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바리 할멈

by 김수기

시골학교였지만 초등학교 때 100m 달리기 학교 대표였었다. 발이 빠르고 키가 크다 보니(그때는 컸었는데 중학교 들어가고부터 운동을 안 하니 키크기가 멈춤) 핸드볼, 농구 두루두루 다 뽑혔었다. 그러다가 여자아이는 조신해야 한다며 친정아버지가 중학교로 찾아오셔서 못하게 하였다.

운동을 그만둔 이후, 이상하게도 성장판이 딱 멈추게 되었고 지금은 우리 또래 나이 기준으로 중간쯤이다. 음악적인 재능은 물려받지 못하였지만 운동 쪽으로는 우리 삼 남매가 다 우수한 쪽으로 역량을 발휘할 정도로 유전자를 받은 것 같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체육시간만 되면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하였고 초임학교에서는 여자육상부들을 지도까지 하였다. 내가 선수생활을 하여서인지 지도방법을 알고 있었고 힘든 점도 알았기에 아이들과 소통이 잘되어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도 거둔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의 제자들을 만나면 새벽부터 운동장 돌기와 약수터까지 왕복으로 뛰었던 일, 방과 후에는 학교 뒷산까지 뛰어오기 등 힘들었지만 그런 훈련 덕분에 기초체력이 길러져 지금은 건강한 중년이라고 추억을 말하고는 한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는 개인적으로 여가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여가를 즐길 여러 가지 여건도 부족했지만 나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여유가 생기면 언제든지 운동을 하리라 결심을 하고 살다가 두 아이를 대학 보내고 테니스부터 시작하였다. 대학 때 조금 배운 기초를 시작으로 동호회에 가입하니 각계각층의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고 살아가는데 많은 네트워크가 형성된다고나 할까? 스포츠 정신을 통하여 나를 이겨내고 남을 배려하며 공동체 인식도 크게 성숙되는 것을 사람을 통하여 배우게 되었다.

그러다가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골프를 배우자고 하였다. 내 머릿속에는 부유층의 사람들만이 즐기는 돈스포츠라고 생각하고 있던 바, 난색을 표하였더니 경제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요? 같이 어울렸다. 아는 지인의 선배가 프로골퍼인데 4명에게 무료로 지도를 해준다고 하였고 우리는 연습용 중고 골프채를 인터넷에서 구하였다. 비싼 레슨비 대신에 연습이 끝나면 비빔밥 같은 저녁 대접을 돌아가면서 하였다.

지금은 그 코치님의 따님이 프로로 전향해서 같이 전지훈련 등에 동행하시기에 못 뵙지만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가르침은 아무나 못하는 봉사정신 혹은 재능기부라고 생각한다. 모두 시간이 바빠서 정기적으로 배우지는 못하였지만 개인의 연습과 역량에 따라 차이가 나기 시작하였고 나는 테니스를 한 이력으로 오른쪽 팔뚝힘이 세어서인지 드라이브는 멀리 가지만 섬세한 기능을 요하는 데는 엉망이었다. 각도를 재고 자세를 고치고 채의 그립을 어떻게 잡고 등등, 아주 디테일한 면을 연구하면서 하는 친구들은 우아한 자세까지 갖추어져 성적이 잘 나왔으나 선머슴아같이 툭툭 치기만 하는 나는 참으로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몸조심을 하여야 하니까 우리는 골프 배우기를 멈췄다.

퇴직을 하고 한 달이 지날 무렵, 3,4년 전에 먼저 퇴직하신 선배님의 호출이 있었다. 무조건 동네 스크린골프장으로 나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첫 번개 모임으로 입장, 놀랍기만 하였다. 내 눈에는 선배들의 실력이 고수였다. 아니 프로였다. 기가 팍 죽었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장타에 정타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선배들의 실력을 보고 진작에 연습 좀 할 걸 싶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로 만나서 하다 보니 나의 실력은 늘지 않고 기만 팍팍 죽었고 잘 되지 않는 나의 실력에 짜증만 났다.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이 어딨어? 포기만 안 하면 해낸다." 늘 아이들에게 하던 말이다. 그래 해보자. 싶었다.

아파트뒤에 자리 잡은 연습장에서 할인 쿠폰을 50장 샀다. 그리고 우선 내가 자신 있는 종류 두 가지 골프채만 바꾸었다. 사람들이 바빠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시간에 나 혼자의 자신을 향한 레슨이 시작되었다. 연습장에 커다랗게 서 있는 거울을 보고 자세를 수정하기도 하고 폰으로 영상을 찍어보기도 하고 티브이 골프방송을 켜놓고 보기도 했다. 캐디 없는 라운딩비가 조금 저렴한 곳에 나가서 실습도 하였다. 선, 후배 누구든지 불러주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합세를 하였다. 동반자들의 자세를 보고 참고도 하고 잘하시는 선배들의 즉석 가르침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 자신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지난달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마다 가서 연습을 하였다. 미련하게도 몰입하다 보니 팔이 아파서 주사도 맞았다. 뱃살이 빠지는 것을 보니 상체 운동도 되고 일거양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차근차근해나갔다. 언젠가 선배님들과 같이 칠 때 더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너무 큰 차이는 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12월 초에 라운딩을 나갔다가 홀인원을 해내었다. 정말로 이건 실력이 아니라 그날의 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풋내기 내가 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공을 손으로 잡아서 딱 집어넣어 준 것 같은 순간의 장면을 보면서 완전 기가 찼다. 그러나 나는 오만방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진짜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부족한 내 실력을 선배들도 알고 있다는 점이 나를 더 혹독하게 훈련하게 만든 동기가 된 것이다. 연습장에서 자주 만나던 어느 지인이 골프 대회 나가느냐고 물을 정도로 집중했다. 그러던 중에 엊그저께 4명이 합체를 하여서 스크린으로 가게 되었다.

드디어 '실력을 발휘하자'라고 자신에게 속삭였다.

"옴마야, 요즘 무신 짓을 한 건데?" 선배님들이 소리를 질렀다. 칭찬을 했다. 내가 봐도 공이 죽죽 나아갔다. 그래도 까불지 않았다. 보통 때 같으면 조금만 잘 치면 선배들 앞에서 개다리춤을 추며 까불던 나였으나 신중하고 차분하고 흥분하지 않고 끝까지 쳤다. [버디]도 나오고 [파]도 나왔다. 꿈만 같은 점수가 나온 것이다. 그날의 [홀인원]이 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아니 증명이 되었다.

"되면 한다가 아니고 하면 된다, 포기만 안 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내 아이디는 [파]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파파마마]라고 했는데 이제 좀 더 실력이 향상되면 바꿀 것이다.

[버디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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