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에 대한 고찰
매일 퇴근 후에 전화를 하며 서로의 일상을 나누던 18센치남을 차단하고 가장 그리웠던건 그의 목소리였다. 이 패턴은 늘 반복되었다. 새로운 어플남이 등장하고 그와 잦은 연락을 이어가다 오프라인에서 몇 번의 만남을 가지고 누군가의 차단으로 엔딩.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기도 쉽고 끊기도 쉬운 세상이다. 진지한 마음으로 만나는 상대에게도 그러한 현실인데 하물며 어플을 통한 만남은 얼마나 쉽겠는가. 물고기남에게 차단당하고 나이를 열살 가량 낮춰서 속인 구라남과 여자친구가 있었던 18센치남을 연달아 차단하고 나니 묘한 쓸쓸함이 찾아왔다. 짧으면 열흘에서 길게는 이주일까지도 연락을 나누다보면 나혼자 그들에게 정을 줘버리고 마음을 열게 된다. 마음이 열려야 몸이 열리는게 대부분의 여자일테니 이것은 그들이 의도했다고 볼 수도 있다.
아무튼 그 무렵의 나는 이상하게 챗어플을 하기 전보다 더 외로웠고 묘하게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도망쳐서 도달하고 싶었던 곳이 낯선 남자와의 하룻밤이던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줄 사람의 곁이던 그때의 나는 바보같지만 별반 차이가 없다고 여겼다. 오히려 몸을 나누는데 있어 사랑보다 외적인 취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챗어플에서는 현실에선 보기 드문 장신의 몸이 아주 좋고, 심지어 잘생기기까지한 남자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외모에 머리가 돌아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보다 외모 레벨이 높은 남자들과의 어플을 통한 매칭은 결국 나를 갉아먹는 관계가 된다. 남성 사용자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의 여성 사용자가 모두 상위 레벨의 남성 사용자에게 몰리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를 독식한다. 내가 자고 싶은 남자는 다른 여자도 자고 싶어할만한 남자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대게 여자를 깊이 알고 싶어하지 않고 본인의 얘기를 쏟아내는데 익숙하며 재밌기까지 하다. 여자를 만날 기회가 많아질수록 여자를 대하는 것에 있어 자연스러워지고 더 많은 여자가 꼬이게 된다.
강한 힘은 더 이상 큰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뛰어난 힘을 가진 외모는 연애 시장에서 가장 큰 자유를 부여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유를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관계의 단절에 연연하지 않는 여유로운 마음일 것이다. 나는 항상 이런 종류의 여유로움이 부족했다. 언제나 새로운 인연이 생길 때마다 (그것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이 관계의 생명력에 대해 의심했고 나를 약자로 만들었다. 약자가 되는 관계가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게 만들고 관계가 끝나고 난 뒤에는 오히려 미련이 없기 때문에 관계의 역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관계의 단절을 두려워하는 것이 애정결핍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는 것을 매우 늦게 알게 되었다. 마음을 나눴건 좋은 순간만을 공유했건 나와 인연이 닿은 사람이 사라진다고 해서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님에도 나는 두려웠다. 애정도에 따라 두려움의 크기는 크고 작았으나 두려움은 같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의 단절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세상에 떠도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애착 이론을 나는 저주라고 생각한다. 너무 잘 맞아 떨어지고야 마는 저주. 알고도 피할 수 없는, 그러나 내가 혼자만의 힘으로 그 저주를 풀 수 있는가? 나의 지난 30여년의 세월에는 아버지의 존재가 매우 희미하고 든든한 버팀목 혹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고 느끼지 못했다. 물론 아주 다행스럽게도 나에게 금전적으로 짐이 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종류의 인간 실격은 아니었고, 그저 아버지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쉽게 말할 수도 있다. 언제까지 그 이유로 자기 연민에 빠져있을 거냐고. 그렇지만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애정결핍은 내가 평생을 걸고 이겨내거나 참아내야하는 나의 저주이고, 동일한 아픔이 없는 사람은 짐작할 수도 없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어야할 존재로부터 차단당한 기분을 과연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