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었다

특별한 여행자!

by 오렌지샤벳


어쩌면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나 그리고 당신은

이 행성을 방문한 이방인일 뿐이니까!

긴 지구 별의 시간 속 스치듯 지나가는 여행자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인지도 모르겠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낯선 이방인들!



수많은 이방인들이 머물다가는 이 별에서

그중 나는 꽤 충실한 이방인이었다

늘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튀어나온 못'처럼 머리를 빼꼼히 내밀곤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책장 사이 고개를 내민

'이방인'의 모서리에 또 한 번 홀리고 말았다.

지나치기엔 너무도 매력적인 그들,

‘카뮈’와 ‘뫼르소’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리고...

묵은 종이냄새에 잠시 멈칫한다.

나도 모르게 숨을 삼킨다.

잊혔던 기억이 소환된다.



고3 졸업식을 앞둔 때였다.

딱히 꼭 해야 할 것도, 할만한 것도 없던

공백의 시간이었다.

목표를 잃은 경주마들의 허무와 무료,

상실 그리고 흥분이 혼재하던

혼란의 시절!

느닷없이 주어진 자유에 고삐가 풀린 듯도,

할 일을 미뤄둔 것처럼 마냥 불안하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로 들뜨던 시간!

우리는 모두 무료했다. 막막했다.

하는 수 없이 학교를 가야만 했고,

딱히 흥미도 없는 지루한 영화로 시간을 때워야만 했다.

수다를 떨며, 하릴없이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목적 없는 일과에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리둥절한 채 교실의 머릿수만 채우는 중이었다.

학교에도, 사회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어중간한 무리들!



“째깍째깍!

나는 매일 시간이 죽는 소리를 듣는 것이 괴로웠다.

의미 없이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까웠다.

내게 “뭐라도!” 줘야만 했다.

목마름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별것 없는 집안을

뒤지고 또, 뒤졌다.



소득은 어릴 적 읽던 철 지난 동화책들과

동생의 만화책들

그리고 고전 몇 권이 전부였다.

부모님이 읽으시던 세월을 입은 누런 때깔의 얄팍한 고전들...

나의 낡고 보잘것없는 삶을 닮은 누더기들이 내 손에 쥐어졌다.

“툭툭!” 먼지를 털었다.

선택권은 없었다.

교통비도 간간이 끊기던 내게 허락된 앙상한 유희였다.



텅 빈 시간의 공허는 젊음을 자극했고,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교실에는

‘독서열풍’이 불었다.

책상 위로 컬러풀하고 아기자기한 책들이 쪼르륵 놓였다.

그들의 젊음을 담은 로맨스 소설과

그들의 낯빛을 닮은 알록달록한 책들 그리고,

그 시절 유행하던 젊음의 호기심을 채워줄 추리소설들이었다.

그들의 젊음이 나 보란 듯이 책상 위에 쪼르륵 보기 좋게 놓였다.



선명한 색채들 사이, 나의 낡고 찢어진 고전을 나란히 올려놓았다.

나를 위한 책 따위는 존재하지 않던 가난하고 허기진 책상과

반쯤 부서지고 어긋난 책장을 지키던 고전 밖에는 허락되지 않던 내 청춘!

그런 내 삶을 알 리 없는 친구들은

"왜 그런 책을 읽냐?"라고 내게 물었다.

"원래 고전을 좋아한다고!"

나는 담담히 답했다.

몸을 돌려 의아하단 듯 바라보던 친구들의 호기심은

이상함과 흥미가 사라져 버린 그 어디쯤에서 등을 돌렸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처음 접한 고전들은 난해했다.

우리 세대는 잘 쓰지 않는 늙수그레한 어휘와 난해한 문체들!

내게 그것들은 격식 차리고 멋 부린 어려운 말들이었다.

고전을 읽으며, 나는 그들의 세상에도 발을 걸쳤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삶이 글을 통해 전해졌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았노라며, 말을 걸고 이해를 구했다.

그 세상의 사람들을 이해했다가, 멀어졌다가를 반복했다.

역시,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다를 게 없다며 조용히 책을 덮곤 했다.



힘겨운 그들의 삶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렸다.

앞서간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임을 깨닫고 위로받기도 했다.

인간과 존재에 대해,

세상이 변해도 여전히 반복되는 고통의 굴레와

외면받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뇌했다.

망가진 낡은 책장과 텅 빈 공간 그사이를 비집은 고전과 나!

과거나 현재나 버거운 삶!

그 시절 기억 속 하늘은, 내 손 안의 낡은 고전처럼 늘 누리끼리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광수의 소설도 있었다는 것과

꽤 난해했다는 정도만 기억이 난다.

사실, 내게 남은 것은 소설의 내용보다 냄새였다.

매캐하고 꿉꿉한 종이 냄새가 그 시절의 감정과 기억을 대변한다.

책들이나 나나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었고

젠체했다는 것 그리고,

책과 나만 존재했다는 사실만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낯선 타인을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던 눈길을 떠올린다.

교실 안이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밖에 있었다.

우린 그렇게밖에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상관없는 일 아닌가?

내 친구들이 구닥다리 낡은 책을 펴 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나’를 바라보는 것과

내가 ‘알록달록 반짝이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그들의 세계를 알기 어려웠고,

그들은 누가 봐도 허접한 모양새의 책을

‘고전’이라며 젠체하며 우기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테니....

어차피 누군가 누구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모두 자신만의 방식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똑같지 않은가?

타인은 모두 내 세계밖 ‘이방인’이지 않은가 말이다.

서로 다르기에 함께 살아가는 재미가 더해지기도 하니,

또 그런대로 괜찮지 않은가?

여행자로서, 이방인답게

이 별의 모든 것을 즐기고, 맛보다 돌아가면 될 일이다.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듯이,

우리 모두 이방인으로 이별에 머무는 중이니까!


사진출처:pixabay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