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부모됨 시리즈] 책임감과 부담감. 편
#13. 부모됨이란 아이를 위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모에게 여러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올해로 결혼 21년차다. 결혼하고 3개월 만에 딸이 생겼고 2년 터울로 아들을 낳았다.
아이들 태어나고 한참 중요한 시기인 4살, 2살이 될때까지 남편은 지방에 있어야 했고, 친정 시댁 번갈아 시끄러웠던 그때만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이 야속하고 애들한테 참 미안하다.
항상 잘 못 해준 것만 생각나던 20여년이었는데, 큰애가 스무살이 넘은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면,
그래, 나 나름대로,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을 다했고,
별별 우여곡절 끝에 큰 탈 없이 여기까지 잘 와준 아이들이 그런 내 노력을 알아주고 있는 것 같아 참 다행이다.
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21살, 19살, 딸이랑 아들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아찔하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살아 내고 있는) 저 아이들을, 도대체 내가 어떻게 키웠나 싶다.
다시 하라고 하면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은 육아.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제일 겁이 났던 시기는,
아이가 처음으로 내 품을 떠나 혼자 집 밖으로 나가서 놀기 시작하던 때였던 것 같다.
특히 아들이 7살, 8살 즈음이었던, 애들이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를 누비고, 놀이터에 가서 함흥차사가 되어 나는 집에서 마냥 기다리던 그 시절,
점점 애들의 행동반경이 넓어지던 그 때에,
내 두 발은 더 이상 애들의 자전거 바퀴를 따라갈 수 없었다.
기어이 따라다녀 보겠다며 종종걸음치다 더위 먹고 뻗은 어느 날, 나는 애들을 내 품에서 독립시켰다.
‘그래 가라. 니들 가고 싶은 데로 마음껏 갔다와.
엄마는 그냥 여기서 기다릴게.‘
내 눈앞에 안 보이는 애들이 너무 불안했지만,
내가 믿는 신께 아이들을 지켜주십사 기도하면서,
무사무탈하게, 잘 놀고 들어올 애들을 믿고 기다렸다.
두려웠지만, 참았다.
뉴스를 틀면 별별 기사가 다 쏟아진다.
애들이 어렸을 때, 키우면서 제일 무서운 건 유괴 가능성이었다.
애들이 크면서는 불시에 닥치는 병이나 사고가 제일 무섭다.
근데 제일 무서웠던 때는,
자욱한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며칠째 지속되면서 앞이 하나도 안보였던 애들 초등학교 시절, 그 어느 날들이었던 것 같다. 아파트 단지 전체가 고담시처럼 대낮인데도 깜깜하고 뿌옇고 누런 먼지때문에 정말 바로 저편에 있는 그네도 잘 안보였다.
숨이 막히고, 덜컥 겁이 났었다. 진심으로.
지구가 드디어 망한건가?
한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어린 시절에 항상 그랬던, 그 파란 하늘은
더 이상 못보는 건가?
지구가 갑자기 너무 많이, 자주 아파져서, 애들한테 미안했다. 무서웠다.
바다가 더러워져서 애들한테 미안했다. 무서웠다.
테러가 난무하는 곳이 점차 늘어나서 여행도 꺼려야 하는 이 시절에 태어난 내 애들한테 미안했다. 무서웠다.
코로나라는 말도 안되는 전염병이 전국도 아니고 전 세계를 뒤덮으면서, 근 3년간 친구들과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꼬박 마스크를 쓰고 지내야 하는 참담한 사태가 정말로 미안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지금도 겁이 난다.
어디선 산불이 끊이지 않고, 어디는 홍수에, 어디는 50도에 육박하는 고온에,
어디는 또 메뚜기 때가 창궐하고,
또 바다 동물들은 폐플라스틱을 먹고 살고, 북극곰이 올라가 있을 얼음은 녹고.
내 아이가 아이를 낳을 즈음이면,
이 세상은 대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그렇다고, 이런 문제들이 내가 혼자 나선다고 될 일들이 아니란말이다.
그게 또 아이러니이고 죄책감 유발이다.
나도 지구인으로서 지구가 우리에게 준 것들을 지키고 유지할 책임을 져야 하겠지.
재활용 잘하고, 일회용품 최대한 자제하고, 에어컨 덜 틀면 가능한것일까?
부모로서 내가 자라던 시절의 아름다운 환경을 또 우리 애들한테도 맛보게 하고 싶다.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고, 내가 해결할 수 없지만,
내가 어떤 마음을 먹고 살아야 그런 사람들이 줄어들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이 언제 어디에서라도 안전하고 무사무탈하게 지낸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다.
혼자 살았으면 몰랐을 것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나야 반백년 가까이 살아, 이미 행복했던 추억도 있고, 또 남은 날이 얼마(?) 안 남았다지만
우리 애들은 80년이나 가까이 남았는데...
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줄지 걱정이다.
적어도
마음 고생 많이 안하고, 자리 잡아, 밥벌이 하고,
마음이 통하는 짝 만나서 사랑도 주고 받아보고
행복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정성껏 재활용을 분리하고,
음식쓰레기를 줄이려 장을 덜 보고 냉장고를 수시로 비우고,
텀블러를 들고 나간다.
한번씩 메일함을 비우고
매일 쓸데없는 문자를 지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가진 스트레스들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지식이 담긴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말을 건네려고 애써본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엄마, 부모가 된 이상,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주시하고,
규칙을 지키고
내가 해야할 일들을 찾아서 한다.
해야할 의무들이 늘었지만
내 아이를 위한 것들이니
기꺼이 감수하고
오늘을 살아간다.
@ chatGPT에게 물어보니, 부모가 지켜야 할 중요한 의무와 책임에 대해 이렇게 얘기해준다.
(내가 미처 꺼내 놓지 못한 것들도 얘기해주니 신기하네.)
기본적인 생계 유지: 자녀에게 음식, 의복, 주거 등의 기본적인 생필품을 제공해야 합니다.
건강 관리: 자녀의 건강을 챙기고 필요한 예방접종이나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교육: 자녀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학습 환경을 조성하며, 학습 습관을 기르도록 도와야합니다.
정서적 지원: 자녀에게 사랑과 지지를 제공하며, 자녀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전한 환경 제공: 자녀가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사회적 및 도덕적 교육: 자녀에게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가치를 가르치고, 바람직한 행동과 습관을 길러주는 역할을 합니다.
모범 보이기: 자녀가 부모의 행동을 본받아 성장하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의사소통: 자녀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자녀의 의견을 경청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독립심 기르기: 자녀가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지지하고, 필요한 기술과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다 필요한 것들이 맞다.
그런데 나는 왜 위의 이야기에 꽂혀 장황하게 글을 늘어놓았을까?
조금 머물러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교과서적인, 당연한 얘기들 말고,
진짜 내가 생각하는 부모로서의 의무와 책임은 뭐가 있을까..'하고.
그러니까,
부모가 된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었던거다.
지구적 차원의 너무나 넓고도 넓은 영역을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나, 해야하지 않겠나.
나는
세상 제일로 소중한
내새끼의 엄마이고, 아빠이고, 부모이니까!
세상의 모든 부모들, 화이팅!
* 본 '부모됨은 ____이다.' 시리즈는 2020년 12월 발행된 학술지 『 영아기 첫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부모됨 인식에 대한 개념도 연구_열린부모교육연구 14-4-7(심위현,주영아) 』 를 모티브로 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도출된 참여자들과의 인터뷰로 다듬어진 '부모됨에 대한 88개의 새로운 정의들(최종진술문)'을 인용해, 심리상담과 부모교육 현장에서 느낀 나의 인사이트들을 정리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