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여행자!
어쩌면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수많은 이방인들이 머물다가는 이 별에서
그중 나는 꽤 충실한 이방인이었다
늘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그래서였을까?
책장 사이 고개를 내민
'이방인'의 모서리에 또 한 번 홀리고 말았다.
지나치기엔 너무도 매력적인 그들,
‘카뮈’와 ‘뫼르소’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숨을 삼킨다.
잊혔던 기억이 소환된다.
고3 졸업식을 앞둔 때였다.
딱히 꼭 해야 할 것도, 할만한 것도 없던
공백의 시간이었다.
느닷없이 주어진 자유에 고삐가 풀린 듯도,
할 일을 미뤄둔 것처럼 마냥 불안하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로 들뜨던 시간!
하는 수 없이 학교를 가야만 했고,
딱히 흥미도 없는 지루한 영화로 시간을 때워야만 했다.
수다를 떨며, 하릴없이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목적 없는 일과에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리둥절한 채 교실의 머릿수만 채우는 중이었다.
“째깍째깍!”
나는 매일 시간이 죽는 소리를 듣는 것이 괴로웠다.
의미 없이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까웠다.
간절한 마음으로 별것 없는 집안을
뒤지고 또, 뒤졌다.
소득은 어릴 적 읽던 철 지난 동화책들과
동생의 만화책들
그리고 고전 몇 권이 전부였다.
부모님이 읽으시던 세월을 입은 누런 때깔의 얄팍한 고전들...
선택권은 없었다.
교통비도 간간이 끊기던 내게 허락된 앙상한 유희였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교실에는
‘독서열풍’이 불었다.
책상 위로 컬러풀하고 아기자기한 책들이 쪼르륵 놓였다.
그들의 젊음을 담은 로맨스 소설과
그들의 낯빛을 닮은 알록달록한 책들 그리고,
그 시절 유행하던 젊음의 호기심을 채워줄 추리소설들이었다.
나를 위한 책 따위는 존재하지 않던 가난하고 허기진 책상과
반쯤 부서지고 어긋난 책장을 지키던 고전 밖에는 허락되지 않던 내 청춘!
그런 내 삶을 알 리 없는 친구들은
"왜 그런 책을 읽냐?"라고 내게 물었다.
"원래 고전을 좋아한다고!"
나는 담담히 답했다.
몸을 돌려 의아하단 듯 바라보던 친구들의 호기심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처음 접한 고전들은 난해했다.
우리 세대는 잘 쓰지 않는 늙수그레한 어휘와 난해한 문체들!
내게 그것들은 격식 차리고 멋 부린 어려운 말들이었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삶이 글을 통해 전해졌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았노라며, 말을 걸고 이해를 구했다.
그 세상의 사람들을 이해했다가, 멀어졌다가를 반복했다.
역시,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다를 게 없다며 조용히 책을 덮곤 했다.
망가진 낡은 책장과 텅 빈 공간 그사이를 비집은 고전과 나!
과거나 현재나 버거운 삶!
그 시절 기억 속 하늘은, 내 손 안의 낡은 고전처럼 늘 누리끼리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광수의 소설도 있었다는 것과
꽤 난해했다는 정도만 기억이 난다.
사실, 내게 남은 것은 소설의 내용보다 냄새였다.
매캐하고 꿉꿉한 종이 냄새가 그 시절의 감정과 기억을 대변한다.
책과 나만 존재했다는 사실만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낯선 타인을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던 눈길을 떠올린다.
하지만, 어차피 상관없는 일 아닌가?
어차피 누군가 누구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듯이,
우리 모두 이방인으로 이별에 머무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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