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삶'과 回生

by 김헌준 Hearn Kim


붓다의 말씀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망한 삶'과 그 '망한 삶'에서 回生하는 방법을 말하고 계신 것인데....


'망한 삶'이란? 일상에서 12연기 流轉門(무지에서 출발하여 ~ 최종적인 고통덩어리 라는 삶의 절벽에 처함)이 일어나고 있고 또 계속 되풀이 되고 있어(= 이것이 진짜 輪廻의 삶 임) 빠져 나오지 못하는 '시지프의 돌'을 굴리는 고통스런 삶의 반복을 말한다.


'망한 삶'의 대표적인 예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心을 들여다 보면 그 心에 묶여있는 그 무엇들(이것을 결박, 속박의 대상들이라 함). 흔히 '마음이 청정하다' 라는 것은 이러한 속박들이 없는 것을 말함. 예를 들어, 어린아이의 마음에 무슨 결박상태가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는 '누구든지 이 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 고 하셨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두개 혹은 한 보따리 정도의 속박들이 있지 않은가? 재물에 대한 불안감? 사회적 관계에서의 불안? 인생 자체에 대한 무지? 혹은 왜 사는지나 알고 있나? 왜 빛이 파장인지 입자인지 햇갈리나? 영혼과 육체는 같은건가 다른건가?


'망한 삶'이 '속박' 이라면 무엇 땜에 속박이 생기는가? 12연기 유전문을 한번 쓱 훑어보면 '욕탐'이 모든 속박들을 마음에 바느질 해 놓았다는 것을 알게된다. 부지불식 간에 바느질 당하네? 눈뜨고 코베이는 세상이라더니?


속박(결박)이라는 것을 도식화 하면,


心 ← 欲貪 → (결박의 대상이 되는) 이런저런 것들


12연기라는 인과관계의 흐름은 대단한 통찰이다. 무명에서 출발은 하였으나 최종적인 苦의 덩어리에 이르기 까지 거치는 중간 정류장들이 사실은 다 한가지로 같은 것들. 그 중간 정류장에 識이라는 것이 있다. 이 識을 예로들어 불교적 해석을 한번 살펴본다.


분별하는 의식에는 心意識 할 때의 意와 識이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성적으로 분별해서 안다 라고 할 때는 意를 쓴다. 물론

意에도 올바른 作意와 그릇된 作意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망한 삶으로 향하는 조각조각 분별하는 경우를 識이라고 한다. 그래서 붓다는 이렇게 말한다 ;


"벗들이여, 안(眼, 눈)으로 색(色)을 보고서, 여기 한 비구의 식(識)이 색상(色相)을 따릅니다. <색상(色相)의 맛에 매이고, 색상(色相)의 맛에 계박되고, 색상(色相)의 맛에 결박 되어 상응하는> 식(識)은 밖으로 산란되고 흩어졌다’ 라고 말해집니다."


​이렇게 보이는 相을 따라 (즉 꼴리는데로) 色이 色들로 증장해 나가는 상태를 망한 삶의 과정으로 본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Reality is not what it seems(by 카를로 로벨리).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금강경).


보여진 모든 相은 허상이다. 왜? 相이 만들어 지는 원리는 '마음이 가진 欲貪의 작용으로 대상을 그 마음에 바느질 하는 현상.


그래서 붓다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밖으로(bahiddhā) 산란되거나 흩어지지 않고 안으로(ajjhattaṃ) 자리 잡지 않는 ‘그의 식(識)’을 면밀히 관찰할 때, 비구는 <집착하지 않지만 동요하지 않는 그런 방식>으로 그렇게 면밀히 파악하여야 한다.


"식(識)이 밖으로 산란되거나 흩어지지 않고 안으로 자리 잡지 않을 때, <집착하지 않지만 동요하지 않는 사람>은 미래에 <생(生), 노사(老死)와 고집(苦集)>의 발생은 없다."


'밖으로 산란되거나 흩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과 짝자꿍 하며 정신없이 빠져들지 않는 것.


'안으로 자리 잡지 않을 때' 란? 心적으로 의미부여 하며 연연해 하지 않는 것?


欲貪을 해결 하자는 것인데, 貪을 해결 하겠다고 마음을 멈추는 사마타(명상 등)로는 일시적 효과 만 있다는 것(즉 心해탈). 다시 재발 한다는 것. 그래서 영구적인 처방은 12연기의 출발점인 '無明'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 (慧해탈). 어떻게?


올바른 作意 ⇒ 正見 ⇒ 팔정도 ⇒ 苦滅(4聖諦)에 대한 智(앎) ⇒ 환멸문 ⇒ 苦蘊의 滅, 결국은 <탐진치가 모두 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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