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저를 살펴주소서!

(노력해 보기로 했어요.)

by 김수기

고립성폐결절이라는 생소한 의학용어에서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 석 달이라는 과정 속에서 나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되돌려보니 소름이 끼쳤다.

내가 사는 중소도시(그야말로 동네병원)의 개인병원에서 당뇨 때문에 실시한 피검사 결과 의심 소견을 보여주신 의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폐암이라니? 절대로 아닐 거야. 그래, 그냥 폐결절일 거야. 나는 담배를 절대로 안 피웠고 폐암 요인에 해당되는 것이 하나도 없잖아? 거부하고 인정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소리를 치기도 했다.


수술 결과가 좋지만 혹시 남아있을 암세포제거를 위해 항암치료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유전자 검사결과를 보고 항암치료 후, 표적치료와 임상대상도 하기로 하였다. 퇴원 후 1주일을 서울딸네집에서 보내다가 아무래도 초등2학년인 손주와 사위에게 뭔가 피해를 줄 것 같았고 딸에게도 부담을 주기 싫었다. 그래서 월세로 8월부터 12월말까지 숙소를 따로 정하였다. 남편이 옆에서 같이 있기로 하였다.


그리고 7월 30일 항암 약물 두 종류로 1차를 시작하고 1주일 후 건강상태를 봐가며 다시 한 종류의 항암 약물주사를 하는 방법으로 총 8차까지 10월 말에 끝났다. 4차까지는 식사 시에 약간의 메스꺼움만 나타나고 무리 없이 잘 진행되었다. 밥을 잘 먹어야 한다고 주위에서 경험담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어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사실 살이 많이 빠지고 면역력이 약해지면 항암도 못 견디고 중간에 그만두는 환자도 있었다. 난 나 자신이 아프기 전에도 겁은 많으면서 의지력이 대단히 강하고 한 가지 일이 있으면 끈기 있게 해낸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 알고 있었다. 암완치 경험자들의 책, 암담당주치의 저서 등 책을 몇 권 구입하여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암종류가 나와는 달랐지만 완치라는 진단을 받기까지의 여러 가지 경험을 한 사례자들의 중요 사항을 참고하였다. 식이요법. 운동. 수면. 스트레스. 주변환경 등 여러 요인을 점검하고 보니 나는 그동안 나도 모르게 스스로 병을 키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하여 암에 대하여 아주 조금 알게 되었고 겁이 났고 그래서 가장 먼저 내가 선택한 것이 주위 지인들과의 소통 단절이었다.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 창에서 빠져나왔다. 가족 외에는 완전 단절을 했다. 세상만사 암흑천지였다. 자존심도 상하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특히 5차 항암부터는 약물의 농도를 더 높여서 주사를 맞고 나니 힘이 빠져 사지가 흐느적거렸고 구토가 시작되더니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전자 검사 결과 요즘 그렇게도 많이 계발된 신약 표적치료도 안되고 아주 기본인 표준치료만 가능하다고 했다. 어허, 난 오래 못 사나? 싶었다. 난 혹시나 싶어서 집을 떠나 서울 병원에 갈 때 미리 나름대로 집안 정리를 싹 다하고 갔다. 옷장, 부엌, 욕실을 비롯하여 구석구석을 비우고 정리하였다. 그만큼 암이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이 세상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서울사는 딸과 아들이 한강 근처에 숙소를 정해주었는데 건강했으면 한강뷰라고 좋아라 했을 텐데 한강둘레길을 혼자 울면서 걸으며 나는 수시로 강물에 뛰어드는 상상을 했다. 밤이면 불안해서 잠이 안 와 12층 숙소에서 뛰어내리는 상상도 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야, 너 지금 당장 죽는 거 아니잖아. 완치되어 관해 진단받은 사람들처럼 노력해 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하나. 아직 20년은 더 살아도 되는 거 아니야?] 나 자신을 앞에 두고 나에게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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