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산수에 띄운 하루 -어느 감정노동자의 피로 극복기

조용한 조류 속에서 일하기 #001

by 혜카이브

나는 징크스가 있다. 출근길이 괜히 걱정되고 바쁠 것 같은 날은 이상하게 그럭저럭 흘러간다. 반면, ‘오늘은 조금 여유롭겠지’ 싶은 날에는 늘 눈코 뜰 새 없다. 감정노동자의 즙을 쭉쭉 짜내며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오늘이 바로, 그 즙 다 짜인 날이다. 묵은 피로는 누적이고 실시간 대응은 고난이었고 그래도 마카롱 하나와 고개 숙인 인사에 마음 한구석이 살았다. 지금 나는 퇴근길, 운동복 가방을 든 채 헬스장으로 향하고 있다. 오늘 하루를 정화하는 나만의 방식은 바로 땀과 탄산수 한 잔이다. 그 안에 레몬제스트 하나를 띄운다면, 이 하루도 나름대로 괜찮았던 걸로 정리될 수 있을까?

​나는 스파의 데스크 업무를 맡고 있다. 이 말은 테라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일을 맡는다는 뜻이다. 고객 응대부터 제품 주문, 단체 예약 관리, 불만 처리, 심지어 외국어 전화 통역까지. 컴퓨터 앞과 전화기 옆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전부 이 데스크에 쏠려 있다.

​가끔은 생각한다. 차라리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테라피가 낫지 않았을까. 몸의 불편한 곳을 만져주는 일이, 이 끝없는 전화와 클릭보다 훨씬 사람답게 느껴질 정도로. 데스크의 일은 보이지 않지만 정신 에너지를 무자비하게 갉아먹는다. 말의 톤 하나, 표정 하나, 예약을 입력하는 속도와 손끝의 긴장까지—모든 게 ‘서비스’라는 말에 포장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괜찮다. 힘들었지만 오늘 하루를 쓸모 있는 사람으로서 보냈고 그것이 나의 쓸모라면 난 촛불처럼 스스로를 태워 주변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각오는 되어 있다. (aka. 정묘일주의 벗어날 수 없는 습성) 또 나만의 작은 습관은 그날의 기분이 무슨 색이었는지 기록하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그레이에서 시작해 힘들지만 괜찮았다고 마무리되는 날은 스카이블루까지 가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스카이블루로 마무리하기엔 조금 더 투명에 가까운 기쁨과 스파클을 추가하고 싶은 그런 보람을 느낀 날이다.

​나에게 투명과 스파클을 느끼게 하는 건 사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 시간 사이, 동료들과 나누는 짧은 눈빛. 사물함 속 몰래 전해지는 간식 하나. 휴식 시간에 맞춰 함께 나서는 군것질의 찰나. 고객의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조그만 불편함을 내가 먼저 알아채고 해결해 냈을 때의 나이스 타이밍.

​그런 작고 조용한 순간들이 내 기분의 색을 조금씩 고조시킨다. 그리고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탄산이 피어오르듯 투명한 기쁨과 스파클을 만들어낸다.

​그런 날은 몸이 많이 힘들고,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퇴근 시간이 되면 나는 늘 뻔뻔하게, 그러나 은근 진심을 담아 부장님께 말한다. “부장님, 오늘 준비된 체력이 모두 소진돼서…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러면 부장님은 웃으며 “그래, 고생 많았어. 잘 쉬고~” 하고 결재해 주신다. 그 말을 듣고 나오는 퇴근길의 나는, 투명한 탄산수에 레몬제스트가 살짝 얹힌, 그런 향긋한 기분이 되어 있다.

​언젠가 나는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아주 구체적으로 느낀 적이 있다. 회복의 여지도 없이, 그저 끝없는 소진만을 반복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나는 사실,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도 마음에 탄산이 피어오르는 사람인데. 동료의 마카롱 하나에도, 고객의 인사 한 마디에도 투명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인데—그때의 나는 기분이라는 투명한 물에 검은 물감만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희석되지 않고, 자꾸만 짙어지는 그런 감정.

​아주 많은 자기 성찰과 스스로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결국 타인에게서 위로받기보단 위로를 주는 사람이었고, 비어 가는 나를 채우는 일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것은 아마 내향인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좋지만 또 사람이 싫고—주기 싫어도 결국은 줄 수밖에 없는 나.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아주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건넬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고, 비워내고도 스스로 다시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줄 안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과업이고 오늘 내가 보람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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