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씻긴 취미의 조각들 #003, 2025 빵빵런 5km 후기
1월, "에이 모르겠다" 하고 지르듯이 신청했던 빵빵런의 날이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다행히 매주 토요일마다 구리던 날씨와는 다르게 오늘은 진짜 뛰기 좋은 날씨였다. 사실 전날 밤에 긴장돼서 잠도 오지 않고.. 그랬 읍니다...
사실 5km 마라톤 출전은 처음은 아니다. 아주 아주 오래전, 나이 앞자리가 2였던 시절에 아무것도 모르고 복싱장에서 대충 트랙 돌던 힘으로 달린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러닝이라는 걸 잊고 살다가, 30대 중반에 다시 러닝을 취미로 삼고, 이제는 3n 거의 4에 가까워진 시점에 다시 5km에 도전하는 거니까 나에겐 꽤나 의미가 큰 일이었다.
현장에는 참가자가 아주 많았다. 다행히 남편이 아침에 차로 태워다 줘서 몸은 편하게 왔지만 현장감이라는 걸 전혀 못 느끼고 '집 → 마라톤장' 이렇게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원래 나 같은 내향인은 천천히 그라데이션으로 현장감에 적응해야 하는데 말이다. 근데 오늘은 그냥 순간이동해 버린 기분. (그래도 남편 고맙읍니다.^^)
다음(이 또 있을까?)에 오게 된다면 좀 더 덜 헤매고 마라톤장에서 씩씩하게 혼자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별거 아니지만, 짐 맡기기, 혼자 시간 보내기, 또 혼자 시간 보내기, 혼자 시간 보내기...(강조 세 번) 이게 은근히 쉽지 않았다. 평소에는 혼자도 잘 노는 인간인데 현장감과 사람들의 긍정 에너지 속에서 아무 일행도 없이 아무와도 대화도 나눌 수 없는 것에 어 리를 적적함이 느껴졌다.
혼자 배번에 옷핀 끼워서 꿰매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이 제법 쭈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오늘 나름의 '기념 찌질함'으로 남기기로 했다.(애써..^^)
그렇게 긴장 반, 즐거움 반으로 혼자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데 드디어 5km 출전자를 부르는 사회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나는 홀리듯 5km 출발 구간에 입장했다.
근데 이게.. 출발 지점이 좁았고, 사람은 많았고, 솔직히 병목 현상은 그렇다 쳐도 병 주둥이가 심하게 좁았다는 느낌이었다. 조금 부주의하면 다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거의 걷다시피 잘잘 뛰다가 드디어 조금씩 정체 구간이 풀리고 달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이래서 한강런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나름 호수랑 공원 코스 달리면서 자연친화적이라고 자부했는데, 한강의 스케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이랑 (5km 참가자 약 2,500명!)같이 뛴다는 것도 은근히 벅차고 좋았다.
오늘은 특히 귀에 아무것도 끼지 않고 달렸다. 평소에는 런데이 어플 켜거나 음악 들으면서 뛰었는데, 오늘은 오롯이 주변 소리, 내 숨소리, 바람 소리 다 느끼면서 달렸다.
음악 들으며 달리는 것도 좋지만, 오늘은 진짜 뛰는 나 자신과 맞닥뜨린 느낌.
아주 그냥 직면을 해버린 느낌.
INFP 답게 순간순간 벅차오르기도 했고, 그 외 시간은 거의 힘들고 더웠다 ^^...
한 번도 걷지 않고 달리고 싶었는데, 4km 넘어가면서부터 약간 헛구역질이 나고, 트름이 멈추질 않아서 ㅠㅋㅋㅋ 10초 이내로 두 번, 살짝 걸었다. (뛰다가 토하는 여성이 될 순 없었기에)
그리고, 완주 ^^
빵빵런이었기에 골인지점을 통과하자마자 나를 반겨준 건
노티드 도넛 한 개와 생수 한 병.
진짜 개맛있었다.
그 크림의 지방과 설탕 한 톨한 톨이 혈관에 때려박히는 느낌이었다.
사실 뛸 때 뭘 좀 먹고 뛰었어야 했는데 긴장감에 아무것도 못 먹고 뛰어버린 것이다. 다 끝나고 도넛 먹으면서 생각난 건데 공복에 더위에 막 달렸으니 속이 편할 리가 없었다...
나는 공복에 민감한 여성입니다!!!!!!!! (절규)
기록은 35분 13초.
두 번 걸은 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어쩔 거야. 뛰다가 토할 뻔했는데.^^
페이스도 7분 초반 정도로 나왔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의 6분대라고 믿고 싶다. 초반 1km는 슬로우 조깅 수준이었으니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뛸 수 없었다.
런데이 어플 들을 때 그 트레이닝 총각이 "예상 못한 장애물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내 달리기를 하세요" 라고 해준 말이 오늘따라 크게 다가왔다. 사람이 많은 걸 어쩌겠으며 알고도 신청한 건 나였지 않은가. 여러 사람이랑 달리는 거. ^^ (셀프디스)
그리고 갑자기 땡스투 타임.
올림픽공원에서 업힐 훈련 3번 해본 게 진짜 진짜 도움이 되었다. 호수 코스는 평지밖에 없었는데 오늘 코스에는 살짝 오르막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미리 경험해보고 온 덕에 당황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갑자기 아무도 시키지 않은 땡스투 날림;)
그럼...
안녕 빵빵런~~~~~~~~~~~~~~~
빵도 맛있었고 날씨도 좋았고, 나의 쭈구렁함도 기록할만했고, 달리기도 참 즐거웠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