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우는 삶

뽀또를 만나다 (1편)

by 제인


늦깎이 산모님이라고 박수를 쳐주던 산후조리원.

나이 많은 엄마라고 놀리는 건지, 축하하는 건지 기분이 묘하게 언짢은 날이었다.


마사지실에 드러누워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뽀또 유치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뽀또가 아무래도 당뇨 같아요.”


아이를 낳고 아이와 내 몸을 추스르기 위해 뽀또를 잠시, 오래전부터 맡기던 유치원에 보내 두었었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간신히 붙잡고 아이 상태에 대해 자세히 전해 들었다.


뽀또가 물을 자주 마시고, 소변도 자주 보고, 결정적으로 눈이 뿌옇게 보인다고 했다.

예전에 선생님 강아지가 겪었던 증상과 너무 비슷하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느새 내 눈가에서 눈물이 미친 듯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산모님, 무슨 일이세요?

자꾸 우시면 시력이 많이 안 좋아지세요.”


마사지를 해주시던 분이 놀란 얼굴로 나를 말렸다.

하지만 나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당장 뽀또를 데리러 갈 수도 없는 처지였고, 그 아이에게 모든 것이 미안하게 느껴져서 감정을 도저히 추스를 수가 없었다.


눈물을 그만 흘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미 한번 터져버린 눈물샘은 어떻게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직장을 다니는 일이 너무 무료하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내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었고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패기 하나는 끝내줬던 것 같다.


홍대 카페 거리를 혼자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카페가 보이면 무작정 들어가 사장님들에게 물었다.

카페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마침 그 무렵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대히트를 하면서 홍대에는 와플 카페들이 줄지어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귀여움에 이끌려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창문에는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고 카페 안에는 온갖 고양이 소품들이 가득했다.


이름은 The Cafe Cafe.


주 메뉴는 아메리칸 스타일 아이스크림 와플과 커피였다.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어 조언을 구하러 왔다고 하자 사장님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 카페를 인수해 보지 않겠냐고.


나는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수락을 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메리칸 스타일 와플 만드는 법을 배우고 여러 종류의 커피를 익히다 보니 어느새 나는 홍대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이 되어 있었다.


어느덧 카페 일은 익숙해졌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비어 있는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도 가족이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T컵 강아지들을 2백만원 3백만원 인터넷에 서 광고가 많이 올라와서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작은 강아지 사진들을 보면서 눈으로 힐링을 한참하고 있으려니 강아지를 한 번쯤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카페에 놀러 온 친구에게 강아지를 키워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내니 신중하라며


“집에 장애인이 생기는 거랑 비슷하다” 고 한다.


동생이 키우지 못해 맡게 된 요크셔테리어 친구네 강아지. 몸이 약하고 방치돤 시간이 길어서 혼자 두지를 못한다고 한다. 밥값이며 병원비며 돈이 이만저만 드는게 아니고 온 가족이 강아지 걱정이 한가득이라고 극구 나를 말렸다.


하지만 충고는 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온갖 귀여운 강아지들이 내 머릿속에 한가득 들어와 있었다. 닥스훈트, 비숑, 웰시코기, 포메라니안, 몰티즈 내가 키워보고 싶은 강아지 종류들을 보면서 매일 다른 강아지들이 눈에 들어오니 행복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네이버 카페 **강사모(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살펴보다가 눈이 똘망똘망하고 털이 새하얀 아기 강아지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어보니 신기하게도 우리 카페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사는 홍대 학생이었다.


카페가 밤 11시가 넘어야 끝날 수 있어서 밤늦게 방문이 가능하다고 부탁하니 그 시간에 흔쾌히 오라고 하였다.


카페를 다 정리하고 부랴부랴 도착하니 밤 11시40분. 그 늦은 시간에 남의집에 간다는게 낯설고 어색하고 지금 잘하는 짓인지 몰라서 긴장을 잔뜩 하고 들어섰다. 여학생 두 명이 반갑게 맞이하여 안도하며 들어서는데 아주 작은 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책상 두 개와 새하얀 털뭉치 강아지가 요래 저래 날뛰고 있는 작은 방.


여학생 두 명이 누우면 여유 공간이 거의 없는 집이었다.


자매인데 엄마가 공부하라고 서울 보내놨더니 강아지를 샀다고 노발대발하셔서 어쩔 수 없이 입양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타지에 와서 외로움을 달래고 싶어 가족을 하나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이 안타까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자정이 넘어있었다.


그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하얀 털뭉치 강아지는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바닥에 앉으니 내 무릎 위로 올라와 껌딱지처럼 붙어 냄새를 맡고, 내 손을 살살 물기도 하고, 가방끈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그 상황이 낯설고 재미있었고,

‘내가 데리러 온 걸 눈치챘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강아지를 무서워하던 나였기에 만지지도 못하고 아끼는 가방을 아낌없이 내주고 그 대신 따뜻한 하얀 솜뭉치의 체온을 느끼며 새 생명을 처음 안은 엄마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네가 내 가족이 되겠구나.”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 인생의 11년을 함께 걸어가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