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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지 않은 애정행각

by 김수기

"00 아빠, 얘네들 좀 보슈. 우리가 있는데도 애정행각들이야, 경고 좀 날리셩" 식탁에 앉아 설날 차례에 사용할 밤껍데기를 깎고 있는 남편의 등뒤에서 아들 녀석이 며느리를 꼬옥 안고 서 있었다.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무엇이 그리 좋은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밤 깎기 숙제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릇정리를 하다 잠시 옆을 바라보니 아이고야, 저그집에서 둘만 있을 때 하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내가 아주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였으나 내 아들이라서인지 밉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부둥켜안고 키스까지 하고 있는 젊은 한쌍을 보면 굳이 왜 길가에서 저럴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 오히려 내가 얼굴을 돌린 적이 있다. 이해를 못 한 것은 아니나 때와 장소를 가렸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내 아들놈이 엄마, 아빠가 있는 곳에서 며느리를 꼬옥 안고는 좋아죽겠다는 듯이 서 있는 것이다. 더구나 며느리는 시부모가 옆에 있지 않은가? 하하하하. 남편이 웃었다. 남편은 내가 고자질(?)을 하니 고개를 휙 돌려 보더니 저렇게 큰 소리로 웃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우리는 모든 것을 조심했다. 스스로 행동을 자제했다고나 할까? 그랬던 남편이나 나는 아들 녀석의 행동에 경고를 날릴 뻔하건만 "아들아, 방에 들어가서 안고 있거라." 그랬다. 며느리나 아들 녀석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두 팔을 벌려 남편과 나를 안아 주곤 한다. 아들 녀석이야 평소에 우리와 늘 주고받던 인사 치례라서 이해를 하지만 며느리도 그랬다. 쉽지 않을 텐데 덥석 안아주는 며느리가 고맙다. "오빠, 이거 먹어봐. 참 맛있다." 며느리가 우리와 마주 앉은 밥상에서 조기살을 골라서는 아들 녀석 밥 위에 올려놓는다. 이쁘다. 순간 남편의 눈에서 레이저가 내게로 날아온다. 난 모른 척한다. 40년이라는 세월을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애정표현을 안 한 탓이라서 어색한 우리 부부다. 아니 신혼 때도 어른들 눈치 보느라 안 하던 행동을 새삼스럽게 설마 지금 내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요. 그건 그렇다 치고 아들 녀석은 소파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는데도 며느리 손을 꼭 잡고 있다. 우리가 보건 말건 꿀이 떨어진다. 저런 애정행각이 부디 오래갔으면 싶다. 세월이 흘러 아기가 태어나고 현실 부부가 되어도 변치 않는 아들녀셕의 애정행각이 지속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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