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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지 않는 전화

by 김수기

"에미냐?"

"네, 아버지. 식사는 하셨어요?"

워낙 아들만 끼고 친손주만 이뻐하시는 친정아버지라 생각했던 나는 아주 드물게 안부 전화만 드렸었다.

출장업무를 마치고 오는 길에도 엄마 보러 자주 들렀기에 같이 계시는 아버지께 굳이 전화드릴 생각을 안 했던 것이다. 그랬는데, 어느 날인가 잠깐 '엄마 얼굴 보고 와야지' 하고 들렀더니 그날은 막걸리 한잔 하셨는지 친정집 대문을 들어서는 내게 한마디 하셨다. "니는 아무리 아버지가 마땅찮아도 왜 그렇게 전화를 잘 안 하니? 이놈의 자식들이 휴대폰을 사줘 놓고 전화를 잘 안 하네" 그러셨다. 순간 본심이 들킨 것이 무안해서 자주 드린다고 약속을 하고 나왔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졸음쉼터에 차를 세우고 아직 집에 도착 전이었지만 아버지 번호를 눌렀다. 뚜루루르 신호가 울리자마자 "여보시유? 에미냐?" 기다리셨다는 듯이 막걸리 같은 탁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큰아이를 출산하고 친정엄마에게 산후조리를 1주일만 해주십사 하고 부탁을 드렸을 때 아버지께서 시어른들께 부탁하라고 하셨던 기억이 내게는 너무나 크게 서운했었다. 아무에게도 서운함을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그 뒤끝이 휴대폰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주 안 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처음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셨을 그 무렵에 아마도 주위 친구분들은 휴대폰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전화를 드리면 큰소리로 "그래, 내가 지금 친구들하고 모여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위 아버지 친구분들에게 안부전화 자주 하는 자식이 있다고 자랑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나쁜 딸이었다. 그날 이후 수시로 아버지 휴대폰을 누르면 "오냐, 밥은 먹고 다니냐? 또 언제 올래?"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하시고는 끊으셨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장된 그 번호를 톡톡톡 눌러본다.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되돌아온다. 결혼하기 전에 거의 매일 전화를 하던 나의 아들 녀석이 장거리 출장길에 가끔 전화가 온다.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했다고 한다. 아들의 그 말이 그렇게 반갑고 정겨워서 난 목이 멘다. 내 아들이지만 멋진 놈이구나 싶다. 바쁘다고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전화라도 오기만 기다리는 내 모습이 오래전 내 아버지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아버지께 미치도록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아버지요. 와 이리 늦게서야 깨달을까요? 자식 낳아 부모 되어봐야 부모 마음 알게 되고 그 마음 헤아릴 정도로 철이 들면 부모와의 이별이 기다린다고 했다. 이제 뇌의 활동이 점차 둔해지면서 잘 외워지지 않고 중요한 사안이라도 순간의 찰나에 언뜻 기억이 안 나지만 받지 않는 나의 아버지 휴대폰 번호는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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