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싫은 반찬부터 먹는 아이

깊은 감정의 조개껍데기 #005,

by 혜카이브

초등학교 시절 급식을 먹을 때부터 나는 먹기 싫은 반찬부터 먹는 아이였다. 맛있는 걸 아껴 마지막에 먹는 이유는 그때부터 명확했다. “마지막이 맛있으면 다 맛있는 거다.” 먹기 싫은 반찬에 입속이 불쾌해도 마지막 한 입이 좋아하는 맛이면 그걸로 전부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제법 똑똑하게 여겼다.

이런 의식의 흐름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제는 급식을 넘어서 일상의 선택 전체에 적용되는 나만의 방식이 되었다.
더욱 거창하게는 인생에도 적용된다. 하기 싫은 일은 항상 먼저 해야만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언제나 마지막에 슬쩍 등장한다. 좋은 끝맛은 쉽게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매일 남의 반응을 살피고 남의 기분을 헤아리는 일을 한다. 고객이 만족했는지, 동료는 서운하지 않았는지.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하루가 끝났을 때 가장 낯선 얼굴은 내 표정이다.

원래는 책 읽고, 글 쓰고, 러닝 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퍼즐 게임을 하며 시간을 되는대로 흘려보낸다.

그러다 퍼뜩, 질문이 떠오른다. “혹시 지금 내가 좀 가라앉았나? 피곤한가?”

서둘러 체크한다. 잠은 몇 시간을 잤는지 해야 할 일 중 안 한 것이 있는지, 조금 더 자면 피곤이 풀릴 것 같은지, 아니면 지금 필요한 건 따뜻한 국물인지— 여전히 손은 게임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분주하게 움직여 스스로를 확인해 본다.

이때 나를 스스로 체크하는 건 어릴 적 먹기 싫은 반찬을 억지로 먹던 일과 비슷하다. 그 과정은 너무 귀찮고,
당장이라도 식판을 잔반통에 엎어버리는 것처럼 이불속으로 도망치고 싶은 무기력과 싸우는 일이다.

하지만 하나씩 먹기 싫은 반찬을 넘기듯 귀찮음을 견디고 나면 그다음은 조금 나은 반찬, 먹을만한 반찬, 조금 좋아하는 반찬, 그리고 마지막엔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은 성취감과 뿌듯함이다. 그것들은 언제나 마지막에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마음은 어쩔 때 너무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어 스스로도 한 번에 건져 올리기가 힘들다. 그럴 땐 포기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먹기 싫은 반찬부터 먹어치우는 느낌으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걸 찾아간다.

왜냐하면 이렇게 뭔가가 망설여질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큼 후회되는 선택은 없다는 걸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후회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반찬이라 가급적 먹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싫은 것들 속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기어이 찾아냈을 때— 그때 느껴지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건 단순히 몸을 움직인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순간이며 스스로에게 떳떳함을 선물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떳떳함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은 아주 조용하고 단단한 기쁨으로 오래 남는다. 먹기 싫은 반찬부터 먹는 걸 똑똑한 생각이라 믿고 혼자 우쭐했던 초딩 때의 나처럼, 오늘도 나는 나만 아는 뿌듯함에 혼자 우쭐한다. 옛날처럼,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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