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심리상담을 받을 때 잘 울지 않는다. 여러 다른 상담사 분들과 여러번 다룬 이야기들을 다시 다룰 때가 많았고, 그래서 감정은 어느 정도가 정리가 되어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울 것 같았다.
책임감과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문득 문득 대학생 때 팀플에서 연습을 안하고 발표하다발표 제한 시간을 멋대로 초과해버려서 팀원들에게 누를 끼쳤던 기억, 경영 학회에서 팀장을 맡았는데 열심히 준비하고 팀을 리징하지 못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안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난 책임감이 부족한 사럼이라고 자책한다.
며칠 전 이 기억들이 또 올라와 마음이 괴로웠다. 오늘은 상담 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를 들고 갔다.
나에게 원장님이 물었다. 그런 역할에 대한 원칙을 인지하고 그렇게 한건지, 몰라서 그렇게 한건지.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때는 나에겐 더 중요하고, 더 흥미로운 것들이 너무 많았고, 어떤 것들은 내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 같다고.
선생님은 그때의 장점이 뭐냐고 물었다. 답을 못했다.
그러자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때 행동을 한 거라고. 이렇게 그 역할에 대한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받을 수 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비난과 원망보다, 나 스스로가 원하는 게 뭔지가 더 중요했던 거라고.
그때 번뜩였다. 맞다. 스무살 전후, 특히 대학생활을 시작할 때 쯤에 나는 다짐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살겠다고. 때론 누군거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지라도 나를 위햐서 살겠다고.
왜 그랬을까. 그땐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을만큼 명료하게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다짐만 남았을 뿐.
하지만 맥락은 기억한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따돌림과 학교 폭력, 이성과의 사이에서 겪은 배신감과 좌절감의 기억, 그리고 학업과 입시.
높은 학업 목표룰 두고 달리던 때부터, 나만을 위한 선택과 남들을 고려한 선택에 대해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꿈을 이루려면 누군가는 나에게 져야 했고, 나는 여유가 없었고,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모든 걸 동원해야 했다.
딜레마는 생각보다 많이 생겼었다. 교과서에 없는 내용이어도 수업 시간에 언급되었던 내용이면 시험에 툭툭 튀어나와 모두를 곤혹스럽게 한 수업에서 나는 정말 열심히 필기했고, 수업 시간에 놀고 자다가, 친하지도 않으면서 그 필기를 보여 달라는 애들이 있었다. 보여줘야할 것 같은데 보여주기 싫었다. 뭐 어쩔 수 없이 보여주긴 했지만, 그때 ‘아 나는 나를 위해 살래’ 그런 생각을 했다.
공부는 내게 동앗줄이었다. 절실했다. 나를 처절하게 무시하게 모욕하는 세상에서 벗어날 동아줄. 나를 인정받게 해줄 유일한 길.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함께 하고 뭐 그럴 여유는 없었다.
그때 아마 처음, 일단 내가 최우선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살았다.
그리고 세상은 내게 따뜻하지 않았다. 외로웠고, 상처 받았다.
그러니 나라도 나를 우선시해야겠다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때로는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각자의 몫이라고.
내 상처도 그 누구도 치료해 주지 않고, 아량곳 없이 나를 짓밟는 것들이 많다고.
비겁한 변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삶의 다짐을 내렸을 때, 그때의 나의 마음이 어땠을지 떠올리면 마음이 아리다.
내 입으로 말하기엔 웃기지만, 나는 남의 상처에 무관심하기엔 어려운 사람이다. 내 생각엔 그렇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조금 이기적이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