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대화가 가능해?

by 하루살이

진지한 대화가 가능해?


“안녕?” 그가 나에게 카카오톡으로 말을 걸었다. 당시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챗어플의 프로필 사진과는 다른 것이었지만 여전히 뒷모습이었다. 물론 그에게 아이디를 가르쳐주기 전에 얼굴이 나오지 않은 사진으로 변경한 것이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챗어플 속의 프로필 사진과 대부분 같았지만 여러 장의 사진 속에 옆모습이 나온 사진이 있었다. 호감도 상승. 그의 외모는 현실 세계에서도 여자들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해 보였다. 선수 출신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큰 몸통과 키가 가늠되는 사진들이었다.


카카오톡에서조차 나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어 그는 내심 실망하는 듯 했지만 얼굴 사진을 보여달라는 강요는 하지 않았다. 전 남친과의 이별 얘기를 계속해서 끄집어 내는 나에게 그는 “그냥 행복하길 기도해..” 라고 말했다. 그 말 때문이었을까? 대화를 나눈지 몇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그를 멀쩡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게 되었다.


카카오톡 친구가 된 이후로 그는 나에게 매일같이 연락하며 친밀도를 쌓았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그와의 연락으로 채우며 마치 한번도 만난적 없는 사람과 썸 아닌 썸을 타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인테리어 사무소에서 일한다는 그는 비교적 업무 시공간이 자유로웠고 프리랜서인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아주 자주 연락했으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다. 그는 출근해서 다루는 공구의 사진을 내게 보내주기도 했으며 운동을 가는 날에는 꼭 본인의 몸이 보이는 거울 셀카를 전송해주었다. 이렇게나 매력 어필을 하는데 나도 질 수 없다는 심리 조금, 당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지 일년 정도 되어서 몸매에 나름 자신이 있었던 심리가 합쳐져 본인 또한 레깅스 입은 사진을 비롯해 비키니를 입은 사진 등을 전송하였다. 서른 중반의 남녀가 온라인을 통해 서로의 몸 실루엣을 확인하고 대화도 나누는데 다음 스테이지는 뻔하지 않나? 어쨌든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는 나에게 남녀 사이의 필수 질문을 건냈다.



너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

나는 가슴 큰 남자 좋아해ㅋㅋㅋㅋㅋㅋㅋ

가슴? 나 개 커 (바닷가에서 찍은 가슴 근육이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사진을 전송)

우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부라자 필요해..???

ㅋㅋㅋ너꺼 안맞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뒤질래

나 나보다 큰 여자 만나본 적 없음.

아 진짜? 너는 여자 뭐 보는거 없어?

난 눈 예쁜 사람 좋아해.

(눈만 보이도록 자른 사진을 전송하며) 내 눈은 어때

ㅎㅎㅎ귀엽네

넌 나 안 보고싶어? 왜 약속 잡자는 말을 안해?

하려고 했어. 요번 주 토요일 시간 돼?

주말에 일해ㅠㅠ 금요일 저녁은 안돼?

금요일 저녁 돼~



그렇게 그와 나는 연락을 주고 받은지 일주일 정도 지나고 약속을 잡았다. 그와의 꾸준한 연락에 길들여져버린 당시의 나는 그와 연락을 주고 받기 위해 핸드폰을 수시로 확인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차라리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상태의 연인이라면 연락에 이렇게 목매지 않아도 될텐데 그래도 마음이 가는 건 막을 수 없다. 나는 이미 그의 가슴 근육에 정신을 홀라당 빼앗겨 버린 뒤였으니까. 그와의 만남이 삼일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꾸안꾸 패션을 검색하며 나의 퍼스널 컬러에 제일 잘 맞는 옷을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실제로 만나게 되면 무슨 대화를 나누어야 할까 너무 들떠보이지 않으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마치 데이트가 처음인 사람처럼. 그 즈음의 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선톡을 자주 날렸었다. 이별의 후유증이 짙게 드리워진 사람인 것이 티가 나지 않았을리 없다. 다음의 대화 또한 어김없이 나의 선톡으로 시작된다.



우리 이제 곧 보넹

뭐 먹을랭

넌 뭐 좋아해? 내가 너네 동네로 갈게.

좋지ㅎㅎ 초밥 먹을래?

헐.. 나 초밥 제일 좋아해. 너는 물고기 좋아한다면서 초밥 먹어도 돼?

그게 무슨 상관이야ㅋㅋㅋ너 술 마셔?

나 입에도 안 댐ㅠ

아 진짜? 아쉽

그럼 너 금욜에 퇴근하면 몇시야?

금요일? 6시에 퇴근하지. 그건 왜?

??? 우리 금요일에 보기로 했잖아.

(한참의 정적이 흐른 뒤)

아 우리 토요일에 보기로 한 줄 알았어.

아 진짜? 그럼 금요일엔 시간 안돼?

응 ㅠㅠ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정말 너무나 아쉬웠고, 그와의 만남을 위해 새로 주문했던 택도 뜯지 않은 꾸안꾸 패션의 오트밀 색 가디건마저 야속했다. 감정이 많이 요동치긴 했었던 모양인지 엄청난 상실감에 눈물이 날 것도 같았는데 보통 약속 날짜를 헷갈렸다면 다음 약속을 잡으려 시도하는게 보통의 방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그와의 카카오톡 대화방에 들어가보니 내가 보낸 어쩔 수 없지 뭐…라는 카톡의 읽음 표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나의 카톡을 안읽씹 한 것이다! 맙소사 레드 플래그가 머리 속에 스쳤다.


그가 혹시 나를 차단했을까..? 사실 그와 연락했던 지난 열흘 남짓의 시간 동안 핸드폰 번호를 교환한 적은 없었고, 채팅이 아닌 연락이라고는 카카오톡의 보이스톡을 이용한 삼분 남짓의 통화가 전부였다. 괜시리 급하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클릭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기본의 회색 사진으로 변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나를 메세지 및 프로필 차단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도 어플을 통해서 꽤나 오랜 시간을 매일 같이 연락을 주고 받았던 정이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차단을 한다고? 나는 너무 놀라웠다. 그리고 그 순간, 챗어플이 다시 생각났다.


물고기를 좋아하며 인테리어 사무소에 다니는 그를 물고기남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그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지만 그는 다시 등장한다. 물고기남을 기억해주시기를. 아무튼 나는 물고기남과 카카오톡으로 연락 수단을 변경하고 난 뒤로는 챗어플에 접속하지 않았었다. 이 얼마나 순진한 행동이었는지..

챗어플의 재밌는 점은 유저의 최종 접속 시간이 프로필에 기록된다는 것이다. 그와의 대화를 즐겨찾기 해놓았기 때문에 챗어플에서 그의 아이디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의 아이디를 클릭해보니 “상대방이 고객님을 차단했어요ㅠㅠ..” 하는 알림이 있었다. 그는 카카오톡 뿐만 아니라 챗어플에서도 나를 차단했고 최종 접속 시간으로 미루어 보아 챗어플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다시 한번 이별한 느낌이었다. 동갑 내기였고 나의 취향에 맞는 외모를 가진 그의 일방적 차단은 0고백 1차임의 느낌을 주었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직 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아주 잠시 접속했던 챗어플에서 그 짧은 순간에도 낯선 남자들의 수많은 쪽지가 쏟아졌다. 이 서러움을 아무나 붙잡고 털어놓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냥 헐벗은 프로필 사진의 남자에게 답장을 했다.



안녕하세요? 서울 사는 30대 직장인 남자입니다. 만나지는 않고 그냥 서로 야한 사진이나 주고 받으면서 놀아요.

아 저 할말 있어요 ㅠㅠㅠㅠㅠ

말씀 하세요.

제가 여기서 처음으로 오프 약속을 잡았단 말이에요? 근데 그놈이 약속 날짜 헷갈리더니 그냥 저 차단했어요ㅡㅡ 제 얼굴 사진 보고 그런걸까요?ㅜ 만나기 전에 얼굴 절반 정도 나온 사진 교환했었는데…

아 그러셨구나.. 여기 이상한 놈들 많아요. 심심님 문제 아니에요. 잊어버리세요.

아니 그래도 열흘 넘게 매일 같이 연락했는데 어떻게 차단을 박아요?ㅠ

그냥 책임감 없는 행동 한거죠. 잘생겼었어요?

음 그냥 몸이 좋았어요.

여기 몸좋은 사람들 많잖아요. (본인의 상의 탈의한 사진을 전송하며) 저는 어때요?

몸 좋으시네요… 아니 근데 진짜 서로 커리어 얘기도 하고 지난 연애 상담도 해주면서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거든요 동갑이었고 연락한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이럴수가ㅠㅠㅠㅠ

연락하던 여자가 심심님 말고 더 있었을 수도 있고 우선 순위가 밀린 걸 수도 있죠. 여기서 연락까지는 쉬운데 만나려면 진짜 쉬워보여야 해요.

쉬워보여야 한다구요?

네네 어차피 다들 목적은 섹스하려고 만나는 거니까. 쉬워보이는게 중요해요.

헐.. 근데 저희는 그런 야한? 얘기는 하나도 안했었거든요. 진지한 얘기 많이 했던 것 같은데..

ㅎㅎ 여기서 만난 사람이랑 진지한 대화가 가능해요?



나이도 알 수 없는 살색 복근 사진의 그의 마지막 말에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만난 사람이랑 진지한 대화가 가능해요? 그렇다. 나는 챗어플을 완전히 잘 못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쉬워보이면서 진지해 보이지 않아야 만남까지 갈 수 있다는 건가. 이미 한 번의 만남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나니 묘한 승부욕 같은게 생기고 말았다. 나를 구렁텅이로 몰아넣게 되는 시작이었다. 구렁텅이 정도면 다행이지, 이 더러운 늪은 이후 반년 정도가 넘도록 지속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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