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서 생긴 일 – 덕질을 중심으로

깊은 감정의 조개껍데기 #004,

by 혜카이브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나는 멈추지 못한다. 공연 영상을 돌려보고, 인터뷰를 찾아 읽고, 목소리와 말투, 무대에서의 움직임 같은 사소한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살핀다.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된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해서 왜 이 사람인지, 나는 왜 이토록 빠져드는지 그 이유를 곱씹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했던 가수, 뮤지컬 배우, 성악가 같은 사람들은 단지 노래를 잘하고 연기를 잘하는 걸 넘어서 어떤 태도와 분위기, 사람으로서의 결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을 계속 들여다보다 보면 결국 내 안의 어떤 결핍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갖고 싶었던 단단함, 무대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태도,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는 용기 같은 것들.

좋아하게 된다는 건 결국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뜻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동경하고 그 안에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되는 일. 그래서 좋아한다는 건 결국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가 관찰 예능에 출연했다. 최애 중의 최애, 이미 수많은 무대 영상을 돌려보던 사람이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노래나 연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상’이 담긴 장면이었으니까.

그의 하루는 조용하고 성실했다. 혼자 있을 때도 흐트러짐 없이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고 사소한 일상조차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에서 이 사람은 정말 '진짜'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멈칫했다.

그걸 바라보는 내가 너무 흐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붙잡고 하루를 흘려보내는 시간들. 하기 싫은 일 앞에서는 쉽게 주저앉는 마음. 그를 보며 반했지만 동시에 내 안의 부족한 부분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그건 단순히 멋진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되지 못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가 혼자 있는 시간을 대하는 태도였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는 그 느린 루틴이 너무 아름다웠다. 무언가를 ‘잘해 보이기 위해’가 아니라 그저 자신에게 필요한 시간을 성실하게 채우는 사람 같았다.

나는 늘 무언가를 켜두고 누군가와 연결된 상태를 유지하며 내 시간을 흘려보내는 데 익숙해져 있었는데 그는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하루를 쌓아가는 사람이었다.

그걸 보며 처음엔 감탄했고 조금 뒤엔 부끄러워졌고 결국엔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가 출연한 작품을 따라 나의 세계를 조금씩 넓혔다. 공연장을 n차로 오가며 대사를 외울 만큼 관람한 것도 어쩌면 팬으로서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가 올리는 책 표지를 따라 읽고 추천하는 음악을 조용히 들어보는 일이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그의 팬클럽 일원으로서 시작된 취향의 탐색은 어느새 나를 안내하는 작은 나침반이 되었다. 그는 늘 뭔가를 느끼고 궁금해하고 또 배워가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를 따라가며
조금씩 나도 뭔가를 느끼고,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 과정은 나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누군가를 깊이 좋아하는 마음이 이렇게까지 나를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게 너무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사실 같은 프로그램에 또 다른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가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 역시 내가 오랫동안 좋아해 온 사람인데 신기하게도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서두르지 않고 고독을 밀어내기보다 그 속에 머물며 스스로를 채우는 태도.

나는 예술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따라 살아보면 삶이 조금은 예술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낭만이 있고,
의미를 소중히 여기며,
스스로가 느낀 것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예술이 나의 업이 아니더라도,
내 삶을 낭만 있게, 의미 있게 느끼고
그 감정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니까.

잘 산다는 건 결국 자아가 혼재되지 않고 분리되어 있다는 뜻 같기도 하다. 배우들이 무대 위의 밝고 시끄러운 세계 속에서 일하면서도 일상의 고요를 지키고, 자기만의 루틴을 유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비우고 채우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자신을 돌보고 관리하는 그 모습이 나는 늘 닮고 싶었다.

사실 첫 직장에서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긴장되던 시절, 일과 생활의 경계를 나누지 못한 채 휴일에도 일하고, 밤늦게까지 연락을 받고, 결국 나라는 사람이 너무 희미해져 이도 저도 아닌 채로 도망치듯 퇴사한 적이 있다.

그 후로 나는 직장과 일상을 분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려면 결국 지금 내가 마주한 상황에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어쩌면 너무 뻔한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뻔한 말이 결국 나를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문장이란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충실하게 덕질을 하는 중이다. 이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잘 살기 위한 공부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아주 진지하게. (가끔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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