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아빠
전화를 걸면 신호음이 한참을 울리고 나서야 "여보세요"하던 아빠.
전화를 받으면 "웬일이슈~"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로 반가워하시던 아빠.
통화 말미에는 항상 "호자매에게 화내지 말고 남편 잘 챙기고~~"라며 당부하시던 아빠.
하지만 이제 내 전화를 받아주실 아빠는 안 계신다.
쭈글쭈글하고 조금은 거칠지만 따뜻한 아빠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좌우 비뚤어진 안경다리를 제대로 고쳐 쓰도록 도와드릴 수도 없다.
이가 좋지 않아 딱딱한 과일을 낼 때면 최대한 얇게 자르곤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아빠, 치즈!! 웃어야지!!"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없게 되었다.
얼떨결에 상을 치르고 아빠를 발인하던 날 아침, 화장을 하러 가기 전 식사를 하게 되었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 데다 도와주러 오신 성당 분들까지 인원이 많아, 남편과 돌아다니며 메모지에 식사 메뉴를 적고 있었다.
엄마와 동생네의 메뉴를 적고 나서, 나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남편에게 물었다.
"아빠는 뭐 드신대?"
질문을 하는 동시에 오늘이 무슨 날인지 깨달은 나는 눈물이 터졌고 엄마와 동생이 볼세라 서둘러 식당 밖으로 나왔다.
아빠가 더 이상 우리 곁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과,
앞으로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순간이 얼마나 많을지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 [모스크바 백작]에서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에게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부고를 전하러 온 친구의 연인에게, 백작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겠냐며 호의를 베푼다.
그 질문에 친구의 연인은 대답한다. "그 사람을 기억해 주세요."라고.
올 8월에 두 돌이 된 귀염둥이 조카는 자꾸 "할비는?"이란 질문으로 가족들을 울게 만든다.
조카는 우리 아빠를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아빠의 부재로 아프고 슬픈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옅어질 수도 있겠지만,
아빠를 그리워하는 마음만큼은 꼭 지켜야겠다고 다짐한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면 아빠는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조카가 지금 우리 아이들처럼 십 대가 되더라도 '할비'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아빠가 계속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아주 오랫동안 아빠를 기억하고 싶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지만 아빠를 향한 우리의 그리움에는 마침표가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