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친구야!
내 카톡 친구는 79명이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이니, 가족과 지인들을 다 합치면 '아는 사람‘이 적지는 않다. 요즘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전화번호를 교환하면 자동으로 카톡 친구로 저장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나의 카톡 목록 속 친구 수가 더 늘어나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새로 사귈 일도 많지 않고, 자동 친구 등록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연락이 끊기거나 만남이 뜸해지면, 주저 없이 ‘숨김 친구’ 목록으로 옮기는 편이다. 아는 사람이 많은 것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더라도 가까운 친구들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아빠 빈소에서 한참을 잊고 지냈던 고등학교 동창 J가 문득 떠올랐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나 20대를 통과하는 내내 우리는 꽤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 결혼 후 점차 연락이 뜸해지고 결국 J는 '숨김 친구' 목록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랬던 J가 생각난 이유는 7-8년 전, J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가장 먼저 가 조문을 드렸던 기억이 나서였다. J라면 조언도, 위로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연락을 했다.
"J야, 나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어..내일 발인인데, 올 수 있어?" "가야지, 어디야?" 두세 시간 후 우리 아빠에게 인사를 드린 J는, 우리 부부 앞에 앉아 있었다. 우리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기로 해주고는 결국 그러지 못했던 일, J의 이직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우리는 서로 핀잔을 주고, 놀리고, 케케묵은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눴다. 난 어느새 슬픔은 잠시 내려두고, J와 다른 고등학교 동창 한 명과 함께 웃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아빠와의 이별에 나는 여전히 많이 슬프고 아프다. 하지만 이런 힘든 시간을 통해 '내 사람들'의 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틀 밤을 끝까지 남아 뒷정리를 도운 친구, 중학교 졸업 후 제대로 연락을 전하지도 못했는데도 우리 아빠를 기억한다는 이유만으로 소식을 듣고 달려와 준 친구, 날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따뜻하게 안아줬던 친구, 첫날 왔는데도 다음날 아이들 먹이라며 간식을 챙겨 다시 온 친구, 울다 웃다 횡설수설하며 아빠의 마지막을 전하던 나에게 다 괜찮다며 다독이던 친구. 그날 내가 받은 위로와 위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값진 감정이었다.
친구들은 가라앉은 나를 다시 일상으로 끌어올려 준다. 나를 종종 웃게 해 준다.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아 전과는 다른 날들임에도, 친구들은 -본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살아갈 힘을 준다. 아빠가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볼 때,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보며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J에게 아빠 잘 모셨는지 묻는 톡이 왔다. 나는 잘 모셨다고 답하고는 덧붙였다, 너 이제 친구 목록으로 복귀했다고. 카톡 친구 목록의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을 잘 챙기겠다고 다짐해 본다. 내가 받은 위안을 언젠가 내 사람들에게도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