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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혼(成婚)

(2023.05월. 아들 결혼식에서 낭독한 시)

by 김수기

두 뼘 남짓 조그마한 너의 배냇저고리에서

엄마 자궁에서 함께 나오던 탯줄 내음이 난다.

꼼지락거리던 발가락을 보면서

건강한 소우주가 태어났음에 감사하여 눈물 흐르고

온 세상 휘저으며 힘차게 뛰어놀 개구쟁이 모습에

저절로 엄마 미소가 지어지더니

어느덧 혀 짧은 배꼽 인사, 귀여움으로 행복한 햇살 가득 물들이던

유치원 꼬맹이를 지나, 가나다라 동화 쑥쑥 읽던 우리 아들 00, 우리 딸 00

봄, 가을 꾹꾹 둥글게 말은 엄마표 소풍 김밥

한마당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던 파란 하늘 가을 운동회

함께 뒹굴며 먼지투성이 교복에도 우정 가득하던 중학교 시절

여드름, 사춘기 대한민국 어머니들 걱정을 뒤로하고

굵직한 목소리 더불어 훌쩍 커버린 너희들 고교 시절

"뭐가 될래? 어떤 사람이 될래?" 보다 모의고사 몇 점이 더 궁금하고

어느 대학에 진학할 건지가 더 급했던 너희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너희들의 어른들, 미안하다.

하교하면 쓰러지고 눈뜨면 공부 보따리 들고 학교로 가던 아들, 딸 뒷모습에

숨죽여 보기만 해야 했던 나약했던 어른으로서, 또 미안했다.

"엄마 뭐 해?"

이른 새벽 성큼 내 곁에 와 있던 너의 메시지는

행여나 어디 아픈가? 마음 졸였고

"응, 밥은 먹고 다니니?"

낯선 서울에서 커가야 할 꿈이 움츠려들지는 않을까?

곁에 없어 채워 주지 못해 따뜻한 밥 한 공기라도

꾹꾹 눌러 퍼담아 주고 싶던 마음은 엄마의 사랑앓이였네.

이제 꽃샘추위 이겨내고 고개 내밀던 아름다운 봄꽃들처럼

너희들 꿈, 스스로 이루어내며 세상 환한 웃음을 꽃피우며 여기 있구나.

오늘 성혼(成婚)으로 인하여 같은 방향의 나침반을 가지고

함께 도달할 목표 힘차게 내딛는 첫걸음이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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