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
수술 후 3주간 병원에 있을 때, 남편은 힘들어했다. 보호자용 낮은 소파에서 자야 했고 끼니때마다 병원밖에 나가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외식을 거의 안 하던 식습관에다가 더운 날씨는 더욱 힘들게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생활하던 딸아이는 초등 2학년인 외손자 케어하려고 임시 휴직 중이었지만 병원에 드나들랴 아이케어하랴 힘들었을 거다. 아들 녀석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손녀 육아하랴 변호사일이 너무 많아서 늘 새벽까지 일한다고 투덜 되곤 했었다. 어찌어찌하면서 시간은 흐르고 있는 가운데 내 머릿속에는 고령화시대에 가족 간병은 무리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퇴직하고 나보다 나이 많은 남편을 간호하려고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바뀌었다. 퇴원하고 항암 하러 병원을 드나들 때 딸아이와 동행을 하면 늘 피곤하다는 말을 내뱉었고 병원의 대기긴 의자에 눕는 모습을 보았다. 딸아이는 수시로 가족단톡에 본인도 아파서 병원에 간다는 내용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 또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퇴원하고부터 딸아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나는 강인했던 성격은 무장해제되고 왜 그리 눈물이 자꾸 났는지 시도 때도 없이 줄줄 흘렀다. 그런 나를 보고 딸아이는 상담을 받으라고도 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엄마, 괜찮을 거야. 힘내.]라는 한마디였을 것이다. 곁에 있던 남편은 내가 눈물을 흘리면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꼭 안아주며 위로의 한마디 해주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싶었다. 아들 녀석은 내가 있는 오피스텔까지 15분이면 도착하건만, 전화만 가끔 하고는 심지어 한 달에 한두 번 왔었다. 혼자 있을 때면 서운한 마음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면서 걷고 걷고 걸으면서 난 삼키며 혼자 삭히며 내린 결론은 [아, 내가 나를 책임져야지.]였다. 안 아파본 사람들에게 내가 너무 큰 것을 바라고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는 나만의 청사진을 그렸다.
1. 마음 부여잡기
2. 내게 맞는 식이요법
3. 걷기 및 근육 단련 운동
4. 여러 환경적 요인 바꾸기
5. 그리고 최극도의 이기적으로 살기
매일 마음상태와 나의 하루 생활을 정리하며 글을 썼다. 육십 평생 살면서 흘리지 않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혼자 한강 둘레길을 걸으며 콧물눈물이 범벅이 되어도 주위 사람 의식도 안 했다. 오피스텔 옆에 있는 성당에 가서 기도를 드렸다. [저 조금만 더 살게 해 주세요.] 그러면서 삶에 대한 애착이 아직은 내게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