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창문 열고
여기 좀 보아요.
거기는 잘 있나요?
여기는 아직이에요.
이제는 아프지 말기를 에요. (소풍 포스터에 나오는 나태주, 하늘창문 헌정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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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같이 갈래요?" "명절 준비한다고 피곤할 텐데 갑자기 무슨 소풍이고? 좀 쉬어라 마"
명절이라고 장보고 굽고 끓이고 그렇게 며칠간 시간을 보내고 당일날에는 모여서 절하는데 10분이면 끝났다. 더구나 음식 준비한다고 나름대로 애를 쓴 나는 두 손 곱게 모으고 조상님들 영정을 바라만 볼 뿐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거 좀 어떻게 안되나? 싶은데 마침내 어디 출처인지 굳이 밝히고 싶지는 않으나 "이렇게 하면 된다." 하는 간단한 상차림의 (예)가 사진으로 여기저기 인터넷에 올라왔다. 더구나 마음만 조상님께 전해지면 된다고 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여러 가지 사회 변동과 다양한 정보 획득에 빠른 우리 집 종손의 입김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그야말로 획기적으로 줄여서 상차림을 했다. 참 다행스럽다. 갑작스러운 혁명보다는 이렇게 서서히 변화가 있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만 전하는 날이 올 것 같아서 나는 혼자 내심 들키지 않는 쾌재를 불렀다. 불합리하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그 프레임을 깨부수지 못했다. 세월 지나고 요즘에서야 우애, 화목, 존경 등등의 단어는 서로 간의 노력없이 일방적인 희생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 힘들었다. 혼자만의 스트레스 풀기 필살기로 명절 연휴가 끝나면 매번 나는 혼자서 조용히 극장에 갔다. 어쩌면 대항하지 못하는 나를 위한 위안의 방법이랄까? 하기사 여기까지 묵언수행을 하면서 오다 보니 집안의 풍파는 없고 나름대로 그럭저럭 유지는 하는 집안인 것 같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아파서 쓰러질 것 같더니 모두 가고 나니 언제 아팠냐는 듯이 홀가분한 몸이다. 마음적으로 굉장히 부담을 느끼는 체질이다. '아, 또 풀어야지' 하고 선택한 영화가 김영옥님, 나문희님 주연의 [소풍]이다. 남편은 진짜 김밥 싸서 가는 소풍을 말하는 줄 알았다가 상영 홍보를 본 모양인지 금방 방향을 돌려서
" 아, 그 영화 말이구나. 혼자 조용히 보고 와." 그런다. 영화는 혼자 보아야 몰입할 수 있다.
......... 김용균님이 감독을 하시고 고은심역에 나문희배우님, 진금순역에 김영옥배우님, 고은심을 짝사랑한 역에는 박근형배우님이 열연하셨다. 세 분 다 80대의 배우분들이다. 모두 연기 인생이 길다 보니 표현력은 말할 것도 없고 관객들이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도록 너무나 사실적으로 연기를 하셨다. 은심이는 삐심이지만 따뜻한 도시여자형이고 금순은 투덜이지만 속 깊은 고향형의 여자이면서 각자의 아들과 딸이 부부로 맺은 사돈지간이다. 그리고 16살 중학교까지 함께한 고향지기들이다. 사연이 있어 고향을 떠나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온갖 궂은일까지 맡아하면서 살림살이를 일으켜 놓았더니 아들 녀석이 사업한다고 다 가지고 가서 말아먹어 남은 것이라고는 집 한채뿐인 은심이에게 가혹하게도 파킨슨병이 찾아왔다. 마지막에 그 집을 팔아서 아들에게 안 주고 친구인 금순이 딸, 그러니까 며느리에게 주는 것을 보고 그만큼 사돈이면서 친구인 금순이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서 나도 그 정도의 친구 하나쯤 있나? 되돌아보면서 멀리 D시에 있는 40년 지기 친구에게 [고향]을 보러 가라고 했다. 내 친구도 "얼른 가서 보마"하고 답장이 왔다. 남편 떠나보내고 남은 아들마저 형편이 여의치않아 자기 살기에도 바빠서 엄마에게 관심조차 없는 금순이의 사정이다. 벌써 기대감을 버리고 혼자 고향을 지키던 금순이는 허리가 아파 혼자 거동이 불편해지자 앞으로 살아갈 날이 엄마남지 않음을 알고는 사돈이자 친구인 은심이에게 고운 한복차림으로 마지막 인사차 왔다가 둘이 합이 맞아 다시 고향 남해로 내려간다. 거기서 둘이는 각자 지금 처해진 몸과 마음의 상처를 서로 알아보고 마지막까지 함께 하기로 한다. 은심이와 금순이의 또 다른 중학교 때 한 친구가 자식에게 버림받고 요양원에서 있다는 연락을 받고 둘이서 요양원 방문을 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나는 친정엄마가 치매로 요양병원에서 계시다가 돌아가셔서인지 더욱 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났다. 금순이가 허리가 아파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 배변 처리를 해주던 은심이, 집안에서 조그만 목욕통에 있는 금순이의 몸을 자기도 파킨슨병으로 오른손이 정상이지 못하는데도 씻어주던 장면과 속깊은 은심이의 마음을 알기에 "다시 태어나도 니 친구 할끼다" 하던 금순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하다. 얼마 전에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한다고 실습 나갔을 때 경험한 장면이 떠올라 자식들도 마다하고 아무나 못하는 뒷바라지를 친구가 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머지않은 나의 앞날이 훤하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노인의 질병, 부양, 생활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정부에서는 나름대로 정책을 추진중이지만 하루빨리 큰 그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식들만이 짊어지고 가기에는 그들의 생활도 유지해야 하므로 지금보다는 더 많은 노인케어 전문기관과 거기서 근무하는 인력도 더 많이 양성해야 할 것이다. 은심이가 아들이 무엇이든지 필요하다고 하면 즉시 그야말로 딱, 딱 알아서 다 해주다 보니 사업이 잘못되어 해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역시 또 엄마주머니를 노리는 엄마바라기가 되는 것을 보고 나도 저절로 움찔했다. 내 아들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혹시나 경쟁에서 뒤처질까봐 노심초사하면서 뒷바라지를 한 엄마이기 때문이다. 퍼도 퍼도 한없이 솟아 나오는 샘물 같은 것이 부모의 사랑인데 주어도 주어도 모자람을 느끼는 것이 자식들이 부모에 대한 기대감인 것 같아서 씁쓸하다. 한편으로는 내가 미리 안 늙어보아서 우리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갚지 못한 것에 대한 회환이 너무나 커서 더 눈물이 났다. '아, 그때는 그런 서운한 마음이 생기셨겠구나. 그때는 내가 그렇게 말이라도 해드려야 했었는데 왜 그랬을까?' 하는 것 말이다. 은심이를 짝사랑하던 태호가 고향을 지키면서 뇌졸중이라는 병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부담을 줄까봐 끝까지 숨기다가 병원에서 숨을 거두는 모습에서는 부모마음은 다 같구나 싶었다. 은심이와 금순이가 김밥을 싸서는 뒷산으로 소풍을 가는 모습에서 마지막을 함께하려는 것을 알기에 혼자 흐느껴 울었다. 존엄사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거동이 불편하여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노인들의 이러한 심각한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였다. 직업을 가지고 정해진 시간에 따라 움직일 때는 나는 안아플 것 같고, 나는 안 늙을거다 싶었는데 오늘도 세월은 저 혼자 가지 않는다. 지금 현재, 이 순간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는 오늘 하루다. 어차피 마지막 [소풍]은 혼자 하늘 창문 열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