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참 좋았다. 깊은 산골학교 관사 천정에서 밤마다 쥐들이 달리기를 해도 옆방에서 나를 지켜주시던 교장선생님 부부가 계셔서 안 무서웠다. 교실문 열고 들어서면 칠판지우개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머리 위에서 떨어져도 27명의 산골 꾸러기 놈들의 맑고 티 없는 마음속을 다 알았기에 하하하 웃으며 내가 더 재미있어했다. 그때, 참 좋았다. 풋내기 교사를 위해 하나하나 앞장서 시범을 보여주시며 학급경영에 장학지도 해 주시던 교감선생님, 옆반 선배님들의 가르침은 생각만 해도 찌르르 내 가슴을 울린다. 그때, 참 좋았다. 휴일이면 내가 대장이 되어 학교 뒷산 헬기장까지 올라가 멀리 동해 푸른 쪽빛바다 바라보며 야호! 큰소리 외치던 아이들 함성이 그립다. 그때, 참 좋았다. 봄소풍 때 폭포아래 산나물 뜯어 된장 푹 찍어 즉석 쌈밥 먹어도 꿀맛이었다. 그 밥은 여러 가지 골고루 배합된 잡곡밥이라 더 구수했었다. 그때, 참 좋았다. 학교 사택에 다 큰 놈 데리고 수학경시대회 준비한다고 문제 풀면서 같이 밤새워 준비해서 성과가 안 좋았어도 그놈이 지금은 교수님이다. 그때, 참 좋았다. 밤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지으신 농사, 담뱃잎 엮는다고 "김 선생 와서 도와줘." 호출에 갓배워 서툰 솜씨로 동참했다고 엄마손맛 김치 한 사발 넘치게 담아 사택방문 앞에 두고 가시기도 했다. 그때, 참 좋았다. 결혼하고 떠나오던 마지막 날, 동네입구 다리 앞에서 이불만 실은 작은 차를 세우고 손들어 환송해 주시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살아오면서 명절이면 굳이 그곳 사과를 주문해서 올렸고 훗날 체험학습장으로 바뀌어버린 그곳에 내 아이들과 갔을 때는 빈집들이 즐비하고 안면 있는 분들은 읍내로 다 떠나가고 좋았던 그때 우리들 모습은 사진으로 확대되어 그나마 체험장 입구에 붙여져 있었다. 그때, 참 좋았다. 내가 떠 올리는 그리움 한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