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필통
국민학교 2학년.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2학년, 지금 내 아들과 같은 나이였다.
몸이 약했던 나는 아주 깡말랐고, 키도 제일 작아서 늘 1번,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작은 아이였다. 수줍음이 많고 눈치를 많이 보던 조용한 아이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외국에서 일하고 돌아온 삼촌이 선물을 한가득 안겨 주었다.
미쿡 필통, 색연필, 샤프, 지우개.
그중에서도 자석으로 “딱” 하고 자동으로 닫히는 필통은 어린 내 눈에 완전히 신세계였다.
나는 그것들을 친구들에게 너무 자랑하고 싶었다. 빨간 문어 가방 안에 예쁜 학용품들을 모두 넣고 학교에 갔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던 모습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날 하교 전, 가방에 학용품을 모두 정리해 넣고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가방이 반쯤 열려 있었다. 분명히 화장실에 가기 전 가방을 닫아 두었던 것 같은데.
이상했다. 그리고 불안했다.
가방을 열어 보니 내 미쿡산 학용품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날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너무 놀라고 슬퍼서 학교에서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선생님에게도 큰 위로는 받지 못했고, 집에 돌아가서는 “왜 잃어버렸냐”며 부모님께 크게 혼이 났다.
그래서 더 아프고 속상했다.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채희범이라는, 그다지 친하지 않던 여자 아이가 싸인펜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싸인펜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나는 슬쩍 만져 보며 뒤집어 보았다. 그 뒤에 내 이름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지우려고 애쓴 흔적 아래로지워 지지 않고 남아 있는 내 이름 세 글자.
나는 잃어버릴까 봐 이름을 아주 크게 써 두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곧바로 담임 선생님께 달려가 말씀드렸다.
그 일 이후 그 아이는 공개적으로 혼이 났고, 나는 사과를 받았으며 물건도 모두 돌려받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아이는 졸업할 때까지 ‘도둑’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녀 학교생활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2학년 이후로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어서 그 소식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물건은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억울했고 여전히 속상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왜 마음 한편에 슬픔이 이렇게 오래 남아 있을까.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때의 어린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잃어버린 학용품을 되찾는 일이 아니라 진심 어린 위로였다는 것을.
“괜찮아.”“네 잘못 아니야.”“많이 놀랐지.”
그 말 한마디가 필요했었다.
어쩌면 지금도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빈자리 역시 그때 받지 못한 위로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가끔 어린 나에게 이렇게 말해 준다.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많이 속상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