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선생님께서 지도해 주신 결과, 이번에 00 주최 글쓰기대회에서 우리 학교가 단체상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신 김 선생님께 수고하셨다고 박수 부탁드립니다." 전교직원 앞에서 관리자의 치하가 있던 그날부터 나는 왕따가 되었다. 어떤 조직에서 칭찬한다는 것은 듣는 사람에 따라 혹은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무언의 비교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김 선생님은 이렇게 하고 있는 데 다른 이선생님이나 박 선생님은 뭐 하시느냐? 하는 생각을 하면서 듣는 것이다. 모두 나름대로 잘났다고 모여든 조직에서 관리자의 그 생각 없는 한마디가 (나)라는 개인은 조직원들로부터 평생 지워지지 않을 왕따를 경험하였다.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칭찬은 반드시 필요하나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여야 한다. 그 때 넘치던 열성으로 인하여 선후배의 따돌림을 받은 이후, 내가 맡은 학급 아이들에게는 가능하면 여럿 앞에서 개인별 칭찬은 삼갔다. 세월이 흘러 내가 관리자가 되어보니 누군가 열심히 하는 사람은 당장 눈에 드러났지만, 어떤 우수한 성과를 거두는 사람에게는 개인별로 메시지를 보냈다. 혹여나 나처럼 조직에서 왕따를 당할까? 싶은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육십의 나이를 넘어선 나는 아직도 누군가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에게도 말 못 할 정도로 왕따 후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심지어 나의 딸과 아들에게조차 엄마인 나만 빼고 아빠 하고만 무슨 의논하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렇게 할 우리 가족들이 아니지만 그 정도로 한 번의 상처가 뿌리 깊게 남았다는 증거이다. 심지어 가깝게 지내는 대학 동기나 사회 친구들하고 모임을 하면서도 아주 사소한 일로 서운함을 느끼면 나를 왕따 시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 많은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어두웠던 마음의 상처가 지워지지 않고 남았다. 왕따 당해 본 사람만 그 심정을 안다. 그 조직에 폭탄을 던지고 싶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