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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ie Dec 17. 2023

아이의 공부, 엄마의 공부

우리 아이가 타고난 씨앗은 무엇일까

우리 가족이 뉴욕에 가게 되었다고 주변에 알렸을 때, 엄마의 경력 단절이나 코로나 이후에 급격히 악화된 뉴욕의 삶의 질에 따위 신경 쓸 겨를 없이 다들 반사적으로 축하의 말을 전했다.


 특히 자녀들을 더 키워본 선배들은 아이들이 해외에서 짧게나마 공부해 보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 된다며 뉴욕행을 적극 지지했다. 지지만 한 것이 아니라, '번잡한 뉴욕보다 한적한 뉴저지가 아이들 공부에 낫다더라'. '방학 때, 섬머 스쿨 잘 보내면 그게 다 스펙이 돼서 나중에 수시 쓸 때 도움이 된다더라'. 등등 아이들 교육에 관련된 조언들도 쏟아내 주셨다.

 

 그런 주변의 조언 때문이었는지, 아님 나 스스로도 애들 교육이라도 착실히 챙겨 와야 경단이 덜 억울할 것 같아서였는지 미주 지역 맘카페를 열심히 배회했다. 맘카페 특히 주재원 가족이나 국제학교 부모들이 가입되어 있는 카페에서는 어지간한 학원가 우스울 정도로 교육 열기가 뜨거웠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원어민 영어 튜터를 고용해야 한다거나, 어렵게 감잡아온 영어 녹슬지 않으려면 무조건 대치동 리터니 전문 학원에 다녀야 된다는 것이 그 카페에서는 상식이었다. 마치 초원에서 큰 사슴 잡아와 가족들에게 과시하는 사냥꾼처럼 나는 "교육" 정보를 인터넷에 물어다가 퇴근한 남편에게 생색내듯 전달하고 우리 부부는 밤새 아이들의 교육 계획을 세웠다. 미국행 비행기 타기도 한참 전에 말이다.   

 

 그렇게 미국에 도착해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지 만으로 4개월이 꼬박 지났다. 미국 가기 전부터 장대하게 새워 놓은 계획은 역시 예상대로 하. 나. 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계획을 세웠다는 것조차도 기억이 가물할 지경이다.


 미국 가면 아이들은 금방 쫓아간다는 주변의 말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4개월 지나도 쫓아가기는커녕 하루하루가 험난하고 어렵다. 딱 영어 수준이 고만 고만한 친구들하고 짧은 영어로 용케 친해지긴 했지만 학교에서 뭐 배웠냐고 하면 "몰라, 자석으로 뭐 하던데?" 하며 천진난만하게 엄마 속을 긁는다.

 게다가 학교 수업에 방과 후 프로그램까지 끝나고 집에 오면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고. 한국보다 등교가 빠른 미국 특성상 잠자리에 일찍 들어야 하는데, 그 시간에 맞춰 아이들 공부를 봐줄 선생님 찾기도 어렵다.

 대졸자 엄마표 과외라고 해보려고 해도 그 마저도 쉽지 않다. 38개월 막내둥이를 떼어놓고 언니들 공부를 봐주려면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울리거나 유튜브 앞에 앉혀놓거나.


아이들의 공부가 내 의지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마음이 초초해졌다. 한국에서 차곡차곡 공부를 쌓아가고 있는 조카나 친구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불안감이 치솟았다. 굳이 미국 안 가도 대치동 영어학원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서 영어로 작문을 한다는 도시괴담 비슷한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 애들만 뒤쳐지는 거 아닐까? 걱정이 쌓였다. 대치동 애들은 이런 것도 한다는데 넌 어쩌려고 이러냐는 수준 이하의 타박도 끊이질 않았다. 모진 엄마 밑에서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이 보이면 불안함이 더 커졌다. 한번 시작된 악순환이 멈출 줄 몰랐다.


 사실 나의 불안의 시작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체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해외에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으니,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 뭐가 제일 필요한 지 알 방법이 없었다. 애써가며 찾고 있는 튜터가 독인지 득인지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다들 해야 한다고 하니 했다.

   

  어느 날 수학 공부를 하던 큰 딸이 내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꾹꾹 눌러가며 문제를 풀었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당황해 왜 우냐며 위로 아닌 타박을 했는데 아이는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큰 아이, 둘째 아이가 5년 동안 다녔던 발도르프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하늘에서 받은 씨앗이 있고 부모는 그 씨앗대로 자라게 하는 역할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린이집 다닐 때는 무슨 꿈꾸는 소리 하시나 했는데 아이들이 한 살 한 살 자라면서 곱씹어보니 이 보다 더 뼈아프게 와닿는 말이 없다. 내가 중요한 걸 잊고 있었나 보다

 

 미국 오기 목표했던 남들이 하고 와야 한다는 계획과 진도들은 싹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씨앗이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들이 지금 뭐가 필요한지 처음부터 다시 살펴야겠다.

 

 아이의 공부가 아니라 엄마의 공부가 우선이 것 같다

 오늘부터 시작 내 아이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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