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 않기로 했다
끝이 좋지 않게 헤어진 사람이 있다.
아이를 맡기던 사이였다.
나는 늘 양보했고,
늘 참았다.
그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어제 우연히 수영장에서 마주쳤다.
거기 있는 줄도 몰랐다.
같은 공간에 한참을 있다가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러 달려가다 마주쳤다.
짧은 인사.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이에는
인사까지만 허락되어 있다고.
그런데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이가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엄마가 잘 먹이나 봐?”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눈살이 먼저 반응했다.
아이는 스테로이드 부작용을 겪고 있다.
그 이야기는 여러 번 했었다.
설명도 했고, 상황도 공유했었다.
그런데도
툭, 아무렇지 않게 던져진 말.
배려 없이 가벼운 말이
엄마의 마음을 얼마나 무겁게 하는지
그 사람은 모른다.
아이는 그 기류를 느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게 달려왔다.
1년을 함께 보낸 사람인데
아이의 발걸음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괜히 마음이 짠했다.
아이는
엄마 마음을 먼저 안다.
아이를 맡기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무례한 말들.
참아 넘긴 순간들.
웃어넘긴 표정들.
나는 많이 참았구나.
그때의 내가 안쓰러워졌다.
그럴 필요 없었는데.
처음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람 관계의 시작은 늘 배려가 있다.
하지만
지내다 보면 선을 넘는다.
하나를 해주면 두 개를 바라고
두 개를 해주면 세 개가 당연해진다.
그 ‘당연함’이 시작되는 순간
관계는 기울어진다.
⸻
어느 순간부터
다른 아이와 엄마를 깎아내리며
나와 내 아이를 치켜세웠다.
그 칭찬이
왜 불편했는지
그때는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을’이 되어 있었다.
아이를 맡겨야 하는 엄마의 위치.
혹시라도 우리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까
더 맞추고, 더 웃고, 더 참고.
어느 날은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를 하고
어느 날은 당연하다는 듯 요구했다.
나는 다 맞췄다.
책 잡히기 싫어서.
그랬더니
“너 같은 며느리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서늘했는지.
⸻
결국 나는 물었다.
저 사람은
나만큼 나를 생각하나?
그 질문 하나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관계를 정리했다.
그때서야 보였다.
아이를 돌보는 일을
생색으로 바꾸는 태도.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해도 될 말과 안 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입.
‘나라에서 주는 돈을 눈먼 돈’이라 말하던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 완전히 식어버렸다.
미련은 발톱의 때만큼도 남지 않았다.
⸻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바꾸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선택했다.
참는 엄마가 아니라
지키는 엄마가 되기로.
이제는
내 아이 앞에서
내가 작아지지 않기로.
부디
아이가 다시 잘 적응해 주기를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