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어플의 세계로 들어가다.
나는 뚜벅뚜벅 스스로의 의지로 만남 어플의 세계로 걸어들어갔다. 처음에는 정말로 순수하고도 어리석게 낯선 사람들과 채팅을 하려고 했다. 이것이 거부감이 없을 수 있었던 데에는 나름의 변명을 덧붙이자면, 나의 어린 시절은 천리안과 같은 인터넷으로 익명의 상대방과 채팅을 하는 것이 인터넷 시대의 거의 유일한 유희이기도 했다. 그래서 채팅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 수 있었고 사실 어플을 통해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싶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필 많고 많은 만남 어플들 가운데 왜 그것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진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색어 최상단에 노출되었던 어플을 바로 설치했다. 앞으로 그 어플의 이름을 “챗” 이라고 바꿔 부르기로 한다. 챗어플은 사용자의 신원을 인증하는 절차가 필요없었다. 내가 남자가 되고 싶으면 남자가 될 수도, 여자가 될 수도 있었다. 또한 나이도 원하는 나이로 설정할 수가 있었으며, 18세부터 99세까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현실 세계의 나와 완전히 다른 챗어플만의 부캐를 설정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필 사진 업로드 또한 필수가 아니었다. 나는 아이디를 “심심ㅎ”으로 적고 지역은 서울로 나이는 현실 세계의 나이보다 2살 어리게 설정했다. 나이를 어리게 설정한 것은 솔직히 나도 순진하기만 한 여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더 어리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이상은 양심에 찔리기도 하고.
부캐를 생성하고 해외 출장을 갔을 때 찍었던 전신 뒷모습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자마자 정말 많은 채팅이 쏟아졌다. 정말로 쏟아져 들어왔다. 모두 남자에게서. 채팅방이 얼마나 많이 생성되는지 스크롤을 내려가며 방을 찾아서 들어가야할 정도였다. 첫 인사는 다들 비슷했다. 안녕하세요 하고 정중하게 묻는 사람도 있고 안녕? 하고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많은 채팅방 사이에서 나의 이별 얘기를 진득하니 들어줄 만한 순진한 사람은 누구일까 대화를 건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전부 확인했다.
프로필 사진이 없는 사람도 많았고, 프로필 사진이 있다 해도 적나라한 나체를 드러낸 사진이 다수였다. 가슴 근육과 복근을 뽐낼 수 있는 상의 탈의 상태의 사진이 남성 유저들 프로필 사진으로 인기인 듯 했다. 처음 어플을 설치했을 때의 나는 몸 좋은 남자와 한번 뒹굴어 보려는 심리는 없었기 때문에 살색으로 가득한 프로필 사진은 일단 제꼈다. 너무 위험해 보였으니까. 내가 등록해놓은 것과 비슷한 평범한 일상 속 모습이 드러난 사진을 프로필로 해놓은 사람은 그 중 단 한명이었다.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로 단 한명. 프로필 사진 속에서 그는 곤색 트렌치 코트를 입고 있었고 골무같은 비니를 쓰고 있었으며 귀여운 나이키를 신고 있었다. 뒷모습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넘겨보니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 찍은 것 같은 사진도 등록되어 있었다. 지금이라면 이 사진 설정에서부터 꾼의 향기가 난다고 확신하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사진에서 드러난 그의 패션 센스도 마음에 들었지만, 헬스장에서 찍은 두번째 사진이 더 맘에 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봐… 라고 부끄럽게 변명하면서 그에게 답장을 했다. 그는 나에게 안녕하세요(합장) 이라고 말을 걸었다. 나는 합장 이모티콘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을 즐겨 쓰는 남자들은 대부분 감성충이었고 회피형에 가까웠다. 나의 편견이지만 어쩔건데?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도 안녕하세요. 라고 건조하게 답장을 했고 그는 나의 프로필 사진을 칭찬했다. 그는 내게 몇살이냐며 물었고, 우리는 동갑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2살을 속였으니 내가 누나여야하지만 그의 나이도 진실일지 알 수 없으니- 우리는 챗어플 속에서 동갑이었던 것이다.
프로필 사진 예쁘셔서 대화 많이 올 것 같아요.
많이 오죠ㅎㅎ 근데 다들 어디 사냐고 묻던데요? 어디 사는게 뭐가 중요하지.
발정난 놈들이라 그래요. 어플 설치한지 얼마나 됐어요?
저 오늘 깔았어요. 님이랑 대화 처음 하는 거에요.
아 그래요? 저도 깐지 일주일 정도 밖에 안됐어요. 동갑인데 말 편하게 할까요?
그래ㅋㅋㅋ 야 너 시간 많으면 내 이별썰이나 들어줄래?
ㅋㅋㅋ알았어
내가 헤어진지 삼개월정도 됐거든? 근데 일년 좀 넘게 만나면서 돈을 내가 다 쓴거야.
원래 퍼주는 스타일?
아 모르겠어 근데 걔가 나보다 좀 많이 어리기도 했고.. 근데 또 보고싶은데 연락하긴 싫다?
나는 헤어지고 연락해 본 적 단 한번도 없음. 난 딱 한번만 물어봐. 진짜 헤어질거냐고. 그리고 헤어지자 하면 바로 끝임.
우와.. 정 없다ㅋㅋ 너 마지막 연애 언젠데?
나 일년 넘었어 연애 안한지. 지금 인테리어 사무소에서 일하는데 2년쯤 뒤에 내 사무소 차리려고 돈 빡쎄게 모으는 중 ㅎㅎ (집 사진을 보내며) 이쁘게 차려놓고 지금 저녁 먹고 있음.
오 집 진짜 깨끗하네 혼자 사나봐?
응. 나 본가가 대구라서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는 거야. (미니 어항 사진을 보내며) 집에서 물고기도 키워. 니모랑 같은 종류야.
우와 진짜 귀엽다ㅎㅎ 이거 물갈이도 해줘야되고 손 많이 가는 거 아냐?
어렸을 때부터 물고기를 좋아했거든..(물고기 캐릭터 모양의 생일 케익을 든 사진을 보내며) 내 생일 때도 엄마가 니모 케이크 해줬어.
짱 귀여워ㅋㅋㅋ 야 너 얼굴 좀 보이는데, 잘생긴 거 같은데?
아니야.. 그냥 쌍꺼풀 없고 곰 같다는 소리 많이 들어. 어렸을 때 운동 했어서.. 선출이야.
그 놈의 선출! 선출은 선수 출신의 줄임말로 내가 약 삼십여년을 살면서 현실 세계에서는 마주칠래야 마주칠 수 없던 선수 출신들이 챗어플 속에는 왜 이렇게 많은 건지. 그들이 죄다 거짓말쟁이인건지 아니면 진짜 선수 출신들이 여자를 좋아하는게 맞는 건지 나는 고추가 안달려있어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그는 그 짧은 몇 시간의 대화 속에서 나에게 본인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전달하였고 그 정보들은 대부분 여자가 흥미를 가질 만한 요소들이었다. 내가 그에게 끌리는 듯 하다고 그가 느꼈던 모양이다.
우리 카톡할래?
라고 그가 물었다. 전 남친과의 이별 이후 외모가 마음에 든 남자와의 실시간 채팅은 매우 즐거웠고 도파민으로 가득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아주 쉽게 그에게 내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