듯 새 사랑은 찾아올테니.
그러니, 지금은 불안을 잊고, 사랑을 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걱정과 불안을 앞세우지 않고, 그 순간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와, 그 사람이 내게 주는 행복감과 달콤함, 애정의 표현들에 더 촉각을 세우고 누리며. 사랑을 하겠다.
가까이에서 일하는데, 바쁜 와중에 점심 시간을 맞춰 쉴 틈 없이 웃으며 밥을 먹기도 하고, 그러다 회사 바로 앞에선 머쓱해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야근 식비로 고급 식당에 가서도, 둘이 가장 허름하고 편헌 차림이지만, 쉴틈 없이 깔깔대고 웃느라 바쁘다. 직원들도 배꼽 잡고 웃던 우리를 보다 눈이 마주치면 함께 미소 짓는다.
그때 느낀다. 행복하다고. 수백만원짜리 신발을 신고, 수천만원짜리 가방을 들고 있지 않아도, 같이 있다는 것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남 부럽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