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부모됨 시리즈] 책임감과 부담감. 편
내가 딸을 낳고 엄마 집에 머물러 있을 때였다.
친정 엄마는 외출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시자 마자,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부엌으로 바로 직행해서 저녁 준비를 하셨다.
나는 엄마의 그런 뒷모습을 보면서, 뭐가 저렇게 급해서, 옷도 못 갈아입고 저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게 요새 나의 모습이다.
엄마가 왜 그렇게 급하셨는지 이제는 알겠다.
배고플 식구들에게, 빨리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먹여야겠다는 생각때문에.
그래서 나는
외출하거나 퇴근하고 돌아 와, 가족들의 식사 시간과 맞물리면, 화장실도 참아가면서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하게 된다.
참 신기한 노롯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우리가 휴일이나 일요일에 특별히 할 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골프 약속이라도 잡히면, 꼭, 반드시 전화를 해서, 나한테 갔다와도 되냐고 허락을 구한다.
나는 가족들이 무언가를 하겠다고 할 때, 그게 위험한 일만 아니라면, 딱히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자기 인생이니까, 각자의 삶이니까.
하고 싶고, 필요하니까 하겠다고 하겠지. 그걸 내가 뭐라고 안 된다고 하나...
그래서 남편이 저런 약속이 생기면, 당연히 가라고 한다. 남편도 이런 나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매번 허락을 구한다. 나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마도 우리 부부는 각자이지만, 또한 한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시간은 각자 쓸 자유가 있지만 또한 공유해야 할 윤리,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포인트는, 이 의무라는 것이 강제가 아닌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밖에 나가 있을 때, 나도, 남편도 항상 같은 생각을 한다.
좋은 곳에 가면, 가족들에게 이걸 보여주면서 함께 즐거웠으면 좋겠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가족들이랑 꼭 같이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한다.
휴일에는 딱히 할 일이 없어도 내 시간을 쓰기 보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더 좋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 파트너는 당연히 아내 혹은 남편이고, 그리고 아이들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다보니, 우리 애들도, 고맙게도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해준다.
친구들이랑만 놀고 어디를 가고 싶을 법도 한데, 엄마 아빠 혹은 우리 가족 넷이 함께 하는 여행도 자주 가고 싶어하고, 엄마 아빠랑 카페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함께 하고 싶어한다.
물론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리지만... ^^;;;
나는 이게 진짜 가족인 것 같다.
나 하나도 중요하지만, 나보다 우리 가족이 먼저 떠오르는 것, 그리고 가족을 챙기는 것.
사랑하면, 진짜 서로 사랑하면, 이게 가능하지 않나 싶다.
가족이
처음, 부부, 둘에서 부모-아이-아이 이렇게 셋, 넷, 다섯으로 확대되면서,
우리가 부모로 아이에게 쏟는 마음이,
나도 닮았지만, 배우자인 너 또한 닮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널 닮은 저 아이도 사랑스럽고.
그래서 너와도 함께 있고 싶고, 너에게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확대되어,
너와 나의 아이인 내 아이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러니 항상 함께 하고 싶고, 뭐든 다 주고 싶고 그런 것 아닐까?
그러니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싱글일 때, 나 하나만 생각하던 마음이, 커플이 되면서 너를 생각하게 되고,
아이가 생기면서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일순위로 두는 그런 것.
그래서
나의 자유가 좀 사라지더라도, 내 희생이 좀 더 늘어나더라도,
기꺼이 나를 내어줄 수 있는 그런 것,
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식구들 밥 먹이기 위해 퇴근후에 옷도 제대로 못 갈아입고 식사 준비를 하고,
내 공부할 시간, 책 볼 시간을 줄여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한다.
그래서 남편은 오늘도,
가족들을 위해 힘든 내색 없이 출근을 한다.
예전에 나도 남편도 애들 때문에 한참 힘들고, 일 때문에 한참 힘들 때
진짜 혼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런 시기가 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럴때 오히려 더 내 자리를 지켰던 것 같다.
아마도 나 하나만 생각하는 마음보다 내 빈자리를 느낄 우리 가족들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를 중심으로
아이와 함께 따로 또 같이,
나 하나보다 우리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이것이 부모가 되는데 필요한 또 하나의 마음가짐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 화이팅!!
* 본 '부모됨은 ____이다.' 시리즈는 2020년 12월 발행된 학술지 『 영아기 첫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부모됨 인식에 대한 개념도 연구_열린부모교육연구 14-4-7(심위현,주영아) 』 를 모티브로 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도출된 참여자들과의 인터뷰로 다듬어진 '부모됨에 대한 88개의 새로운 정의들(최종진술문)'을 인용해, 심리상담과 부모교육 현장에서 느낀 나의 인사이트들을 정리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