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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ie Jan 25. 2024

맨해튼에서 어린이집 보내기

뉴욕 공립 3-K 뭐가 다를까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메트로폴리탄 뉴욕 지역에 아이들과 이주하게 된 가족들은 제일 먼저 뉴저지로 갈 것이냐, 뉴욕으로 갈 것이냐부터 고민하게 된다. 세계의 중심, 뉴욕에서 한 번 살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래도 한국 사람이 애들 키우기에는 뉴저지 만한 데가 없다는데 하며 몇 날 며칠을 고민 속에 보내는 것이 이곳에서 만난 한국 엄마들의 (심지어 몇몇 중국 엄마들도!) 동일한 경험이었다. 지금도 뉴욕, 뉴저지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맘카페에는 아이들 교육에 어디가 좋겠냐며 묻는 글이 꾸준히 올라는 온 걸 보면 확실히 쉬운 결정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고 내가 뉴저지에 대해서 경험한 바가 없으니 뉴욕과 뉴저지를 비교하기란 어불성설이다. 다만 어쩌다 보니, 뉴욕의 공립학교 시스템을 3-K부터 중학교까지 다채롭게 체험하게 되었으니 뉴욕 학교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과 뉴욕의 공립학교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적어보려 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어린이집 이야기다.



 1. 3-K, PreK 무상 교육

  미국에 오기 전에 제일 걱정이었던 것은 역시 막내 어린이집이었다. 다둥이+맞벌이 조합의 가공할만한 어린이집 입소 가점으로 무장한 우리 막내는 큰 어려움 없이 집 근처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갔고, 엄마보다 더 살뜰하게 돌봐주는 선생님들에게 예쁨 받으며 생활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오래 산 친구 말이 미국은 Daycare 보내려면 200~300만 원은 내야 한다고 했다. 그 마저도 한국 어린이집 선생님들 같은 꼼꼼한 보살핌을 바라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불안해서 유튜브로 찾아본 미국 Kindergarten 영상에서는 선생님이 하이힐을 신고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아 있는 러그 위를 걸어 다녔다. 오 마이 갓.

 입으로는 이제 직장도 안 다니는데 우리 예쁜 막내둥이 내 몸에 붙여서 살지 하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진짜 그렇게 될까 봐 늦은 밤까지 걱정하던 날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눈이 휘둥그레지는 소식! 뉴욕에서는 3-K, PreK가 무상교육이라고 했다. 정말?

  뉴욕시에서는 3-K, PreK 아이들에게 무상 교육이 제공된다. 조건도 복잡하지 않다. 뉴욕시에서 살고 있는 해당연도에 태어난 아이들이기만 하면 된다. (2024년 기준, 3-K는 2021년 출생, PreK는 2020년 출생 아이들이 대상이다) 과정도 단순하다. Myschool.nyc 사이트에 한글로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 대로 쫓아서 신청만 하면 된다.

  다만 모든 어린이집을 무료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뉴욕시 무료 3-K, PreK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은 사립 어린이집의 경우는 여전히 tuition fee를 내야 한다. (사립 어린이집 중에서도 뉴욕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공립어린이집과 동일한 지원을 받는다.) 비용은 9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 총 10개월 기준으로 30,000~40,000 불 수준. 무료 어린이집보다는 질적인 차이가 뚜렷하다며 유료 민간 어린이집을 보내는 부모들도 적지 않지만, 버는 손은 적어도 들어가는 입은 많은 다둥이네 가족 입장에서는 정말 너무 감사한 제도임이 틀림없다.  


 2. 아쉬운 실외 활동

  나 같은 뜨내기에게도 별 조건 없이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는 무상 어린이집은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지만, 다만 안타까운 것은 맨해튼의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어린이집 (3-K/PreK)이 바깥 놀이를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바깥놀이 공간이라고 해도 조그마한 놀이터가 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신체활동은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Indoor Gym은 대부분 갖추고 있지만 땅값이 미치게 비싼 미드타운 일대에 있는 곳은 그 마저도 정말 너무 작다.

  바깥 놀이 시설도 바깥 놀이 시설인데, 3-K, PreK 아이들이 필드트립 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철이면 철마다 주변 파악 전혀 안 되는 1살, 2살짜리 아기들까지 버스 태워서 딸기도 따게 하고 고구마도 따게 해 주시던 한국 어린이집을 바라면 안 된다.

  대신 우리 막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다른 곳보다 광활한 Indoor Gym이 있어 거기에서 패션쇼도 하고, 댄스파티도 한다. 행사 치르시느라 땀 뻘뻘 흘리면서 애들 동선 짜고 연습시키는 선생님들 보면 감사하기도 하지만, 차라리 밖에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이나 태울 수 있으면 선생님도 편하겠다 싶어서 안타깝기도 하다.


3. 무상이라고는 했지, 가깝다고는 안 했다.

 수년간의 다둥이 육아 경험 상 영유아들에게 가장 좋은 기관은 집에서 제일 가깝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수요-공급 불균형이 발생하는 지역의 경우에는 악명의 그 뉴욕 대중교통으로 아기들이 새벽밥 지어먹고 통학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특히 맨해튼 지역 중에서도 아이들 키우기 좋다라고 꼽히는 몇몇 동네의 경우 도보권 학교 배정받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거기에 이사 날짜가 안 맞아서 공식 전형 기간이 끝나고 어린이집을 신청하게 된다거나 혹은 어린이집에서 제시하는 몇몇 우선순위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면 (예를 들어, 재원생이던가 같은 기관에 형제, 자매가 다니고 있다거나) 버스 안에서 주먹밥 먹여가며 등원하게 된다. 나처럼 T.T


  4. 충격의 미국 급식, 어린이집이라고 다를 리가

   한국에서 햄버거, 피자 좋아하기로 동네에서도 유명했던 우리 큰 아이들도 문화 체험상 몇 번 학교 급식을 먹고 오더니 제발 도시락 싸달라고 간청했다. 뉴욕시의 학교 급식은 현재까지 나의 경험상 크게 2개 메뉴로 구성되어 있다. 튀기거나 달거나.

  어린이집이라고 다를 리가 없다. 정보 제공 관점에서는 진짜 월드베스트 수준의 뉴욕 교육청은 공식 홈페이지에 매일매일 아이들 급식을 올려주는데 PreK부터 8학년까지 메뉴가 동일하다. (물론 학교마다 상황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PreK면 한국 기준으로 유치원, 8학년이면 중학교 3학년이다. 굳이 따지면 아직 김치도 못 먹는 어린이와 엽기떡볶이에 빠져사는 중학생이 같은 메뉴로 점심을 먹는다는 이야기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적합한 메뉴일 리 없다.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폴란드 출신의 이웃은 아침마다 외동딸과 인사를 겸한 약속을 하는데 그게 학교에서 주는 음식은 먹지 않기라고 했다. 미국 급식에 대한 신뢰는 정말 바닥이다.

  나야, 어린이집 가는 막내 말고도 도시락 기다리는 큰 아이들이 있어 매일을 도시락을 싸는 일로 열고 있는 터라 막내 도시락 챙기는 건 따로 일이 아니지만 엄마가 해주는 것보다 훨씬 정성스럽고 영양가 높던 한국 어린이집 영양사님들이 그립다. 너무 그립다.

  

  맨해튼은 길 하나 차이로도 나라가 다르고, 쓰는 말이 다르다고 한다. 나의 짧은 경험이 모두를 아울 수 있는 정보가 될 리 없다. 다만, 비행기 탈 날짜는 다가오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기만 할 과거의 나 같은 이들에게 참조할만한 선배 이주민의 개인적인 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 한편으로는 세상 흉흉한 뉴스들이 없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세 아이 키우면서 항상 감사하고 소중한 인연으로만 기억되는 (애가 셋이니 얼마나 많은 어린이집 선생님을 만났겠나..) 어린이집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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