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들이 우리 집으로 오시다.)
작년 6월 25일 폐암 수술 후, 12월 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과의 소통을 끊었다. 전화가 와도 안 받고 메시지가 오면 "잘살고 있어요. 집에 가면 연락할게요." 하고는 답을 보냈다. 항암 끝나고 집으로 가서 신나게 살면 된다는 담당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부터 나는 세상밖으로 나왔다. 내게는 6개월이라는 시간이 참으로 어둡고 위험한 긴 낭떠러지였다. 순간순간 내 감정은 소용돌이를 쳐서 수면장애가 왔고 그때마다 수면제 처방을 받아서 약을 모았다. 아무래도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도대체 뭔 일이 있는 거냐? 뭐라고 지금 니가 부딪히고 있는 상황이라도 설명해 줘라. "
평소 교직생활하면서 내가 너무나 믿고 의지하던 선배님들께서 수시로 보내주신 메시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개월 동안 나를 후려치던 암세상 속에서 진심으로 걱정해 준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면제는 먹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께는 내가 약에 의지하는 습성이 생길까 봐 안 먹는다고 했다.
"수기, 오늘은 뭐 하고 있노?우리 모두 기다리고 있다. 빨리 같이 스크린골프도 치고 라운딩도 나가야지."
"추석날인데 뭐 하고 있는지?"
오두카니 숙소에서 멍하니 있던 내가 눈물을 줄줄 흘리게 만든 선배님들의 끝없이 보내주시던 메시지들.
권선배님, 이선배님, 박선배님과 함께 골프를 치던 4명의 모임 명칭이 G4이다. 골프의 첫머리를 따서 그렇게 우리끼리 불렀다.
늘 걱정해 주고 공을 못 치면 못 치는 대로 서로 앗싸! 하면서 위로하고 격려해 주던 선배님들 세분이서 우리 집에 오셨다.
아직까지 몸은 좀 무거웠지만 나는 차와 과일을 준비했고 주메인은 아파트 근처 맛집에 가서 해물찜으로 배달해 왔다.
뭐든지 해드리고 싶은 선배님들이다. 안고 펑펑 울고 싶었지만 난 평소처럼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까지의 치병과정을 설명하면서 가끔은 감정에 북받쳐 울먹거리기도 했지만 끝까지 들어주며 안아주던 선배님들이었다.
"그래,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다. 니가 반드시 잘 해내리라고 믿고 있다. 다시 이렇게 곁으로 와줘서 고마워"
선배님들께서 내게 주고 가신 거금(?)의 병문안비와 따뜻한 말씀들은 나를 살게 하는 또 다른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