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그게 아닐텐데
나 나름, 결혼하자고 집은 어디로 하고 결혼은 어디로 하자고 하던 남자가 한시간 반 뒤부터 잠적해서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결국 밤에야 이별로 정리를 하게 된 후 무너지지 않고 이주를 지냈다.
새벽 운동을 시작해 하루 최소 두시간의 운동도 했고, 이직 준비도 슬금 슬금 시작했고, 독서도 시작했고, 글도 썼고.
갖은 노력을 잘, 죽을 힘을 다해 해내고 있었고,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무너졌다. 아직도, 회복이 안된다.
아빠. 가족때문이었다. 자취방에서 지내다가 일주일만에 집에 들어간 나에게 아빠가 몇마디 말을 건냈는데, 말투나 내용이 다 거슬렸다. 내 불안을 자극하고, 짜증을 돋구었다.
의도는 나를 걱정하는 것, 혹은 나와 가까워지려는 것이라는 것은 알지먼 그 순간은 그냥 다 싫었다.
그래서 화를 꾹꾹 눌러 담아 대답을 했는데, 말투가 곱지 않았다. 짜증이 섞인 말투였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 되어, 왜 자기에게 짜증을 내냐고 한마디 하고, 방에 들어갔다가 또 나와서 같은 말을 하며 화를 냈다.
이 패턴. 죽기보다 싫은 이 패턴. 어릴 때부터 아빠는 저랬다. 어떤 버튼이 눌려 화가 나면 화 내고, 잠시 뒤에 와서 같은 말로 또 화 내고, 못된 말로 상처를 줬다.
그 패턴이 다시 시작된다는 생각에 화가 터져 나왔다. 너무 서럽고 화가 났다.
날 더러,
“삼십이 넘어서 네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냐. 널 모셔 살아야 하냐.”
“밖에서 잘 놀고 들어와서 왜 집에서만 난리냐.”
이런 말들을 했다.
내 눈치를 보게 한 적이 없다. 그냥 가만히 놔두기나 하지.
아빠는 최근 몇년 상담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날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힘들어하면 그때마다 자신에게 말하라며 도와주겠다고 했다. 도와준 적도 있고, 도움이 된 날도 있다.
내가 공황으로 고생한 며칠 후 어떤 날은 밤 늦게 술에 취해서 들어와가지고는
뭐가 힘든지 말 안하면 방에서 안 나가겠다고 십분 넘게 내 방에서 징징(?)댄 적도 있다.
근데 이번에 내가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전해 듣고, 괜히 걱정했던 마음을 가지고 나를 탓하는 것이다. 이번에 나는 아빠에게 털어 놓은 적도, 징징댄 적도 없는데 말이다. 아빠 말대로라면 누가 뭘 해달라고 했나? 걱정해달라고 했나?
아니면 누구는 이런 개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길 바랬나?
내가 잘 놀고 들어왔다고? 얼마나 간신히 정신 붙들고 살려고 애쓰는지도 모르면서.
이런 식의 말들을 하며 아빠의 말에 말대꾸를 하면 돌아오는 건 어디서 아빠한테 눈을 부라리고 말대꾸냐는 말들 뿐이었다.
감정이 조절이 안되었다. 입에 담기에 곱지 못한 짓들을 방 안에서 좀 하고는, 자취방으로 돌아 갔다.
가뜩이나 최근에 나는 내 삶에서 희망이나, 추억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으려 해도 쉽지 않았는데.
어제는 아빠랑 싸우면서 심한 나쁜 말을 내뱉었다.
아빠 맘대로 하라고.
나는 당장 정신병원에 갇혀 살아도, 나가서 차에 치여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아쉬움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다고.
하나도 아쉽지 않다고.
부모에게 할말은 아닌데, 그런 말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오늘은 이런 마음을 거의 처음이자 두번째정도로 친구이개 털어놓았다.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 중 하나다.
그 친구도 비슷한 마음을 겪어봤다고 한다.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물었다.
사실 늘,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친구가 “우리랑 놀때 같을 때는?” 이라고 물었다.
사실 있다. 친구들이랑 바다에서 한면을 얼굴 빼고 모래에 묻은 적이 있는데, 그날 그게 그렇게 재밌고, 걱정 없이 행복했다.
행복이란 게, 서울대 입학하기/왕자님이랑 결혼하기/로또되기 같이 인생 한방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나는 모든 게 아쉽고, 뿌듯하지가 않고, 좋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걸까.
가족과 갈등을 겪느라 고생했었고, 요즘은 좀 나아졌다.
친구 없이 학창생활 6년을 보냈고, 이제 연락하고 지내는 대학교 때 친구는 다섯명 정도 된다.
대학은 삼수 끝에도 원하던 서울대를 못 갔고, 연고대 중 한 군데를 나왔다.
회사는 업계에서 Top3를 가고 싶었지만 못 갔고, 그 아래 티어들 중 한 군데에 다니며, 원하지 않는 일들만 외롭게 잔뜩 하고 있다.
연애는 대학생 때 그나마 좀 하다 최근 몇년은 초단기로, 쓰레기들만 만나 전전하는 중이다. 주변에선 애도 낳아 기르는데 남자친구도 없다.
그래도.
그래도 좋은 날이 올까? 그 말을 믿어도 될까?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말이 제일 슬프다. 믿고 싶은데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