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풍 김밥
엄마의 소풍날 김밥 준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의식이었다.
단무지, 시금치, 계란지단, 소시지... 그 이상의 재료는 어렴풋이 기억의 저편으로 흩어져 버려 기억이 나질 않지만, 소풍 전날 밤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하시던 모습만은 어제 일인 듯 선명하다.
신선함은 유지한 채 시간을 맞추기 위해 재료는 그 전날 준비해 놓으시고 싸는 것은 소풍 당일 날 하셨다.
그래서 항상 소풍날 엄마의 김밥은 유사한 신선함에 유사한 맛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엄마는 밥에 초대리를 비벼 김밥을 싸기 시작하셨다. 누군가에게 전수받은 특별 레시피였을까. 한정된 재료로 어떻게든 특별함을 더하고 싶으셨던 마음이었을 거였다.
밥심으로 살아가는 시대였던 만큼 엄마는 분명 가능한 한 밥을 더 넣으려 하셨을 거였다. 김의 너비에 내용물을 맞추기 위해, 옆구리가 떠지지는 않아야 하기에, 이 두 가지 경우를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맥시멈의 양을 꾸욱꾸욱 눌러 담으시던 그 정성. 조금이라도 더 배부르게, 조금이라도 더 튼튼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엄마는 김밥 한 줄에 담으셨을 거였다.
봄 소풍날, 약간의 추위가 공기에 남아 있던 점심시간,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펼쳐냈다. 그것은 마치 사랑을 전시하는 작은 박람회와도 같았다. 각양각색의 김밥이 펼쳐지고, 우리는 서로의 김밥을 나누며 다른 집 엄마의 사랑도 맛보았다. 하지만 지금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그때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그중 내가 가장 선호했던, 가장 좋아했던 것은 성글게 싸서 부드럽게 입안에서 씹히는 식감의 김밥이었다.
울 엄마 김밥은 항상 딱딱했다. 아침에 쌋음에도 불구하고 꾹꾹 눌러 싼 밥이 서로 뭉치면서 식어 믿기지 않을 정도의 강도를 자랑한다. 꾹꾹 눌러 싼 밥알들이 서로 뭉치면서 쌀쌀함이 섞여 있던 그날의 공기에 식어버린 그 단단함. 한 개만 먹었음에도 캑캑 목이 막혀 사이다가 간절하다.
미지근해진 사이다병을 따기 위해 병따개를 찾으면 엄마가 챙겨주지 않았음을 이내 깨닫고 투정이 극에 달한다.
그 자리에 있지 않는 엄마를 향한 원망이 쏟아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가 싸주신 김밥을 다 먹고, 빌린 병따개로 딴 사이다의 미지근한 탄산으로 김밥을 내리며, 그 해의 그 어린 봄소풍은 그렇게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말라깽이 아들을 조금이라도 살 찌우기 위해 있는 힘껏 꾸욱꾹 눌러 싼 김밥은 그렇게, 그렇게 추억이 되고, 흑백이 되고, 이젠, 이젠 딱딱한 초대리로 비벼 싼 김밥은 그립디 그리운 멸종음식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