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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붕’ 후의 마음

by 정좋아

오랜만에 썸붕을 당했다. 3주 동안 썸 타던 오빠가 퇴근 했냐고 묻는 나의 톡을 읽고 씹고 사라졌다.


이전같았으면 어쩌면 공황이 왔을지도 모른다. 사실 썸붕 나기 전에 연락이 느릴 때부터 왔을 수도 있었다. 전에는 거절 당하는 것이 그렇게 두려웠다. 다행히도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물론 기분은 더러웠다. 자존심이 상했다. 내 톡을 읽고 씹다니. 화가 났다. 아주 놀랍지는 않았긴 하다. 톡이 느렸다가, 세번째 본후에는 갑자기 막 5분내로 답을 하다가, 또 어느 숨간 3-8시간까지 카톡 텀이 늘어났다. 한참 뒤에 답장하며, 일이 너무 많다, 세시 넘어 퇴근했다 뭐 그러는데 머리로 이해하려 했지만 머리도 이해를 다 못했고, 마음은 더 그랬다. 마음이 나에게 크지 않은 것 같긴한데, 정말 바빠서인 것 같기도 하고 헷갈렸다. 그때 나는 너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해 앞서 걱정하고 고민하지 않기로. 좀 지켜 보면 알게 될거고, 만약에 마음이 없는 걸로 판단이 서면 “아님 말고!“ 하기로.


그리고 일단 그 사람이 정말 바쁘다면 그 사람의 호흡을 존중해 보자 생걱했다. 그래서 느린 카톡에 짜증이 나도, 나도 적당히 느리게 답장했고, 재촉하지도, 그렇다고 연락을 끊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끊기니 왜인지 억울했다. 끊김을 당한 게 짜증이 났다. 진 것 같았다. 내가 매력이 부족해소? 더 잘나지 못해서 그런걸까?


최대한 저런 생각들은 뒤로하고, 그래도 나름의 ‘품위’를 잘 지켰다고 생각하려 애썼다.


사실 난 원래 밀당을 모르는 여자다. 신나게 당기고, 마음도 다 준다. 이번엔 그러지 않으려 노력했다. 상담 원장님의 조언때문이었다. 원장님은 여든이 넘은 여자 분이시다. 어쩌면 조금 더 보수적인 시각으로 남자와 여자의 특성과 역할을 이해하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50년이 넘게 마음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듣고 이야기를 나누신 분이다. 그래서 원장님의 말씀을 나는 다른 이전 상담사 분들에 비해 잘 듣는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잘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실이 반갑지는 않지만.


원장님의 지론이자, 나의 몇년간의 연애 경험에 따른 남녀관은 이렇다.


“대부분의 남자는 ‘쟁취’하기 어려운 여자를 ‘귀하게’여기고, 여자의 ’신비‘로운 면모에 더 매력을 느낀다.”


나는 원래 이런 생각과 정반대되는 생각을 했다. 여자도 사람인데,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사랑해주는 게 진짜 사랑이라고 생극했다. 워낙 화장도 안하고, 잘 안 꾸미는 스타일이다보니, 남자친구랑 사귀면 꾸미는 날도 적었고, 체중관리도 앋해서 살이 5-6kg 씩 쪘었다. 남자친구 앞에서 방구도 서슴지 않고 뀌었다. 물론 그래도 예쁘다, 귀엽다고들 말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신비로운 모습을 유지하려고 했다면 관계 유지가 조금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고백도 받아보고, 들이대 보기도 하고, 상처도 받아 보고, 슈퍼갑이었다가 슈퍼을도 되어 보고, 사귀고 헤어지며 가지게 된 생각이다.


전에 한 여자이신 정신과 의사 선생님한테 연애때문에 겪는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당시 나를 힘들게 하던 남자침구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졌었고, 헤어진 이후 새로운 썸들 앞에서 자꾸 작아지고, 불안을 느끼고, 그러다 조급해져서 앞서 나가고, 실패했다.


이런 나에게 그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남자를 볼 때, 여왕이 신하을 찾는다는 마음으로 보세요.” 이 말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 말의 뜻은, 부려 먹고 막 대할 남자를 찾아서 그렇게 하대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여왕의 마음 가짐을 가지고, 그만큼 스스로의 가치를 높게 보고, 상대가 나를 정말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스스로 소중히지가 않았다. 얼른 팔아 넘겨야 하는 하자 있는 물건 같았다. 그래서 나한테 좀 괜찮다 싶은 이가 관심을 보이면, 이 사람이 내 정체를 잘 알기 전에 나를 일단 얼른 팔아 넘겨야 겠다 싶었다. 조급했고, 스스로를 막 대했고, 그 결과 나를 막 대하는 남자를 만나거나, 나를 귀히 여기던 남자도 나릉 막 대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선생님의 말이 이해도 갔고,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아 힘들었다.


이번에는 좀 고고한 척 해봤다. 나름 잘했던 것 같다. 얼른 보자고 먼저 보채지도 않았고, 상대 카톡이 느리든 말든 칼답을 하던 습관도 버렸다. 그게 되니, 멀어지는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의 수준이 낮아졌고, 잘 안됐을 때도 상처가 적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잘한 게 맞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람은 연락도 너무 안되고, 미리 명확히 보자는 말은 안하다가, 금요일이 되어서야 “내일 뭐해?” 혹은 본인이 내 동네 근처에 와 있을 때에야 갑자기 “지금 집이야?“ 이런 식으로 묻곤 했다.


오늘 저녁에는 그냥 내가 전에 만난 사람들한테 하던 것처럼, 먼저 보자고 할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내가 적극적이지 않아서 사라져 버린 걸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사람이 아무리 답이 느려도 나는 답장을 했고, 안부를 꾸준히 물었다. 그리고 본인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지도 않거 내게 대뜸 그걸 물었을 때, 나는 어느 정도는 호감을 드러냈다. 그가 나에게 확신을 주지 않았 듯 나도 그러지 않았을 뿐, 나는 잔잔한 힌트를 주었다.

내가 마음을 표련하지 않아서 그가 마음을 접었다고 보는 건 말이 안된다.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고, 이번에 내가 정말 잘한 건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그런데 한가지 확실한 건…나를 덜 내려놓고, 더 고고한 척 행동을 하니, 이렇게 끝이 나도 상처가 적다는 것이다. 상처가 나쁘기만한 것은 아니지만, 데미지가 쌓이면 회복이 어렵고, 나는 이미 거기까지 여러번 다녀 온 사람이다.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마음을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많이 행동 해본 후, 상처를 많이 받았기에, 나는 이번이 나름, 나라는 자아상과 자존심을 지킨 성장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p.s: 이 글을 읽었다면 다음 글인 “썸붕의 실체”를 꼭 읽넜으면 한다. 역시 아닌 건 아닌 거라는 걸 깨닫게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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