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불안 사이
그 아이를 처음 제대로 본 건 어제 아침이었다.
신발이 날아왔다.
꽤 멀리, 우리 앞까지.
시선을 따라가 보니, 맨발로 바닥에 누워 나뒹굴고 있는 작은 몸이 있었다.
이상하게 놀랍지는 않았다.
이미 여러 번 들어왔던 이야기였으니까.
“그럴 수 있는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더 마음이 복잡해졌다.
안타까웠다.
저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
저 상태로 하루를 버틴다는 게 얼마나 버거울까.
그런데 동시에,
불안했다.
선생님을 때리고, 할퀴고, 머리채를 잡고,
아무에게나 달려들 수 있는 아이와
우리 아이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이걸 이해해야 하는 건지,
걱정해야 하는 건지,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내 마음이 자꾸 시끄러워졌다.
작년에는 달랐다.
우리 아이 혼자 수업을 받았다.
누군가는 특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은 우리 아이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그 안에서 소근육이 자랐고,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고,
조금씩, 정말 조금씩 성장했다.
그래서였을까.
올해의 변화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제는 네 명이다.
그중 한 명은,
세 명의 어른이 붙어도 통제가 어려운 아이.
도움반애서 조금은 안정되게
수업을 받아야 하는 시간.
그 교실에
같은 시간에
우리 아이가 함께 앉아 있다.
누군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 아이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다른 아이들은 괜찮은 걸까.
이해하고 싶다.
정말로.
그 아이도,
그 아이를 맡은 선생님도,
그 상황 자체도.
그런데 이해와 별개로
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든다.
이건 틀린 감정이 아닐 텐데.
그래서 나는 묻는다.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
이 구조 안에서 정말 안전한 건지.
누군가를 밀어내고 싶은 게 아니라,
내 아이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 단순한 마음 하나 때문에
오늘도 나는,
이해와 불안 사이를 계속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