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군과 대구광역시 근처에 걸쳐 있는 팔공산국립공원에 가면 갓바위부처님이 있다.
넓적한 바위를 불상 머리 위에 얹어 놓은 모습이 갓을 쓴 것처럼 보여서 갓바위부처님이라고 부르는데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하여 언제부터인지 전국 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사월초파일이나 수능을 앞둔 날에는 인파가 몰려서 줄을 선 모습이 도시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수십 년 전, 나의 대입시를 앞두고 친정 엄마가 갓바위에 기도하러 가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갔다 오시면 의례히 붉은 종이를 접은 부적을 주시며 잘 간직하라고 하셨다. 나는 거기에 무엇이 적혀있는지 궁금했지만 감히 펼쳐 볼 용기가 안 났다. 펼치는 순간 나의 재수가 날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게 뭔가? 한낱 종이에 지나지 않는 부적이 마치 큰 요술을 부려서 나를 지켜줄 것 같고 나의 크고 작은 모든 합격을 불러줄 것 같은 마음은 성인이 된 지금도 그렇다. 누군가 이런 나를 보고 쯧쯧 어리석다고 혀를 찰 것이라는 것도 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결혼을 하고 내 아이들이 커가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들뿐만 아니라 같이 사시던 어른들의 건강은 물론 여러 가지 희망사항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욕심을 빌고 있는 것이다.
나의 딸, 아들의 대입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시험 합격, 그리고 취업 등을 그곳에 가면 계시는 갓바위부처님이 들어주실 것 같아서 1월 초이면 새해 다짐도 할 겸 어느새 팔공산 가파른 계단을 진지하게 오르고 있다. 심지어 작은 매트를 한 장 깔고 나는 아주 숭고한 마음을 가지고 108배를 하기도 하였다. 갑진년 새해에는 첫날부터 집안에 손님들이 온 바람에 놓쳐서 조금 늦은 1월 첫째 주 주말에 갔다 와서는 올해 삼재가 있다고 남편에게 붉은색 부적을 수첩에 넣고 다니라고 주니
"나원참, 이걸 믿나? 이제 딸, 아들 시집 장가 다 가고 잘 살고 있는데 뭐 또 자꾸 가노?"
굳이 나의 욕심을 부리려고 가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툭 내뱉는 남편이다.
나는 맏며느리이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부터 집안에 제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그렇게 힘들다는 것은 몰랐다. 심지어 친정아버지는 제사상 차리는 법을 가르쳐주시기까지 하면서 친정 부모 가정교육 허물 잡히면 안 된다고 잘하라고 하셨다. 맏며느리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았고 조상님들께서 은근히 돌보아 주신다고 믿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코웃음을 칠 것이다. 요즘 세상에 조상귀신이 도와준다고? 한 낱 바위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갓바위부처님이 돌보아 주신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내가 나를 바라볼 때면 무슨 일이든지 주저 없이 당당하게 도전하고 나만의 분명한 주관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안의 나는 너무나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부처님께 기대고 조상님께 기대며 심지어 내 수첩 깊숙이 자리 잡고 숨어있는 붉은 종이 부적에 기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세례명이 [데레사]로 천주교 신자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