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자식이 내가 전화만 하면 맨날천날 출장길이라고 하고 지가 야근하는 날만 되면 지가 꼭 사무실에서 전화를 해서 아직 퇴근 안 하고 야근할 정도로 바쁘다고 티를 팍팍 내고 있다. "너희 사무실에 일하는 사람 니 말고는 없냐?" 하고 싶건만 '아, 대표님이 우리 아들을 인정하니까 일거리를 많이 주는구나' 생각했다.
교과서식의 삶을 살던 나는 곧이곧대로 아들말이라면 다 믿는다. 그리고 마음 약한 나는 당연히 바쁘고 힘들고 일 많고 피곤한 줄 알았고 귀한 장손 우리 아들 혹시나 아파서 몸이라도 축나면 안 되지, 더구나 신혼인데 싶어서 지 아빠도 잘 안 사준 한약을 지어서 서울로 보냈다.
"아이고 엄니, 고맙습니다. 역시 엄니뿐입니다." 하였다. 이쁜 며느리는 한약이 몸에 안 맞다고 하길래 공진단을 사서 보냈다. 공무원 월급으로 딸과 아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내놓고 나니 두 아이 방값, 등록금, 생활비, 그리고 시부모님과 함께 살던 우리들 생활비는 엄청나게 들어갔다. 워낙 알뜰하신 어른들과 남편 덕분에 빚 없는 퇴직자가 되었으나 남편과 함께 해외여행 한 번 못 가 본 처지여서 요즘 바가지를 긁으니 나보고 계획을 잡으라고 한다. 그런데 둘이 함께 갈 경우를 예산 잡아보니, 아이고야 싶은 큰 액수에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올해 1월 말에는 결혼 40주년이므로 기념일을 잘 안 챙기는 나였지만 이제 좀 누려보고 싶었다. 카톡 프로필에 40주년이라고 써 놓고 티를 팍팍 내었건만 딸이나 아들이나 아무런 연락이 없다. 40주년 글씨만 둥둥 떠다니고 있다. 아직 발견을 못했나? 그렇지, 자식들에게 절대로 기대하면 안 된다. 우리 부부는 항상 주고 난 후 기대 안 하기를 약속했었다. 그런데 우리도 인간이다.
12월 26일부터 1월 5일까지 법정휴업이라서 변호사들 휴가인 걸 아는 나인데 행여나 혹시나 올려나 기대했건만 저그 둘이 일본 갔다고 며느리가 전화를 했다. 그래 좋은 추억 만들고 쉬다 오너라 했다. 그리고 귀국하고도 며칠 여유가 있었건만 집에 온다는 연락이 없다. 그래, 그동안 일을 많이 했으니 쉬어야지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놈의 자식이 설날에는 못 오고 그 전주 금요일 와서 일요일 간다고 기차표를 보냈다. 아, 이제 진짜 내 새끼가 아니구나 싶었다. 하기사 이제 내 아들이 아니고 내 며느리 남편이지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벌써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설날에 제사 참석을 못하겠다는 선전포고다. 딸내미도 저그 가족 셋이서 새해 첫날 와서 그 이튿날 가면서도 지 부모 결혼 40주년에 대하여 입도 뻥긋 안 했다. 그나마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하는데 지 아이 초등학교 입학 선물만 궁금해하다가 갔다. 그래? 좀 더 기다려 봐? 아니 뭔가가 없으면 그럼 우리도 작전을 짜야지. 그나마 시집, 장가가서 가정을 꾸리고 각자의 역할을 해내느라고 애먹는 거 보니 장하구나 싶어서 봐준다. 너희들도 늙어봐야 아, 그때 그럴걸 할 거다. 싶었다. 우리 부부 둘이는 너희들 없어도 잘 산다. 결혼 40주년 기념 파티 오붓하게 둘이 할 거다. 그리고 작지만 남은 재산 다 결손 가정아이들을 위해 후원금으로 기부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