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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붕’의 진짜 실체

feat. 그 남자의 다른 여자(?)

by 정좋아

오늘 도파민이 도는 일이 있었다.


연락이 이미 끝난 그 오빠의 또 다른 썸녀의 존재를 확실히 깨달아 버린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배경부터 말하자면, 썸붕난 오빠와는 와인파티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 사람이 꽤 많았는데 나와 그 오빠, 그 오빠의 친구, 그리고 한 언니는 나중에 따로 나와서 2차, 3차를 갔다.


그렇게 넷이 나오기 전에, 좀 파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쯤 그 오빠가 나한테 ‘다음에 밥 한번 먹어요’ 라고 했다. 사실 그때까지는 나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왜냐면 처음에 한 스탠딩 테이블에서 그 오빠를 포함해 여럿이 같이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오빠가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윗층에 물을 마시러 갔더니 거기에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 오빠가 좀 괜찮았어서 씁쓸했다. 나에게 관심이 있었으면 굳이 자리를 이동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오빠가 자리를 떠난 타이밍도 딱 의미가 있었다. 그 자리에 옷 쇼핑몰을 운영하는 언니가 있었는데, 키도 크고 늘씬하고, 화려하게 예쁘게 생겨서 들어오자마자 눈에 띄는 스타일이었다. 그 언니는 처음에 아랫층 스탠딩 테이블에 같이 있었는데 사라졌고, 그 다음에 그 오빠가 사라졌다. 윗층에서 봤을 때 그 둘은 같은 테이블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조금 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따라 윗층 자리로 옮기자 그 오빠는 더워서 위로 올라 왔다고 얘기했는데 난 그 말늘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나한테 밥을 먹자길래 기분이 좀 좋았다. 그래서 같이 2차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예쁜 언니, 나, 오빠, 오빠의 친구.


3차까지 가서 놀았다. 그때 중간에 그 언니가 손병오 게임을 하자더니 이런 질문을 했다. “여기에 호감가는 사람이 두명 이상인 사람 손가락 접어”라고 하자 그 오빠가 놀랍게도 접었다. 역시나, 나에게만 관심 있는 게 아니었다.


4차로 노래방에 가서는 나보다는 언니 쪽에 가깝게 앉았고, 언니랑 소통을 많이 하는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노래방을 나왔을 땐 5시였는데 다 같이 택시를 탔고, 오빠가 술을 더 먹자고 했으나 나는 내 집 쪽에서 내려서 집에 갔다. 왠지 그들은 나 없이 술을 더 마실 것 같긴 했는데, 이미 그 오빠가 언니에게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아 흥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가서 자고 일어나 핸드폰을 보니 그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밥을 먹자고 했다. 그래서 그날 바로 밥을 먹었더랬다. 반가웠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오늘 오전, 그 언니에게 인스타로 연락이 왔다. 뭐 물어봐도 되냐고. 그 톡을 보자마자 가슴이 뜨거워 지는 게 느껴졌다. 도파민이 핑~


이미 마음 정리도 꽤 했겠다 아쉬운 마음은 적고, 그 사람이 스스로 수치스러운 일을 한 게 까발려지는 게 흥분이 됐다.


사실 나도 이 언니한테 물어보고 싶긴 했었다. 왠지 연락 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뭐 나랑 사귀는 사이는 아니니까 굳이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겠다 싶어서 그 언니에게도, 그 오빠에게도 둘의 사이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언니도 그 오빠랑 그날 이후 연락을 하고, 몇번 만났다는 것이다. 그건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었긴 한데, 그제서야 설멍이 좀 됐다. 그렇게 재면서 나랑 연락을 하고, 연락도 자기 맘대로 빨리 했다 느리게 했다 한 거였구나. 바빠 죽겠다더니 일때문만은 아니었구나.


좀 재미있는 것은, 그 오빠가 두 명의 여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뭐 특별한 질문은 아니었는데.


저기 첫인상이 어땠냐고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 때는 그 오빠와 만나고 집에 들어간 때였는데, 그때 갑자기 그 오빠 텐션이 확 높아져서 카톡 텀이 2-4시간에서 5분으로 줄었었다. 나에게 자기 첫인상이 어땠냐는 것니다. 나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난 오빠가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고, 분위기를 편하게 잘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게 다냐고 하길라 키가 크다고 생각했다 하니까 또 더 없냐길래 훈훈하시다 생각했다 하니 만족해 했다.


난 그게 웃겼다. 뭐 귀엽긴 한데 좀.. 너무 간보고 소극적인 느낌이랄까.


본인이 먼저 난 네가 처음 봤을 때 어땠다며 칭찬을 하거나 호감을 표현하기보다는, 먼저 자기부터 확인을 받으려 라는 모습이 좀 그랬다. 대답을 먼저 해야하는 상다의 난처한 입장은 안중에 없고.


그 언니는 나랑 달랐다. 그 오빠가 묻자마자 “오빠 잘생겼다고 생각했지” 라고 했단다.


내가 남자였으면, 나보단 그 언니랑 대화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긴하다.


그래서 순간, 아 내가 칭찬을 너무 아끼나? 오히려 내가 너무 재나? 싶었다. 그래서 생각을 해봤는데, 아니 난 내가 잘한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난 칭찬을 잘하고 표현을 잘하는 편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러지는 않는다. 나도 칭찬 받는 걸 좋아한다. 나에게 칭찬을 먼저 해주거나 마음적으로 이 사람이 나에게 호감이 있다 싶은 안정감을 느낄 때에만 그렇게 한다.


본인은 상대를 인정하고 칭찬해 주기를 어려워 하면서 먼저 받으려고만 하면, 난 좀 불편해진다. 전에 좀 그런 남자침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칭찬을 잔뜩 해줬더니 기고만장해지고, 자기 자랑만 하고, 오히려 이렇게 잘난 내가 너를 만나준다는 식의 가스라이팅을 하며, 그러니 너는 나에게 더 잘해야 한다고 했다.


좀 극단적인 예이지만. 마음을 표현하기 보다는 표현 받기를 일빙적으로 원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진 않다.


물론, 이 언니처럼 저 오빠에게 더 사근사근하게, 좋은 말도 잘해주고 했으면 이 오빠랑 좀 더 잘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한번 잘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 계속 잘 지낼 사람과 잘되는 게 목표라면, 굳이 그 길을 가지 않는 게 낫다. 고로, 난 줏대있게 잘한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일을 계기로 더더욱 이 썸붕에 대해 자책은 안하게 될 것 같다. 여러명을 동시에 알아보는 건 뭐 잘못은 아니라고 하지만, 간잽이는 안된다.


역시, 이번 썸~썸붕 과정에서 나는 나름 대처를 잘했고, 스스로를 잘 지킨 것 같다. 고고하게.


그리고 그 언니처럼 키크고 늘씬하고 예쁜 언니와 함께 나를 두고 쟀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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