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1

by 김수기

일흔을 바라보는 남편의 머리카락은 아주 약해져서 백일 지난 아기 머리카락 같다. 그나마 머리속살이 보일 정도로 얼마 남지 않았다. 좋은 단백질을 포함했다는 샴푸도 사주고 콜라겐도 발라보라고 줬지만 그야말로 세월에 장사 있을까? 내가 남편의 머리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이용 자격증은 없지만 짧은 남자들 머리카락 손질하는 방법을 미장원에서 눈여겨보다가 급기야 친한 원장님 소개로 간단한 도구를 구입하고 몇 가지 방법을 배웠다. 내가 남편의 전문 이용사가 되었다. 독서광인 남편이 두뇌작용을 많이 해서인지 아니면 어머님을 닮아서인지 수북하게 덮을 정도로 많던 머리숱이 서른 중반에 팍팍 하얗게 변하더니 오십 중반부터는 쑥쑥 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지금은 한가닥이라도 빠지면 난리가 난다. 몇 가닥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가닥 한가닥 염색을 해주다가 양쪽 뺨 부분에 어느덧 검버섯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아, 가장의 무게가 힘들었나? 아니, 맏아들 노릇한다고 힘들었나?" 쉽게 속내를 표현하지 않는 강건한 남편이 작년에 아버님이 96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고 회한으로 힘들어하며 심한 몸살까지 앓고 나더니 몸이 많이 약해졌다. 갑자기 안쓰럽다. 이제 둘만이 남아 어쩌면 [빈 둥지증후군]을 앓고 있는지 둘 다 하루종일 말이 없을 때도 있다. 슬그머니 손을 내려다보니 굵어진 손마디, 늘어난 세월만큼 주름살로 쭈그러진 모양새다. 아, 내가 아니면 이 양반을 누가 지키라. 갑자기 연민의 정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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