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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Oct 10. 2022

행복해 보여서

가난한 주제에...(작은아씨들 중에서)

어느 날 선물처럼 떨어진 20억 현금. 옷장 안에서 목을 메어 자살한 언니가 남긴 돈. 인주는 반가움과 슬픔휩싸여 한참을 울었다.

동생 수학 여행비마저 빌려야  만큼 출구 없는 가난.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자신에게는 꿈이어야 한다는 상대적 박탈감. 언니의 죽음이 자신에게 또 다른 행운으로 찾아온 것만 같은 죄책감.

그녀는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마트에서 주는 10원 단위 적립금에도 벌벌 떤다는 그녀가 20억 처음 사용한 곳명품 샾도 파인 다이닝도 아니었다.

편의점에서 행사할 때나 겨우 마음을 낼 법한 귀족 코너 아이스크림, 색깔별로 향기가 다르다는 립글로스, 가난이 들킬까 마음이 더 움츠러들던 겨울을 따뜻하 해 줄 코트 한 벌, 그리고... 큰 마음먹지 않아도 동생에게 쥐어줄 수 있는 5만 원짜리 한 장.

남들은 당연하지만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그 사소한 호사를 누리는 거였다. 그마저도 매값으로 갚아야 하다니... 인주에게 돈이라는 놈은 참, 잔인하기 그지없다.


회사원, 아기 엄마, 노역자,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기를 꿈꾸며 한 푼 두 푼 넣어둔 저축예금. 그들의 희망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만 했던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고의적으로 은행을 도산시키고, 훔친 부로 권력을 누리는 원상아와 박재상은 떳떳해 보였다. 드라마지만 왠지 우리 삶 어딘가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을 것만 같은 그들의 모습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행복해 보여서.
가난한 주제에."

왜 나를 싫어하냐는 인경의 질문에 마리가 대답한다. 자신처럼 가난한 그녀의 정의감과 행복이 불편했을 것이다. 권력의 노예가 되어 버린 자신과 다른 그녀가 질투 났을 것이다. 자신을 더 초라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그녀가 , 그래서 싫었을 거다.


왜 내가 타깃이 되었냐는 인주의 질문에 원상아도 같은 대답을 한다. 희망차 보여서 , 가난한 주제에.. 아버지가 권력과 돈으로 사람을 짓밟는 모습을 그대로 닮은 원상아.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가지고 놀다 심심하면 괴롭히고 지겨우면 없애버리는, 미성숙한 못된 아이로 멈춰버린 원상아.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야 하는 그녀이기에, 그 세상을 거부하는 세 자매가 꽤나 거슬리고 흥미로웠을 것이다.



법정에서, 차마 그 돈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는 인주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절박한 그녀 앞에 떨어진 20억, 그리고 700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욕심 낸 자신을, 기뻐했던 자신을 처벌해 달라는 인주의 눈물 섞인 고백이 그래서 아팠다. 어차피 비자금이라는 건 공금을 횡령한 돈 아닌가. 내가 가지지 않아도 누군가는 훔쳐갈 돈.


그렇지만, 내가 가져도 되는 돈은 아니다. 내가 땀 흘려 모은 돈도, 재테크를 한 것도, 부동산을 매매한 돈도 아니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었으니 처벌해 달라는 그녀의 말이 그래서 와닿았다.

이제는 돈이 아닌 그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소중하다는 그녀의 눈물이 그래서 고마웠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어 화영을 구해 낸다. 두 사람의 손등에 새겨진 화상은 , 사람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그녀들의 마음 같았다.


푸른 난초는 삐뚤어진 인간의 욕망을 먹고 피어났다. 현실에 배신당한 인간이 새로운 꿈을 꾸고,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그들만의 세상. 하지만 그 또한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려는 악인들의 도구일 뿐이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시인)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오늘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날인지도 모른다.

신기루 같은 푸른 난초가 아니라

옆에 웅크리고 앉아 말을 걸고 싶은

풀꽃 한 송이면

살아갈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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