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걸으리라, 그 길을

by 김수기

다양한 인생길을 걸어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본인의 의지대로 길을 걷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했을 때 행복지수가 아무래도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집 파트 뒤에는 야트막한 동네산이 있다. 직장 생활 시, 새벽 5시 반에 모여서 어둠을 뚫고 씩씩한 새벽 행군을 1시간 한 후에 출근을 하던 자칭 <뒷산 트리오>가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바람소리에도 귀를 쫑긋거리며 사계절 변함없이 다니던 뒷산을 한 사람이 아직 현직에 있다 보니 요즘은 나 혼자서 편한 대로 환한 낮시간대에 휘젓고 다닌다. 융통성 없는 성향을 지닌 나는 처음 걸었던 그 길을 앞만 보고 바삐 걷다가 어느 날 문득 동서남북으로 갈라진 길들이 내 눈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허, 그동안 시간에 쫓기어 주어진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구나 싶었다. 이 산을 접수하자, 보이지 않았던 내 눈 속으로 청록빛을 머금은 작은 호수가 들어왔고, 사계절 달라지는 이름 모를 들꽃들로 토담아래를 정갈하게 꾸며놓은 농가도 들어왔다. 휘하는 새소리도 들렸고 코를 벌름거리게 하는 나무들의 향기와 가을이면 각종 열매,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들렸다.

동네 뒷산의 여러 갈래로 난 물리적인 길을 걸으면서 학창 시절에 배웠던 시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났다. 출근하기 전에 오직 운동을 위해서 촉박한 시간을 활용하여 걸었던 그 길을 제외하고 남은 길들을 걷고 있는 나는 퇴직 후 인생의 후반부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도서벽지, 농산어촌, 그리고 시내 거대학교를 거치며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으며 마무리한 나의 직장생활이 어찌 편하기만 했겠는가? 그렇다고 힘들기만 했던 길은 아니었다. 요즘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는 학교 생활에 대하여서는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물러난 입장에서 나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가 [유구무언]이다. 왜냐하면 논쟁을 하고 싶을 정도로 할 말은 많으나 그렇다고 또 논쟁까지 하고 싶지는 않을 정도로 어쩌면 회피하고 싶다는 뜻이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 생략.............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우리말로 번역된 이 시를 떠올리면서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남겨둔 길을 걷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을 가지기보다는 걸었던 그 길을 다시 한번 더 걸으면서 보다 더 아름다운 나만의 족적을 남기고 싶다. 어둠에 밀려 내 눈에, 내 가슴에, 내 감성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 길의 향연을 늦게서나마 발견하였음은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롯이 한 길만 보고 앞으로 달려온 내 인생길을 뒤돌아보니 주변의 여러 가지 다양한 오솔길들이 나 있었지만 바쁜 걸음 하느라고 내 눈길이 미처 닿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하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다시 교직의 길을 갈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 작은 한 몸으로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지는 못할지라도 시행착오를 거친 나만의 경험자산이 있으므로 허물어지지 않는 길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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