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월요일 제주 한달살이 22일 차. 우리 차를 조천읍운동장에 세워두고 버스를 탔다. 제주동문시장을 지나서 바로 내려 올레 18코스 출발지 관덕정분식을 찾았다. 여기서 조천올레코스안내센터까지 19.7킬로다. 오늘도 각오를 해야 했다.긴 거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장소를 찾는데 귀신이다. 어디쯤이라는 이야기만 듣고도 잘 찾아가는 편이다. 380번 시내버스를 탔다. 평일인데도 버스 안은 꽉 찼다. 다행히 남편과 나는 좌석에 앉았다. 버스를 타본 지가 몇 년 만인가 싶었다. 동문시장 지나고 다음코스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돌아 직진, 신호 건너 직진, 그리고 우회전을 반복하며 18코스 시작점인관덕점분식 앞에 도착하여 출발인증스탬프를 찍었다. 순간 옆에서 우리들의 행동을 눈여겨보시던 아저씨 한 분이 다가오시더니 "그거 지금 뭐 하시는 건교?" 하고 물어보는데 부산말씨다. 나도 반가워 경상도 말씨로 바로 대답했다. "올레길걷고 있는데예, 인증하고 있어예."
"아이고, 나이 들어서 힘들게 뭐 하려고 걷는교?" 그러셨다. 예민한 남편이 나를 잡아끈다. 나는 설명을 해주는 스타일이라면 남편은 사고가 자기와 다르다 싶으면 아예 대화의 물꼬 자체를 안 튼다. 좀 냉정한 편이다. 갑자기 나도 입을 꾹 다물었다.북적거리는 도심을 벗어나 언덕배기로 오르니 귤림서원이 나타났다.그 안에는 오현단이라는 김정, 송인수, 김상헌, 정온, 송시열 다섯 분을 배향했던 옛터인데 이 분들은 조선시대에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셨던 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동문시장으로 들어섰다. 동문시장에 대하여는 익히 들어서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었으나 스쳐 지나가는 코스규정대로만 걸었다. 왜냐하면 내일 남편과 동문시장에서 장보기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성안올레길 안내 간세를 따라 걸으니 조선 정조 때 대흉년이 들었을 때 전 재산을 내놓아 제주도민을 구하였다고 하는 거상 김만덕 기념관과 객주가 나타났다. 다시 지나서 일제 때 사용했던 주정공장이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다는 잔혹한 역사의 한 장소가 있었고 4.3 역사관이 있었으나 휴무였다. 제주의 역사를 거슬러 생각해보려고 하면 뭔가 암울하고 가슴이 짠해졌다. 평화라는 단어가 도민들에게는 아주 갈망하는 단어일 것 같았다. 멀리 연안여객선터미널이 보였다. 이윽고 2010년에 전국 아름다운 숲대회에서 수상했다는 해송으로 이루어진
사라봉(오름)이 나타났다. 중간중간에 일본군들이 파놓은 컴컴한 보기 싫은 진지동굴이 보여서 짜증이 났다. 다시 내려오니 영등신에게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는 굿판을 벌이던 제주칠머리당이 나타났다.
다시 또 별도봉(오름)이 나타났다. 왼쪽으로 보이는 바다의 쪽빛과 오른쪽 푸른 초록이 어울리는 산책로가 아름다웠다. 왼쪽바다에서는 여러 기업의 물류단지에서 이루어지는 뱃고동과 함께 움직이는 각종 기계음이 우렁차게 울러 퍼지고 있었다. 별도봉 구릉지에는 애기업은 바윗돌이 있었다. 외세에 항거하던 젊은 어부 아내의 한이 서려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알고 나면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다시 내려오니 4.3 당시 온마을이 불에 타 마을전체가 없어지고 터만 남은 곤을동이 나타났다. 국방경비대가 이틀에 걸쳐 주민들 모두 학살하였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입을 꾹 다문채로 걸었다. 제주의 흑역사를 겪어보지 않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힘든 발걸음을 걷고 있는데
바람도 나그네도 쉬어가는 곳이 나타났다. 분명 개인의 정원인데 돌과 나무들로 빚어낸 걸작 솜씨가 너무나 훌륭하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오고 가는 길손들에게 잠시라도 쉬어가며 눈호강하라고 개방해 준 주인장의 대인배다운 배려에 우리는 감동의 소리를 질렀다. 여행은 많은 것을 본받게도 해준다. 다시 힘을 얻은 우리는 조선시대 육지와 연결하던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하던 화북포구에 도착했다. 바람이 차가워 날씨가쌀쌀했다. 바닷가 근처에 용왕을 모신 해신사가 있었다. 무속신앙이 강한 제주도민들을 관체제하에 두기 위하여 순조 때 만들었다고 한다. 이윽고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삼양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뜨거운 여름철에 검은 모래찜질을 하면 피부병과 관절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느려진 걸음으로 삼화포구에 도착했다. 수영장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의 꼬리를 닮았다는
세비코지가 나타났다. 이 지방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온다는 좋은 기운의 속설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신촌포구까지 이어지는 닭머르길을 걸었다. 닭이 흙을 파헤치고 앉은 모습이라고 하였다. 스쳐 지나가는동네마다 의미를 담아서 부르는 이름이 재미있다. 섬에 조릿대가 많아 대섬이라고 하였는데 대나무는없었다. 북쪽을 그리워한다는 뜻을 지닌 연북정에 도착했다. 유배되어 온 신하들이 북의 임금에 대한 충정심을 나타낸듯하였다. 너무나 먼 길이기에 뒤돌아보고 또 얼마나 남았을까? 하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릴까? 싶더니 어느새 우리는 올레18코스종점 조천올레센터에 도착하여 다시 차가 있는 운동장에 도착했다. 유난히 바닷바람이 차가운 오늘 날씨였다. 완전히 지친 몸인데 다리는 아직 성하고 이제 팔, 어깨가 아팠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7시가 다 되어가고 이슬비가 오고 있었다.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하였으나 또 해냈다는 마음으로 뿌듯하다. 내일은무조건 걷기는 하지 말고 관광위주로 하기로 하고 긴 하루를 마무리하였다.힘들게 안 걸어 본 사람은 힘들게 걸어본 사람 나의 이 기분을 모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