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새로운 모습을 보다
불운했던 화가. 평생을 인정받지 못하다 사후에야 빛을 본 화가.
광기와 천재성 경계에 있던, 고독하고 불안정했던 사람.
두꺼운 붓질로 이루어지고 강렬한 색으로 표현된 그림.
반 고흐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나에게 반 고흐는 너무나 유명해서 가까이할 수 없는 슈퍼스타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의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는 전시회가 가까운 곳에서 열려 가보게 되었다.
입구 한쪽 벽면에 따뜻한 색감이지만 눈빛이 불안해 보이던 그의 자화상이 전시회의 시작을 알려주었다.
그의 화가 인생은 네덜란드 시기, 파리 시기, 아를 시기, 생레미 시기를 거쳐 오베르쉬르우아즈 시기로 마무리된다.
배우 지창욱이 도슨트가 되어 분위기 있는 목소리로 각 시기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했다.
시기 별로 작품들이 전시되어 그 당시 반 고흐가 집중해서 그렸던 그림이나 주제에 대해 충분히 느낄 수가 있어서 좋았다. 다만 전시회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좋았던 작품들을 눈과 마음에만 담아야 했던 점이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동시에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마음에 드는 그림은 한참 바라보며 기억하려고 애쓸 수밖에 없었던 점이 좋았다.
단순히 생전에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했을 뿐,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자였으리라고 생각했던 반 고흐였는데, 네덜란드 시기에 천 점이 넘는 데생과 습작을 통해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애썼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야 알았다. 사랑에 관한 한 운이 좋은 편이 아니었으나, 인간 자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파리 시기의 반 고흐는 점차 자신의 화풍을 굳혀가게 된다. 점차 밝은 톤의 그림들이 내 기분도 조금은 밝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중산층이 자주 가는 식당 내부의 모습을 그린 '식당 내부'와 '자화상'은 따뜻한 색감과 붓의 터치가 하나하나 느껴져서 실물로 봤다는 것에 대한 감동이 컸다. 따뜻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색감의 '자화상'이었지만, 반 고흐가 모델료를 지불할 수 없어 본인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는 마음 아픈 뒷이야기가 있었다. 자신을 연습 삼아 그리며 열심히 그림에 매진했지만, 인물화로 돈을 벌 수 없음을 깨달은 반 고흐는 점점 더 과감한 화법으로 자화상을 그렸다고 한다.
이 시기의 작품 중 내가 처음 본 '풀밭'과 '파란 꽃병에 담긴 꽃들'이란 두 작품은 집에 걸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에 들었다. 촘촘한 풀 사이사이 꽃들이 피어있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밭임에도, 계절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찰나의 모습 그대로, 액자에 있는 모습은 나의 눈길을 오래도록 끌었다.
아를로 옮겨가 아를 시기를 연 반 고흐는 색채의 발견을 통해 강렬 색채 회화로서 화가인생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인물화와 풍경화를 많이 그린다.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안정을 찾게 되는 반 고흐는 생레미 시기를 맞이한다. 아를 시기보다 절제되고 차분한 색채를 사용하지만 발작 증세가 있고 난 후부터는 강력하고 불타는 듯한 붓놀림의 작품들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죽기 직전인 오베르쉬르우아즈 시기에는 의사 가셰의 보호 아래 그림을 그리기만 했다.
본인이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인간은 아닌가에 대한 고뇌를 했고 그림의 색이 냉기를 머금은 녹색과 파란 색조로 대체되었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마지막으로 반 고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반 고흐의 모든 작품들은 타고난 재주와 더불어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인 노력 덕분에 결국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예술을 위하여 그렇게 많은 희생과 노력을 했던 반 고흐를, 단순히 한 마디로 '가장 불운했던 화가'라고 단정 짓고 싶지 않다.
밝고 따뜻한 기운을 머금은 붓질 가득한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의 인생은 분명 절망과 슬픔, 광기로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풀밭' 그림 속 빽빽한 풀과 알록달록 꽃을 지켜보자니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올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자세히 들여다본 반 고흐의 일생과 그림들 속에는 평생 친구와도 같았던 동생 테오와 가족들, 몇 명의 여인들, 또 곁에서 반 고흐를 돌봐준 친구들, 무엇보다도 예술이 함께 있었다.
전시회장을 떠나며 다시 바라본 벽화 속 반 고흐의 눈빛은 더 이상 불안하게만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