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취향은 SM
챗어플에서의 첫번째 오프 만남이 구라남과의 강렬한 만남으로 끝이 나고, 나는 한동안 어플에 접속하지 않았다. 또 그런 프로필 사기를 당할까 무섭기도 했지만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는 구라남과의 섹스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역시 연륜과 경험은 무시할게 못된다. 영포티 구라남과의 섹스가 주는 충족감이 나를 챗어플에서 잠시나마 멀어지게 했고 일상으로 돌아가 남자 생각을 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는 짧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던 처음이 어렵지 두번 세번이 뭐가 어렵겠는가. 영포티남과의 만남이 슬슬 잊혀져갈 때 쯤 다시 챗어플에 접속했다. 이 때 눈치챘어야 했다. 만남 어플은 분명 중독성이 있고 나는 그것을 내 의지로 쉽사리 끊을 수 없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던가? 차라리 영포티남과의 만남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끝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지금에서야 생겨난다. 만남 어플을 끊을 수 있었던 골든 타임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영포티 구라남은 본인의 외모와 나이를 아주 많이 속였지만 내게 상처를 주지 않았고 함께 있는 순간에 나를 굉장히 예뻐했었다. 그래서 그를 만나고 난 뒤 한동안 섹스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충만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만족감만큼 그의 외모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자리잡아서 다시금 어플의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모든게 예견되어있던 것일까? 나는 왜 스스로를 상처주는 선택을 하고 말았을까.
이번에는 반드시 내 맘에 드는 외모의 남자를 만나겠다는 결심으로 챗어플의 프로필 사진을 다시 셋팅했다. 영포티남의 상큼한 운동복 사진이 아주 마음에 들었으므로 나 또한 비슷하게 레깅스를 입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선택했다.
레깅스 착용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자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물론 예상 못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도했었지. 레깅스를 입은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제법 몸관리가 된 남자들이 많았다. 쏟아지는 쪽지에는 헬스 트레이너가 정말 많았고 바디 프로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둔 남자들도 가득 했다. 이번에는 지뢰를 밟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신중하게 프로필을 구경했다.
만남 어플에서 여자는 시작은 쉽고 유지는 어렵다. 반면 남자는 시작은 어렵고 유지는 상대적으로 쉬운 듯 하다. 여자가 안정감을 바라는 만큼 남자는 새로움을 원한다고 하니까 어려운 첫 만남이 성사되고 나면 사실 그 다음 승리의 깃발은 남자의 몫이다. 남녀 연애의 기본 원칙 같을 정도로 당연한 진리인데 만남 어플에서의 만남에는 왜 이 원칙이 적용될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을까? 내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남자가 다른 여자들에게도 매력적인 남자일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 이번 만남에서의 가장 큰 실수였다. 그리고 그 소수의 매력남들이 다수의 만남 어플 속 여자들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너무 버젓이 바디 프로필을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두고 자신의 신체를 뽐내는 남자는 부담스러웠다. 번들번들한 기름을 온 몸에 칠갑하고 윤기가 도는 가슴 근육이 마치 욕망의 살덩어리처럼 다가왔다. 레깅스 입은 여자의 사진에 환장하며 달려든 남자들 가운데 어플의 기본 프로필 설정으로 본인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단 한명이 있었다. 그는 안녕 이라고 간단하게 인사하며 본인의 거울 셀카와 몇가지의 숫자를 보냈다.
안녕? (거울 셀카 사진) 182,84,18
나는 그 숫자들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앞의 두가지는 당연히 키와 뭄무게 일 것이고 맨 마지막의 18이 무엇인지 한번에 알 수는 없었다. 설마 18살이라는 건가? 그건 아니겠지 싶어서 좀 더 머리를 굴렸다. 의문도 잠시, 나는 깨달았다. 그가 적은 18이라는 숫자는 본인의 성기 사이즈였던 것이다! 놀란 내가 말이 없자 그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큰 거 좋아해?
이렇게 직설적인 대화라니. 물고기남과의 일상 대화와 감정 교류가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오히려 나를 상실감에 젖게 했던 경험 때문이었을까? 18센치남의 직설적인 화법이 오히려 맘에 들었다. 어차피 이 만남 어플에서는 거의 모두가 최종적으로는 같은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큰 사이즈는 본적도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성기 사진을 전송해주었는데 이 사진의 구도가 압권이었다. 그의 성기는 그가 양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움켜쥐어도 귀두가 살짝 남을 만큼 길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그 자극적인 사진에서 가늠되는 크기에 대한 놀라움만으로 가득했는데 지금 와서 복기해보니, 그의 양 손이 모두 고추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사진은 어떻게 찍은 거지 싶다. 아무튼 그는 그만큼 자신의 성기 길이에 자신이 있었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겨 동네 방네 다양한 여자들한테 자랑하는 대단한 놈이었던 것이다.
18센치남과의 본능적인 대화는 아주 자극적이었고 야심한 밤 외로움을 떼우기에 아주 적합했다. 내가 흥미를 보이는 듯하자 그는 다른 어플남들과 마찬가지로 카카오톡 아이디를 물어봤고 그와 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를 마쳤다.
이 쯤에서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놈이 있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물고기남이다. 그는 내가 어플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던 놈이었는데 그 놈이 나의 새로운 프로필을 보고 다시금 연락을 해 온 것이다. 그토록 궁금했던 놈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새로운 나의 프로필에 연락을 하며 내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유대감을 형성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물고기남이 나에게 뿐만 아니라 어플 내의 많은 여자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직접 알게 되고 나니 그제서야 물고기남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
짐작을 할 수 있어도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정을 쉽사리 떼지 못하는 점이 나의 애정결핍의 특징이다. 쉽게 정을 뗄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그 용기가 부러웠다. 상대방에 대해 아쉬울 것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나는 누구를 만나도 늘 아쉬운 쪽이 되는 것을 자처했고 그것은 아마도 나의 유년 시절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에게 있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 말하면 귀찮을 정도다. 나의 아버지는 단 한번도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는 바람끼도 다분했다. 집안의 가장은 늘 어머니였고 아버지는 밖으로 나돌기만 했다. 여자를 만나면서 밥을 얻어먹고 옷을 얻어입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주었을리 없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중학교 1학년 무렵, 어머니가 드디어 이혼을 결심했을 때 아주 작은 기내용 캐리어에 본인의 짐을 챙겨 집을 나서던 아버지의 뒷모습. 그는 그때 나를 돌아보며 한 마디를 했다.
“아빠 간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중년의 여성이 사춘기를 맞이한 딸 아이를 혼자 키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후 어머니와 나는 정말이지 창문 하나 없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게 되었고 그 집은 샤워를 할 수 있는 욕실도 없이 그저 변기 하나만 있는 화장실을 가지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끼니를 잘 챙겨먹지 못해 나는 마른 체형을 유지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는 적당한 키와 날씬한 몸매 덕분인지 늘 나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이 한 두명씩 나타났다. 내가 먼저 관심을 가지다가도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흥미가 식어버리는 현상이 애정 결핍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사춘기 시절에는 몰랐다. 지금에야 sns와 인터넷을 워낙 어린 시절부터 잘 사용하니까 별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나지만 나의 학창 시절에는 아직 스마트폰이 없었으므로.
나의 어린 시절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18센치남과의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그는 나와 카카오톡에서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핸드폰 번호를 알려줬다. 익명 어플을 사용하는 사람치곤 용감하다고 당시에는 생각했었는데, 이것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초짜의 생각이다. 낯선 사람에게 본인의 핸드폰 번호를 거리낌없이 알려줄 수 있는 성욕에 지배된 뇌를 가진 남자는 대부분 투폰을 사용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18센치남은 그렇게 나에게 서브폰의 전화 번호를 알려주었고 우리는 전화를 하게 된다.
여보세요?
응 나야. 너 목소리 되게 좋다.
그런 말 많이 들어. 지금 혼자야?
어. 나 집에 혼자 있지. 너도 퇴근 한거야?
응. 나는 이따가 헬스장 가서 운동하려고.
아 어쩐지 몸 되게 좋더라 헬창이었구나.
트레이너 해… 근데 아까 내꺼 사진 보고 어땠어?
아 사진.. 좀 놀랬어 그렇게 큰거 처음 봤어.
난 양손으로 잡아도 귀두 쪽이 남아. 풀발하면 더 길어져.
오..타고 난거네.. (사실 이 대화부터 어떻게 맞장구를 쳐줘야할지 난감했었음을 밝힌다.)
응. 그래서 사진보고 젖었어?
??? 뭐라고?
젖었냐고.
엥 아니…
18센치남은 본인의 성기 사이즈에 매우 자신이 있음이 틀림없었고 무려 전화통화를 하면서 나에게 젖었냐고 물었다. 나는 평소 연인과 성관계를 할 때에도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젖었냐 는 그의 직설적인 질문과 목소리가 매우 당황스러웠다. 전혀 흥분되지 않았고 그저 놀라웠다. 그 텍스트를 음성으로 듣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과거 야설에서나 볼 법한 문장이라고 생각되며 오히려 짜게 식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18센치남을 과연 만났을까? 이 에피소드는 제법 길어서 다음 회차로 넘어가는 것이 옳겠다. 나는 전희를 오래 즐기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