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만남은 빠르게

by 하루살이

첫만남은 빠르게


인정할건 인정하고 가자. 첫 오프만남이 실패로 돌아가고 난 뒤 나는 만남 그 자체에 목말랐다. 거의 이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온라인 썸을 타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매일 연락하던 사람이 있다가 없어지니 외로움과 심심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게다가 물고기남은 나를 챗어플과 카카오톡에서 모두 차단한 상태라 그의 근황을 알 수도 없었다.

어차피 어플같은 경우에 여자는 프로필 사진을 걸어둔채로 접속만 하면 쪽지가 쏟아지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아쉬웠던 것은 물고기남이 사라져버렸다는 그 사실. 어플에서 고작 며칠 연락한 사람을 왜 아쉬워하느냐고 묻는다면 길게 할 말이 없어지지만 아마 이 감정은 그냥 사람과의 인연 자체를 쉽게 놓지 못하는 나의 특성에서 온 것일테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고유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물고기남은 물고기남으로 내게 고유한 사람이었고 그가 채워줄 수 있는 것은 그 아무도 채워줄 수 없다. 이런 마음이 연애를 할 때마다 나를 늘 성실한 연인으로 만들어줬다. 그간의 연애를 통해서 성장했는가? 그것은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좋은 어른으로 성장했다면 챗어플을 하며 고통스럽지도 않았겠지.


아무튼 물고기남 이후로 나는 빠른 만남을 위해 챗어플에서 쉬운 여자가 되기로 한다. 전 연애 이후 섹스를 안한지도 꽤 된 시점이라 몸이 심심하기도 했다. 외롭다는 말은 너무 감성적이다. 그냥 몸도 마음도 심심했다고 하자. 여자의 경우에는 쏟아지는 쪽지 속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프로필 사진을 보고 남자를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했다. 쉬운 여자가 되기로 마음 먹은 내 눈에 띈 놈은 31살의 엔지니어라고 본인을 소개한 운동복 차림의 남자였다.

31살이면 나이차이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프로필 사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헬스장 벤치에 앉아서 운동 중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얼굴이 반만 드러난 사진이었다. 대화는 평범했다. 여기서 몇 번 만나봤냐느니 섹스 파트너 관계 해본 적 있냐느니 하는 시덥잖은 소리들이다. 대부분 이런 대화의 답은 정해져 있다. 어플에서 몇번 만나봤어요? 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한번도 없거나 한 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번도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사실은 너무 많이 만나봐서 기억도 안나고 귀찮으니까 추가 질문이 들어올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한 번도 안 만나봤다고 하는 경우거나 진짜 한 번도 없거나이다. 정말로 한 번도 안만나본 경우에는 대화에서부터 티가 난다.


이 운동남은 과거 섹스 파트너가 한 명 있었고 그녀가 남자 친구가 생겨 관계를 정리했다고 밝혔다. 그는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만나려면 평일 저녁에만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물고기남과 했던 것처럼 연락을 오래 하며 정이 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운동남과 빠른 약속을 잡았다. 삼일 뒤 평일 저녁에 바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는 흔쾌히 오케이를 했고 딱 붙는 원피스를 입고 오라는 주문도 했다. 그런 옷이 없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들어주기로 했다. 그리고는 그가 목소리를 한 번 들어야겠다며 오픈 카카오톡 주소를 내게 건넸다. 수다를 떨며 감정을 교류할 것도 아닌데 목소리를 왜 들어야했는지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몇 번의 만남 이후로 알게된 사실이 생각보다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플남들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대화를 하기위한 목소리 말고 신음소리를 위한 목소리.


오픈 카카오톡은 모두 알겠지만 본인의 원래 카카오톡 프로필로 접속하지 않아도 되는 가상의 대화방이다. 그가 만들어준 오픈 카카오톡방에서 우리는 보이스톡을 짧게 했고 운동남은 나의 목소리가 얇고 높다며 좋아했다. 그의 목소리는 제법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이것은 분명한 레드 플레그였음에 틀림없는데.. 내가 무시했다. 정말이지 촉은 과학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 숙성되어있었다. 이건 와인도 아니고 썩은 것에 가까웠는데 섹스가 너무 하고 싶었던 나는 그 레드 플레그를 무시한다. 아주 싸그리.

몸이 심심한 내가 한 최악의 선택이 무엇이었는지 여러분들이 본다면 놀랄지도 모른다. 당연히 섹스했겠지. 그건 예상 가능했겠지만, 나는 한 술 더 떠서 그의 실물을 확인하지도 않고 그를 모텔로 부르는 최악의 실수를 하고야 만다. 그가 부른 장소로 내가 가야한다면 알 수 없는 제 3의 남자라던지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어있을 것만 같은 두려운 상상에 나는 직접 대실을 예약했고 운동남에게 주소와 방 번호를 전달했다.


조금 늦을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 있으라는 그의 말에 나는 방에서 그를 삼십분 정도 기다렸고, 그가 벨을 눌렀다. 세상에 그를 처음 마주한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31살이라던 그는 어리게 봐줘야 마흔일 것 같았고 180이 넘는다던 키는 신발을 벗자마자 170으로 내려왔다. 놀란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얼만 타고 있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문을 닫고 들어왔다. 어플에서의 나이는 내가 분명 더 많은 설정인데 현실 세계의 그는 나보다 열살은 많아보이는데 무슨 말을 건네야 하나? 도무지 “너”라는 단어가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몹쓸 구라남이었던 것이다.


구라남은 오프 경험도 많은 듯 했다. 당황하는 나를 자연스럽게 무릎에 앉히더니 본인이 할 일을 했다. 얼굴을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암막 커튼을 아주 꼼꼼하게 닫아 조금의 빛도 들어오지 않도록 했고 모든 불을 꺼버렸다. 그는 분명 결혼도 했을 것 같고 물고기남과는 다르게 연락도 매일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아마 자식도 있지 않았을까? 열 살 가량 많아 보이는 남자와의 섹스는 나쁘지 않았다. 섹스 자체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그는 매우 능숙했고 여자의 몸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당연하겠지 경험이 많을테니까. 그렇지만 내가 만나고 싶었던 것은 프로필 사진의 그 상큼한 운동남이었지 영포티가 아니었단 말이다. 영포티 구라남은 애무에도 능숙했고 삽입에도 능숙했다.

나는 구라남에게 농락당한 느낌이었다. 섹스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며 나를 위로하려고 해도 이 정도의 나이차이라면 내가 돈을 받아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불쾌했다. 사진을 보정하는 정도의 구라는 귀여운 수준이다. 구라남은 분명 나이를 열살 가량 줄였고, 키는 십센치 이상 뻥튀기 했다.


그와 조금도 더 같이 있고 싶지 않아 먼저 내보냈고, 짧은 인사를 하고 오픈 카카오톡방을 나오고 그의 답장을 보지도 않고 그를 차단했다. 첫만남을 너무 빠르게 하려다 보니 십년이나 썩은 걸 먹어버렸다. 세상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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