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닿은 마지막 안녕

사람이라는 해변에서 #001,

by 혜카이브

어렵고 생소한 전달사항이었다. 파묘를 하고 유골을 다시 화장해서 해양장을 치르겠다는 시어머니의 말씀. 말씀을 들은 날엔 그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조용히 일렁였다.

한 번도 얼굴을 뵌 적 없는 분들이었다. 기억도, 추억도, 인연도 없었지만 그분들은 누군가의 부모였고, 누군가의 삶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끝’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해야 했다.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기계가 세팅되자 그동안 흐르던 노래마저 잠시 멈췄다. 직원분들의 싸인을 기다리는 2초 남짓의 정적. 정말 찰나였지만, 그 순간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찡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마치 번지점프를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처럼, 혹은 돌아오지 않을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총성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느낌처럼.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정적은 오늘의 모든 순간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웅장한 침묵이었다.

그리고 바다에 유골이 닿는 순간—
정말 끝이라는 게 뭔지 처음 알았다.

이제는 눈으로도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어느 장소에도 다시 찾아갈 수 없는 흔적 없는 이별.

바닷바람이 불고, 하얀 뼛가루가 바다로 흩날릴 때 나는 뭐랄까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가족 중에 나만 울고 있었다. 안경으로 또르륵 또르륵 굴러가는 눈물을 느끼며.

조금은 창피했다. 다들 덤덤한 얼굴로 다음 일정을 이야기하는데 나 혼자 울먹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게 바로 내 방식의 마지막 인사였으니까.

왜 우는지 모르겠으면서도 감정은 점점 차오르고 눈물은 고이다 못해 뚝뚝 떨어졌다. 슬픔이라고만 하기엔 모호한 감정이었다. 누군가의 생이 이토록 완전히 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순간을 눈앞에서 마주한 것도 처음이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바다에 닿은 뼛가루가 물결 속으로 흩어지는 걸 보며 나는 그 끝이 너무도 선명하고, 너무도 조용해서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랑받고 사랑했을 어떤 두 사람이 이제는 아무 흔적도 없이 바닷속에 머물게 되었다. 그걸 생각하니 너무나도 낯선 이별이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 인생을 바다에 비유하길 즐기고 종종 물결의 리듬 속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래서일까. 삶의 끝을 바다에서 맞이하는 장면을 함께한 오늘, 그건 어쩌면 조금은…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요하고 깊은 이별이었다.

그 순간 처음 알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사라지겠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잠시 머물다 어느 날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으로.

살기에도 바쁜 시간에 죽음을 떠올리는 건 어쩌면 무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하루였다.

나의 마음속은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한데 뭉쳐 눈물로 흐르고 있었는데 다른 가족들은 “다음 순서 뭐지?” “사진 찍어줄게” 하며 너무나 일상적인 말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문득, 나 혼자 너무 감정적으로 튄 건 아닐까— 머쓱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게 왜 우느냐 묻지 않았다. 누구도 놀라거나 다그치지 않았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배 위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른들은 아마 내 마음까지도 다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내 눈물을 허락하고 묵묵히 나를 그 자리의 일부로 두었던 그 침묵이 지금은 이상할 만큼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도 결국은 각자만의 이별 방식이었을 것이다. 사진을 찍고, 절차를 꼼꼼히 챙기고, 혹은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그 모든 행동 안에 그들 나름의 슬픔과 작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말을 많이 하며 견디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지켜보는 것’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나처럼 울음을 참지 못한 사람도 있고 끝내 한 방울의 눈물 없이 속으로만 곱게 보내드리는 사람도 있다.

그 모두가 정답이고 그 모두가 애도였다.

배에서 내리기 전, 선장님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파도가 잔잔하고, 바람도 거의 없습니다.” 단순한 정보였지만 그 말마저 나에게는 위로가 되어주었다.

마치 이별을 끝낸 마음을 바다와 바람이 다정하게 감싸주는 것 같았다.


세상은 여전히 고요했고,
나는 조금 울었고,
그래도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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