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플라이트

surf+light

by 소리

서플라이트(SURF + LIGHT)


물 위에서 떠 있는 오리들은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밑에선 발을 쉬지 않고 움직인다.

나 역시 그동안 서울이란 공간을 바쁘게 헤엄쳐왔다. 치열하기 그지 없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내가 그저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된 것만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 오늘은 퇴근 시간의 2호선 열차에서 앞사람의 뒤통수가 내 코끝에 닿고, 옆에 선 여자의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까지 내 귀에 들려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켓 주머니를 뒤적거렸으나 아까 내 이어폰을 백팩에 넣어놨던 기억이 떠올라 좌절에 빠졌다. 여자의 음악 소리는 계속 내 귓가를 울려대며 신경을 거슬렸다.


“저기요.”


소리를 좀 줄여달라는 나의 요청에 여자는 상당히 민망했는지 서둘러 음악을 종료했다. 고요해진 지하철이 만족스러워 나는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내가 부르는 노래가 아까 여자가 듣던 노래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그 노래 귀에 쏙쏙 박히는 게 너무 익숙하다 했다. 노래의 주인은 ‘비상선언’이라는 그룹이었다. 그리고 ‘비상선언’은 어린 시절의 나로 하여금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던 사람들처럼 ‘서울 드림’을 꿈꾸게 한 장본인들이었다. 그 덕에 반쯤 ‘서울 드림’에 성공한 나는 지금 이렇게 힘겹게 출퇴근하고 있는 것이었고.


2호선에서 내려 이제 신분당선으로 갈아탔다. 이미 열차 안에는 퇴근하려는 사람이 가득했고, 오늘 하루도 고됐는지 다들 탈곡한 곡식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열차가 도착하고, 나는 눈알을 굴려 가며 사람들을 탐색해 봤다. 누구 앞에 서야 앉아서 갈 수 있을까. 바로 앞에 날씬한 몸매에 무채색 통짜 린넨 롱 원피스를 입고 앉아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그녀의 무릎엔 H사의 시그니처 백이 놓여있었다. 구십 프로의 확률로 신도시 맘 패션이다. 이 정도면 백 프로 종점인 ‘광교역’에서 내린다. 나는 여자 옆에 있는 위엔 P사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 앞에 섰다. 가로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이 남자가 제발 조만간 ‘판교역’에서 내리길 기도하며. 기쁘게도 남자는 정말 ‘판교역’에서 내렸다. 내가 수년간 서울로 출퇴근을 하며 얻은 노하우가 빛을 발휘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자리를 차지하고, 혹시나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할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눈을 감고 바로 이어폰을 착용했다. 오늘따라 랜덤 재생으로 설정해 놓은 노래 플레이어는 마치 운명인 것처럼 내게 ‘비상선언’의 노래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



나는 10여 년 전, 학창시절 ‘비상선언’이 해체하기 전까지, 팬카페 운영진까지 맡았을 정도로 그들의 팬이었다. 첫 단독 콘서트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운영진 언니들과 이벤트 회의를 하기 위해 서울에 모였었는데, 그때가 아마 내가 서울에 처음 발을 디뎌본 순간이었을 것이다. 회의는 잠깐이었다. 우리는 오빠들의 성지를 찾자는 핑계로 ‘강남’, ‘홍대’, ‘압구정’, ‘가로수길’ 등을 놀러 다녔는데, 말로만 듣던 ‘그곳’들을 직접 다니는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비상선언의 소속사가 있던 압구정과, 말로만 듣던 가로수길을 처음 걸으며, 야외 테라스 카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브런치 세트를 시켜 먹었던 날은 일기까지 썼던 날이었다.


하루는 밤늦게까지 여의도 한강공원 쪽에서 놀고 있었는데, 반대쪽에서 대낮으로 착각할 만큼 환한 빛이 나는 것을 발견했다. ‘비상선언’ 멤버들이 촬영 중이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평소 신비주의 컨셉을 유지하던 그룹이라 이렇게 실제로 볼 수 있는 건 절대 흔한 기회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멤버들의 실물은 많은 인파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대신 요란했던 빛의 출처인 촬영장 조명들을 비롯한 여러 장비들과, ‘staff’라는 직함 카드를 목에 메고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방송국 사람들만이 눈에 띄었다. 웅성대며 호들갑을 떨어가며 촬영을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방송국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흥분이었다. 서울 곳곳을 놀러 다닐 때 다양한 문화적 인프라에 감탄해서 놀란 적도 많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흥분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선 전혀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저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아마 내가 서울에 와보지 않았다면, 평생 이런 짜릿한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았을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았다. 그때 난 결심했다.


성인이 되면 반드시 서울에서 살아야겠다고.



*



“다들 앉아 봐.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집에 도착하고, 나는 가족들을 거실에 불러 모았다. 더는 출퇴근을 견딜 수 없어 자취를 해야겠다고 말을 꺼내려는 순간, 대학 동기에게서 모바일 청첩장이 날라왔다. 메시지 링크를 누르니 요란한 bgm이 들리기 시작하고,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을 축복해달라는 문구가 화면에 떠올랐다. 학생 때나 지금이나 늘 가성비 넘치는 그의 한결같음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걸 보자마자 내게 너는 결혼은 언제 할 예정이냐며 득달같이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익숙한 패턴의 잔소리들이 이어졌다. 헤어졌던 전남친 재현과 다시 만나라부터, 왜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그 고생을 하며 서울로 출퇴근을 하냐는 얘기까지. 헤어지기 전에 재현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는 사실을 숨겨서 다행이다. 그 사실을 부모님이 알았다면 난 아마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미친 듯이 ‘호갱노노’ 어플을 켜 상암동 쪽 시세를 검색했다. 가격이 생각보다 높아 심란한 마음에 뒤척이다 보니, 불현 듯 재현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나는 재빨리 카카오톡 ‘숨긴 친구 관리’에 넣어놓은 그를 찾았다. 그다음 그를 나의 ‘친구목록’으로 복귀시켜 준 뒤, 그의 프로필 사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재현의 프로필 사진은 시시하게도 그냥 골목 사진이었다. 미련이 남은 건 아니었지만, 만약 재현과 계속 만났다면 우린 어떤 모습일까 떠올려봤다. 우선 난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을 해서 이 근방에 양가 부모님의 도움으로 전셋집을 하나 구했을 것이고, 서로의 월급을 저축해서 영차영차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안정적이지만 앞으로 딱히 달라질 게 없는 그런 삶. 그게 싫어서 재현에게서도 직장에서도 도망쳤다. 재현은 나쁘지 않은 조건의 남자친구였지만 딱 나쁘지 않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내 인생이 특별하길 원할 만큼 철이 없진 않았다. 그냥 적어도 내가 꿈꾸었던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벌써 이렇게 지쳐버린 내 모습을 보니 그냥 그렇게 재현과 사는 것도 나쁘진 않았을 것 같았다.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지난 일을 후회하는 것이다.



***


대학 시절, 학교 근처 술집에서 열린 미팅 자리에서 나는 재현을 처음 만났다. 그곳엔 나와 내 동기, 재현 그리고 민우라는 남자가 있었다. 재현은 대구에서 올라왔다며 상당히 낯을 가리고 소심한 모습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반면, 민우는 서울 출신의 적극적인 성격의 남자였다. 솔직히 첫인상은 둘 다 재수가 없었다. 한 놈은 너무 소심했고, 한 놈은 너무 나댔다. 특히 민우는 자신이 성북동 출신이라며, 은근한 자랑을 계속 해댔다.


“성남? 성남이면 분당인가. 거기 좀 살지?”

“아니. 분당 말고.”


정말 둘 다 만나고 싶진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골라야 한다면 난 민우였다. 그토록 원했던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내 안엔 서울에 대한 이상한 열등감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선 서울 남자라도 만나보고 싶다 뭐 이런 심리가 작용했던 것일 거다. 하지만 내게 애프터 신청을 한 건 의외로 내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던 조용한 재현이었다. 아마, 본인 성격상 엄청난 용기였을 것이다. 난 재현이 그렇게 끌리진 않았지만, 어디 한 번 만나나 보자 하는 마음에 재현의 애프터를 수락했다.

그래도 첫 데이트라고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의상을 선정했다. 흰색 블라우스에, 연한 하늘색 짧은 치마를 입고 구두까지 신었다. 애프터눈티 집에서의 달달한 데이트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재현이 나를 데리고 도착한 장소는 뭔가 불길했다. 첫 데이트에 소고기 집이라니. 그것도 심지어 좌식이었다. 낑낑대며 구두을 벗고 우린 종업원의 안내로 룸으로 들어갔다. 짧은 치마가 불편해서 한참이나 티를 내니 그제 서야 자신의 자켓을 벗어주는 재현이었다. 그의 센스에 놀라 삼겹살집이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생각이 들 때쯤 재현은 고기를 구워가며 조심스레 내게 말을 꺼냈다.


“마장동이 소고기가 유명하다고 하더라고. 먹어봐.”

학원은 대치동, 명품은 압구정, 소고기는 마장동이라며 기어들어 갈듯한 목소리로 재현은 유머를 던졌다. 재현의 말의 의미를 해석해보자면, 즉 첫 데이트니까 나한테 가장 좋고 맛있는 걸 먹여주고 싶었다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게 됐고, 사귀는 동안 재현에겐 손이 정말 많이 갔다. 이따금 어딘가 촌스러운 재현의 모습이 발동될 때마다, 서울 남자를 만났어야 했다며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그건 내 선택에 후회를 하고 있다는 걸 입증하는 것 같아 나는 애써 생각을 돌렸다. 그 결과 재현의 센스는 어디 가서 꿀리진 않을 수준으로 성장했는데, 그게 다른 여자에게 발휘될 것을 생각하니 다시금 심각하게 배가 아팠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나의 본연의 이상형을 떠올려 보았다. 서울에 사는 센스있는 남자. 그런 사람과 만난다면 달라도 뭐가 다르겠지.



*



졸업 후, 재현과 사귀는 동안 난 집 근처에 있는 한 회사에서 일을 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 지현이의 아빠가 대표로 있는 회사였다. 처음엔, 잠깐 아르바이트 식으로 일을 도와주다 아저씨의 권유로 인턴이 되었고, 얼마 후 정직원이 되었다. 말이 회사 좋아 회사지 거의 개인 사무실 수준이었다. 직원도 나를 포함해서 넷뿐이었다. 그렇지만, 월급도 적당히 나오는 정규직이었고, 일도 특별히 어려울 게 없어서 계속하게 됐다. 취업난인 시기에 다행이었지만, 매일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과 이 촌스러운 사무실 디자인만큼은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퇴근하고 한강에서 치맥 콜?



동기들 단톡방에 올라온 메세지였다. 대부분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해서 매번 모이는 장소도 서울이었다. 아마 난 갈 수 없을 것이다. 가는 데만 거의 두 시간은 걸리는데. 있을 건 이 동네에도 다 있지만 프렌차이즈 수준의 개성이었다. 이쪽에도 공원은 있지만 한강만 못하다. 재밌고 특색있는 건 다 서울에 있다. 그래서 주말엔 어떻게든 서울에 나가 놀아보려 했으나 직장인이 매번 그러는 것도 힘든 일이었고, 퇴사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려 하면 복에 겨웠다는 소리만 듣기 일쑤였다. 이렇게 집 근처인 회사에서 하루종일 앉아서 컴퓨터만 만지다 보면 정말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Rrrrr


유독 이 사무실 전화는 경박스럽게 울리는 기분이다. 얼핏 대화 소리를 들으니, 중요한 클라이언트인 모양이었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커지고 얼굴엔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현금으로 하면 조금 깎아주겠다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또 이어질 야근에 오도도 소름이 끼쳤다. 습관적으로 즐겨찾기에 저장해두었던 ‘미디어 잡’ 사이트에 접속했다. 매번 보던 구인공고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공고를 하나 발견했다.


‘긴급 T 예능 막내 작가 구함’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홀린 듯이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이번엔 왠지 예감이 좋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운명처럼 합격 소식을 받았다.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왜 그만두냐는 아저씨의 말에 나는 서울로 갈 거라고 얘기했다.



*



방송 작가는 진입장벽은 낮았으나 버티는 건 고됐다. 8년 전 기사를 주고 ‘이 사람 찾아와’ 하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야 했다. 거기다 방송국 고인물들이라 불리는 선배들은 기가 정말 장난이 아니어서 한번 상대를 하고 나면 온몸의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 집에 와서도 밤낮없이 울리는 핸드폰 그리고 매일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것도 상당한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자취를 하지 않았던 것은 당장의 출퇴근 왕복 세 시간이 힘들더라도 서울 월세를 부담하는 것보다야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지현이에게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냐는 연락이 왔지만 무시했다. 방송일은 안 미안한데 미안하다고 해야 하며, 안 고마운데 고맙다고 해야 하는, 피곤한 일 투성이었다. 그래도 그토록 꿈꿔왔던 일을 한다는 것과 조금만 더 버티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늘 존재해서 버틸 수 있었다.


“이쪽에선 항상 입조심 해야 돼. 언제 어디서 누굴 마주칠지 모르거든.”


처음 막 일을 시작했을 때, 선배들이 가장 많이 해주던 조언이었다. 방송국들이 대부분 상암동 쪽에 몰려있기에 욕을 하다가 걸리면 좁은 이 바닥에서 꽤 힘들어질 것이라며. 그래서 간혹 일이 일찍 끝나는 날에는 종종 한강에 가서 막내 작가들끼리 한풀이를 하곤 했다. 같은 막내인데 연출부는 돈을 더 받더라, 연예인 누구 완전 왕싸가지다 등등. 그렇게 탁 트인 공간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떠들다 보면 그래도 내가 정말 서울에 왔구나 싶어져 기분이 좋아졌다.


“와.. 저 아파트 창문이 반짝 거려..”


나는 동기가 가리킨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기사에 유명인들이 산다며 자주 나왔던 K 아파트였다. 하늘로 우뚝 솟은 높은 아파트 빌딩은 물에 빛이 반사되었는지, 큰 창에 정말로 빛이 반짝거리는 게 신비로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곧이어 저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워졌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노닥거리는 이 순간에도 저 빌딩의 값은 오르고 있을 것이기에, 아마 난 평생을 일해도 저런 집을 구할 순 없겠다 싶어 우울해졌다. 그래도 선배들 중엔 나름대로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잘 사는 사람들이 있다며 애써 스스로 위로했다. 그리고 나도 어서 자리를 잡고, 꿈꿔왔던 것처럼 서울에 진짜 내 공간을 마련하여 진짜 서울 사람이 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



“갑자기 자취를 한다고 난리야. 돈 아깝다며. 무슨 일 있어?”

“일은 무슨 일. 그냥 나도 이젠 독립해볼까 싶은 거지.”


다음 날 나는 드디어 엄마에게 자취를 하겠다고 말을 꺼냈다. 엄마와 부동산에 가면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자취를 결정하게 된 원인에 대해 다시 곱씹었다. 얼마 전 내가 맡고 있던 프로그램이 폐지한다는 얘기가 들려왔고, 동시에 곧 백수 신세로 전락하게 될 우리 팀 작가들은 전전긍긍 중이었다. 동기는 불안했는지 계속 나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기 바빴다.


“세정씨는 어떻게 할거야?”

“아.. 전 그냥 당분간 조금 쉬려구요..”


물론 거짓말이다. 나는 이미 이 프로의 PD인 세은 언니에게 이 프로가 폐지될 것임을 전해 들었었다. 그리고 평소 나와 친했던 언니는 내게 자신은 라디오로 옮길 것이라며 함께 갈 것을 권유했었다. 라디오 작가는 누구 하나 죽기 전에는 공석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돌 정도로, 작가들 사이에선 가장 인기 있는 자리였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는 훨씬 안정적일 것이고, 여유도 생기니 투잡을 뛰어볼 수도 있겠다는 마음에 설레기까지 했다. 물론 다른 팀원들에겐 비밀이었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세은 언니는 혼자 있기 싫다며 매일 팀원들에게 술을 먹자고 했다. 처음엔 끝까지 언니 곁에 남아 첫차를 타고 집에 가거나 새벽에 택시를 타고 가곤 했다. 하지만 도무지 체력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아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틀 전에 언니가 할 말이 있다며 개인적으로 약속을 잡아 밥을 먹게 되었다. 저녁을 먹긴 조금 이른 시간에 회사 근처 먹자골목 초입에서 언니를 만나 이자카야로 들어가는 데 언니의 행동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자리를 잡고 앉자 언니는 할 말이 있는 데 꺼내기 굉장히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느낌상 오늘의 화두는 라디오 자리에 관한 부정적인 소식일 것만 같았다. 설마 자리를 줬다 뺐는 그런 치사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사실 아직 정식 계약서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말 그대로 구두로 약속을 한 상태라 나는 초조 해질 수밖에 없었다.


“언니 우리 일단 시킬까? 오늘은 내가 살게.”


내가 산다는 건 부담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 집에서 가장 비싼 메뉴인 모둠회를 시키고 한동안 언니와 나는 서로를 마주 보고만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언니는 먼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세정아..”

“언니.. 설마?..”

“야 그럼 어떡 하냐..! 우리 막내 지방에서 방송일 하겠다고 혼자 올라와서 사는데,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수입도 끊기고 불쌍하잖아. ”


말문이 턱 막혔다. 답답한 마음에 아무 컵이나 집어 들이마셨는데, 하필 또 술이었다. 몸에 열이 오르고 몸이 시뻘게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언니를 조용히 바라봤다. 아니 노려봤다는 게 맞을 것이다. 요즘 들어 막내 작가랑 둘이 계속 붙어 다니며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 해장까지 하며 함께 출근하던 게 떠올랐다. 입 밖으로 해선 안될 말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막내의 본가는 부산 센텀이고, 그곳에 살면 웬만한 서울 애들보다 잘 사는 걸 언니는 모르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감정의 골이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이는 어떤 식으로든 악화 될 것이다. 한번 금이 간 관계는 생각만큼 쉽게 다시 붙지 않는다는 걸 숱한 경험으로 난 알고 있었다.


“야 나도 대구에서 올라왔잖아. 처음에 얼마나 힘들었다구.”


이젠 어떤 말도 곱게 들리지 않았다. 그냥 비싼 회나 많이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광어 살을 한 번에 세 점을 집어 입에 넣고 씹었다. 언니는 계속 서울에 올라와서 본인이 힘들었던 얘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차라리 그냥 솔직하지. 매일 자기 옆에서 붙어 술을 마셔줄 친구와 방송을 하고 싶었다고. 매일 일이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쁜 나에게, 방송일 하려면 인맥관리는 필수라며 혀를 끌끌 찼던 선배가 생각났다. 그때는 회식 참가를 요구하는 꼰대 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동안 잘 참아 왔던 게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그냥 다 때려치우고 원래 회사에 다시 받아달라 부탁해볼까. 그런데 당장 오늘 집까진 어떻게 가지.


“이번에 영서가 새로운 프로에 들어간대. 너 꽂아 달라 한번 얘기해볼게. 내가 또 걔랑 친하잖아.”

“그거 종편에서 하는 이상한 프로 아니야?”

“너 그래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자기보고 하라 하면 안 할 거면서. 가만 보면 사람들은 남의 일은 참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뭐든 직접 자기 일이 되어봐야 아는 것이다. 나는 또 짜증이 올라와서 괜히 젓가락으로 죽은 생선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러다 이제 회도 물리고 슬슬 집에 가야겠다 싶었다. 더 늦었다간 퇴근 시간이랑 겹쳐 지하철에서 지옥을 맛볼 것이다.


“영서가 이번에 이를 갈았어. 어떻게든 시청률 올릴 거래.”

“원래 종편치곤 시청률은 나쁘지 않았잖아. 워낙 자극적이라.”

“그건 그런데.. 아무튼 이번에 그 사람 캐스팅 했다더라. 그 예전에 인기 많았던 그룹 ‘비상선언’ 알지? 거기 멤버였던 현재. 너 걔네 좋아했잖아.”



***


한물간 스타라도 연예인은 연예인이었다. 현재를 처음 봤을 때 너무 떨려서 눈을 제대로 마주칠 수 없었다. 그래서 미간을 보며 애써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이따금 씩 용기를 내 살짝 현재의 얼굴을 감상하곤 했는데, 그때 눈 옆으로 지는 주름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현재는 정말 센스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다수와 대화할 때 모두와 눈을 마주쳐주는 사소한 배려부터, 첫 촬영 날 호텔 베이커리에서 공수해온 마카롱을 돌리는 것까지. 그뿐인가 편하게 입고 오는 날에 어깨에 걸친 가디건은 눈으로만 봐도 부드러운 캐시미어 감촉이 느껴졌고, 팔을 살짝 들어야만 보이는 손목에 낀 실버 뱅글 팔찌는 어쩐지 더욱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그려왔던 서울 사람, 서울 남자였다. 현재와 일하게 되면서 나는 다시 서울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현재의 칭찬을 하면 다른 스탭들은 그건 다 돈에서 오는 것이라며 말했다. 하지만 돈도 써본 사람들이 쓸 줄 아는 것이다. 예전에 재현이 차고 다니던 투박했던 시계가 생각보다 고가의 제품인 걸 알고 꽤 당황했었던 기억이 있다.


“자 촬영 시작 하겠습니다.”


새 프로는 일반인과 연예인들의 연애프로그램이었다. 프로의 기획 의도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리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사실 다 짜고 치는 판이었다. 작가들은 사람들이 바라는 환상을 조금씩 주입해서 그들의 서사를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속는 게 신기하지만, 두 사람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꽤 뜨거웠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보이는 그대로만 믿는 모양이었다.


현재와 섭외된 일반인 여성분은 오늘 익선동에서 골목 데이트를 하게 됐다. 미리 대본은 줬지만, 순간순간 발생할 수 있는 재밌는 상황들을 조정하기 위해 작가들은 스케치북을 들고 두 사람의 근방에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익선동은 예전에 재현과 자주 와봤던 곳이었다. 코딱지만한 수플레 케이크가 이만원이 넘어서 서울 물가에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쨌든 그 당시만 해도 고즈넉한 이곳만의 특유의 느낌이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상업적인 분위기로 바뀌어 버려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우리 동네랑 딱히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세정아 이따 회식 갈 거지? 오늘 현재 오빠가 소고기 사준대.”

“어 저야 좋죠. 근데 현재 오빠랑 따로 연락 주고 받아요?!”

현재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는다는 동료 작가 다연이의 말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워낙 매너 좋고 사람 좋은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려던 참에 다연이는 나에게 자신과 현재가 그동안 주고받은 메시지들을 보여줬다. 설마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건가 싶어서 호들갑을 떠는 내게 다연이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 오빠 여자들한텐 다 그래.”



*



자취를 시작하니 이제 회식도 끝까지 달릴 수 있게 됐다. 잠이 오질 않아 매트리스에 누워 천장만을 바라보니 오늘따라 이 방이 더 좁게 느껴졌다. 누워서 거실과 부엌이 다 보이는 집이라니. 게다가 나는 이 좁은 방에 사려고 한 달에 몇십만 원 가까이 주고 사치를 부리고 있었다. 술에 취했는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오고 가더니, 서울이 본가인 다연이는 이러한 월세값들을 싹 저금할 수 있겠지 싶어 억울한 마음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타지에서 홀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더 외로운 일이었다. 나는 외로움을 전혀 타지 않는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집안에 홀로 누워있으면 내 몸 어딘가가 뻥 뚫려버린 공허한 느낌이 찾아오곤 했다.


괜히 센치한 마음이 들어, 감성에 제대로 젖어보고 싶었다. 대학 시절 다녀온 파리에서 사온 에펠탑 모형 기념품을 꺼냈다. 밑에 버튼을 누르면 조명이 켜지며 화이트 에펠처럼 반짝이는데, 이게 불을 꺼놓고 가만히 바라보면 칠링한 무드가 뿜어져 감성을 충전하기 괜찮다. 파리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버튼을 누르려는데, 갑자기 ‘파리 시민들 세금 걷어 화이트 에펠의 전기세를 내는 것일까?’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불쑥 찾아왔다. 감성이 팍 죽는다. 나는 정말 속물이 다됐다. 에펠탑을 뒤로하고 다시 침대로 누으니,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고달픈 나의 서울 라이프에 대한 한숨이 물밀 듯 나왔다. 그리고 늘 이런 한숨 속 결론은 애초에 내가 서울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것이었다.


우울함이 밀려오자 내겐 다른 생각의 가성비가 필요했다. 빨리 내가 기분이 좋아질 만한 생각을 해보자. 그게 무엇이 있을까. 계속해서 눈을 감고 침대를 뒤척여 봤다. 내 기분을 좋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

내 머릿속에 현재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내 상황에서 가장 힘이 되는 무언가는 아마 현재였나보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연예인과 함께 일한다는 단순한 설레임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좀 더 미묘한 감정. 어쩌면 현재는 나를 서울로 이끈 장본인이었고, 나와 평생 마주칠 일도, 얽힐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특별한 사람과 나는 거의 매일같이 만나고 있고, 심지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이건 마치 전쟁터에 들고 나갈 수 있는 치트키 같은 수준의 무기를 얻은 셈이었다.

나는 평소에 회식이 끝나고 여자, 남자 가릴 거 없이 모든 스탭들에게 늦었으니 택시를 타고 가라며 택시비를 챙겨주던 현재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덕에 나는 오늘도 집에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런 매너를 지녔을까. 바쁜 일상에서도 남을 생각하는 현재의 마음 씀씀이를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지만, 내가 현재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유였다. 언제 어디서든 늘 당황하지 않고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는 그 여유로운 태도.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었나 모양이다.

그런데 갑자기 아까 낮에 현재와 다연의 메시지에서 봤던 느끼한 말투와 엉망이었던 맞춤법 수준이 겹쳐 떠올랐다. 실수였겠지 싶어서 얼른 다른 생각을 꺼내 보려 했지만, 어쩐지 사람이 우스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분명 현재는 지적이고 세련된 사람 같았는데. 문자 속 자꾸 ‘어의가없다’고 쓰던 그가 그동안 신비주의 이미지를 고수한 건 어쩌면 다행스러운 전략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긴 현재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원하는 이미지를 혼자 짜 맞춘 건 바로 난데.

현재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오고 가다 보니, 왜 온갖 스탭들한테 플러팅을 던지고 다니던 현재는 왜 나한텐 그러지 않은 걸까, 왜 내겐 단 한 번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지 않은 걸까 의문점이 생겼다. 그리고 그런 현재에게 억하심정이 들며 괘씸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새벽의 끝에 난 자존심이 상해 계속 뒤척일 뿐이었다.


결국 오기로 현재와 친해지자 결심했는데, 그와 가까워지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 사람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편이 되는 데에 그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을 함께 싫어 해주는 것만큼 강력한 행동은 없다. 그리고 그 공식에 현재는 바로 대입이 될 만큼 정말 단순한 사람이었다.

현재는 우리가 함께하는 프로의 PD인 영서 언니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언니가 시청률을 위해 자극적으로 방송을 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언니가 없던 회식 자리에서 현재는 언니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괜히 편을 들었다가 자기에게 해가 올 수도 있기에 다들 중립을 지키기 바빴다. 현재는 그것이 상당히 서운한 듯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말에 살짝 맞장구를 쳐주고 약간 거들어줬을 뿐이었는데, 그날 이후 현재는 내게 상당히 맘을 연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몇 번 연락이 오기 시작하더니, 우린 꽤 가까워졌다. 묘한 설레임이 시작됐다.

그리고 며칠 뒤 현재는 내게 촬영이 없는 날 자신의 집에 놀러 오라고 얘기를 했다. 혼자 찾은 현재의 집은 예전에 동료들과 함께 봤던 그 K 아파트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둥근 거실에 유리창이 펼쳐져 있어 한강과 서울 숲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파노라마 뷰가 놀라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내일 아침에 조식 먹고 가. 그리고 이건 선물.”


이 아파트는 주민들에게 조식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호텔도 아닌데 조식 서비스라니. 게다가 보통의 아파트에서 보이는 나이든 경비원들과 달리 젊은 경비원들이 정장을 입고 지키고 서 있었고, 1층엔 게스트 하우스까지 있었다. 로비에 놓여있던 갖가지 미술품과 장식품들을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 여러모로 상상 그 이상의 공간에 도착한 것 같아 맘이 이상했다. 34층에 도착하니 현재가 나와 있었다. 현재는 자연스레 내 허리에 손을 얹고 자신의 집 안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노을을 지는 한강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셨다. 감성에 취하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한 모금 마시고, 현재의 얼굴을 바라보고. 또 한 모금 마시고, 창밖을 바라보고.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 현재는 내게 입을 맞추었고, 꽤 긴 키스가 이어졌다. 진도를 더 내보려는 건지 현재는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애인이 아닌 상대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평소 나의 신념과는 어긋나는 행동이었지만,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못할 정도로 나는 분위기에 제대로 취해있었다.


“보여지는 삶이 만만치가 않아. 겉은 행복해 보여도 불행하다는 거지.”


침대로 장소를 옮기자는 현재의 말에 몸을 일으켰는데, 걸어가며 현재는 혀가 꼬인 채로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투덜거렸다. 계속되는 현재의 자기연민은 취기가 싹 가시게 만들 정도였다.


세상에 겉과 속이 다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나만 행복해도 그건 괜찮은 삶일 텐데. 현재는 본인이 한물간 연예인이라는 것이 너무나 괴로운 모양이었다. 그런 비급 프로에는 출연하는 게 아니었다며 툴툴대는데, 나이도 들 만큼 든 성인남성의 징징거림은 정말 한심했다. 나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방을 빠져나와 집을 둘러봤다.

거실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아주 기다란 대리석 식탁이 위치 해 있었다. 벽면엔 ‘최후의 만찬’ 그림이 걸려있었는데, 인테리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내 자취방이 생각나 기분이 괜히 씁쓸해졌다. 이 요란 법석한 집에 현재의 순수한 노력은 얼마나 기여됐을지 가늠하고 싶진 않았다.


“미안. 내가 너무 내 얘기만 했네. 넌 뭐 힘든 거 없어?”


내가 한참을 돌아오지 않자, 현재가 나를 찾았다. 그리고 선심 쓰듯 내 이야기를 물었다. 나는 현재에게 무어라 대답해야 될지 잠시 고민을 해보았다. 방송 작가 일이 많이 힘들다고 하면 이해를 해줄까 궁금해졌다. 현재는 섬세한 사람이니 공감 능력은 좋을지 모른다. 용기를 내서 하필 내가 일을 시작할 때쯤, 채널이 많아져 투자를 받기 힘들어졌다고 얘기를 꺼내봤다. 그 덕에 쥐꼬리만한 페이를 받고 일해야 한다고까지 말을 하려는 순간, 현재는 깔때기를 씌운 것 마냥 그래서 방송의 질이 낮아져 연예인들이 힘들어졌다며 자기 얘기로 화제를 돌리기 바빴다.


“그니까 내가 힘든 이유는.. 너무 외롭다는 거지.”


현재가 내 허리를 감싸고 말했다. 이렇게나 휘황찬란한 집에 살고 있으면서, 자신이 힘든 이유가 고작 외로움이라는 이 남자에게 무어라 대답해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욱하는 마음에 한소리를 해볼까 했는데, 날 바라보는 현재의 얼굴이 정말로 외로워 보였다. 눈에 눈물이 잔뜩 맺혀 아기같이 내 품을 파고드는 데, 그런 현재에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잘나갔던 ‘비상선언’ 시절에서 아직 현재는 벗어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사실 원래 이렇게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던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현재가 도리어 가엾게 느껴졌다.


“내 팬이었다며. 영서한테 들었어.”


세은 언니가 영서 언니한테 날 프로에 꽂아 줄 때 말한 모양이었다. 뭔가 창피해서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뭐 이미 들킨 마당에 그냥 솔직하게 궁금한 건 다 물어보자는 생각에 난 그동안 ‘비상선언’ 활동할 당시 궁금했던 소문들을 하나하나 물어보기 시작했다. 내 질문 공세에 현재는 빵 터졌고 아까의 우울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신이 나서 묻지도 않은 이런 저런 자신의 이야기들까지 말해 주기 시작했다. 그 시절을 말하는 현재의 모습은 너무나 들떠 보였다. 그리고 난 정말로 현재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근데 왜 나한테만 연락 안 했어요?”

현재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제대로 답은 듣지 못했지만,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더 캐묻는 건 예의가 아닐 것 같아 마지막으로 잔에 남은 와인을 들이켰다. 그런데 갑자기 웃는 현재의 얼굴에서 눈가의 주름이 눈에 띄었다. 평소엔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이 왜인지 오늘은 현재의 나이를 조금 실감 나게 해주었다. 그러고보니 이 오빠 몇 살이었지? 정말로 술이 확 깼다.


일단 나는 현재에게 씻고 오라며 화장실로 떠밀었고, 현재가 씻는 동안 가만히 식탁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내가 꿈꿔왔던 현재는, 그런 사람은, 정말로 없던 것이란 걸 깨달았다. 한숨만 계속 쉬다 아까 현재가 줬던 선물 포장을 뜯어봤다. 낯선 브랜드의 팔찌였다. 유심히 살펴보니 예전에 재현이 같은 브랜드의 목걸이를 선물해줬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 원했던 브랜드가 아니라 좀 짜증이 났었던 것도 같은데. 인터넷에 바로 브랜드를 검색해보고 깜짝 놀랐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굉장한 고가의 명품 브랜드였다. 문득 재현이 무리해서 이런 브랜드 제품을 선물했을 만큼 나를 좋아했던 것이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재현과 세은 언니가 대구의 같은 동네 출신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본인은 절대 인정하진 않겠지만, 세은 언니도 참 편하게 자취를 했었다. 대구에 범 무슨 동이랬는데. 나는 서둘러 ‘호갱노노’ 어플을 키고 집값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렇게나 비싼 동네가 다 있었다니.


어안이 벙벙한 상황에서 카톡이 울렸다. 우리 프로 출연자가 논란이 터졌다는 것이다. 머리가 아파지고 불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장 이번 주 방송은 결방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럼 주급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일을 그렇게 시켜놓고, 방송이 안 나온다고 돈은 주지 않는다는 게 너무 야박하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누굴 동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계속 카톡 알림은 울리는데, 무슨 베짱인지 메시지조차 읽고 싶지 않아졌다. 대신 그동안 바빠서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메시지들이 눈에 띄었다. 부모님의 메시지, 친구들의 메시지. 그리고 지현이에게서 온 메시지.


정말 다시 돌아올 생각 없어? 아빠가 너만 한 애가 없대.



나는 무의식적으로 재현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다. 여전히 골목 사진이었다. 다시 보니 낯익은 것 같기도 했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자존심 상하게도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재현과 헤어진 것, 직장을 그만 둔 것, 방송일을 시작한 것, 현재를 만난 것까지 전부다. 내가 쫓던 빛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저 헛된 환상 속을 헤엄쳐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창밖을 바라보니 이미 해는 다 진 밤이었다. 반대편 건물들에서 나오는 빛만 반짝거릴 뿐이었다. 샤워가 끝났는지 물소리가 잠잠해졌다. 나는 서둘러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이곳엔 행복은 없는 것 같았다.

아파트를 빠져나와 깜깜한 거리를 걸었다. 다시 카톡이 울린다. 나는 아무 인사 없이 아예 단톡방을 나와버렸다. 이번엔 현재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디냐는 소리에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걸음을 서둘렀다. 상암역으로 가는 버스들이 오고 갔지만 나는 타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