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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노릇

by 김수기

3월 4일이 하나뿐인 나의 외손자 초등학교 입학식이다. 시골할매 나는 SRT기차 타고 2일 어제, 서울에 왔다. 손주와 딸아이랑 번쩍거리는 백화점에 나가서 손주 가방도 사고 옷도 샀다. 여기까지는 내 카드로 질렀다. 딸아이가 마흔이 되도록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남들 다 가지고 있다는 그 머시기 명품 가방이 없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딸과 나는 그냥 지금 현재까지 아니, 오늘 오전까지는 "사람이 명품 이어야 한다." 하는 시건방스러운 자기 똑똑이에 빠져 살고 있어 명품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아는 딸아이는 서울에서 집을 먼저 산다고 진정, 헛돈을 쓰지 않았다. 안쓰러울 정도로 절약하면서 살았기에 이제는 집이 있으니 그 머시기 명품 가방 하나 정도는 가져도 되겠다 싶었다. 구경하면서 의향을 물었더니 역시나 필요 없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그동안 아이 키우며 무난하게 잘 살아준 딸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서울만 오면 아프다고 혼자 집에 남아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며 생각을 물었더니 대학 합격한 후 유럽 배낭여행 못 보내준 걸 아직도 미안했다며 사주라고 했다. 오케이, 앗싸. 결국 딸아이는 그 머시기 명품이라는 가방을 하나 아빠에게서 선물 받았다. 사위는 머쓱해하면서도 입이 귀에 걸린다. 내일 입학식 준비한다고 손주 입을 옷도 미리 세팅하고 딸아이는 아주 비싼 것은 아니지만 아빠 카드로 지른 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놓았다 하면서 좋아라 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사람이 명품 이어야 한다." 외치던 구호는 까마득히 잊고 부르주아 모녀가 되어있다. 그냥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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